4월 1일부터 꿈의 철도라고 하는 고속철이 새로운 교통혁명을 예고하고 있다. 개통을 앞둔 요즘 한국철도시설공단은 각계 인사들을 초청해 시승식을 매일 수차례씩 갖고 있다. 사실 이 시승식은 300km 이상의 속도를 보여줌으로 우리 기술을 자랑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난 2월 19일 이 시승식에 장애인 40여명이 초대되었다. 중증의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 30여명과 시각, 지체 등 여러 유형의 장애인들, 그리고 그 가족들과 활동보조인들이 자리에 함께 했다. 용산역을 출발해 광명, 천안을 거쳐 대전을 다녀오는 시승식에 참여하는 장애인들의 얼굴에는 기대와 들뜸이 역력했다.

통로가 좁아 수동 휠체어로도 접근할 수 없다.

사실 우리 나라에서 장애인들의 외출은 쉽지 않다. 특별히 휠체어를 사용하는 중증의 장애인들은 더욱 그렇다. 내가 만나본 장애인중의 다수는 집의 문턱을 넘는데 2,30년이 걸린 사람들도 많았다. 아직도 대부분의 휠체어 장애인들은 누군가의 헌신적인 도움을 받아 거리로 나와야 한다.

이런 장애인들에게 꿈의 철도인 고속철의 시승은 말 그대로 꿈을 이루는 것이었다. 이날 참가한 장애인중에 몇몇은 태어난지 처음으로 철도를 이용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기대와 흥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고속철에 탑승하기 위해 용산역 3층에서 1층 승강장으로 이동하기 위한 한 차례의 전쟁을 치른 후 멋진 고속철의 출입문을 바라본 순간 장애인들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멋진 고속철은 장애인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비장애인이 보기에는 멋져 보이는 2개의 높은 계단은 장애인에게는 숨이 멈추게 하는 것이었다. 요즘 무궁화호에서도 볼 수 있는 경사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니다. 어렵게 휠체어를 들고 올라간다고 해도 객차 내부의 통로는 비장애인들도 다니기에 힘겨운 좁은 통로였다. 휠체어를 들인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일순간 혼란스러워졌다. ‘제대로 시설을 갖추지도 않고서 왜 장애인들을 이리 많이 초대했는가?’ 라는 원망스러운 장애인들의 탄성에 고속철 관계자들은 이 고속철이 프랑스에서 들어왔는데 계약조건이 손끝하나 뜯어 고칠 수 없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고속철 안내문을 받아보니 ‘포항공대 연구보고서(한국인의 체형에 맞는 차량내 공간 배치에 관한 연구)에 입각한 설계 및 배치’라고 눈에 잘 띄게 소개되어 있다. 포항공대 관계자도 이러한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고속철 관계자들은 계속 “프랑스에서 들여온 그대로라 어쩔 수 없었다”라는 항변을 하고 있다.

갑론을박 끝에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용산역에 세워두고 업히거나 안겨서 고속철에 탑승했다. 지칠대로 지친 장애인들의 얼굴에서는 잠시전 보이던 흥분과 기대감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물론 고속철에 장애인석이 없는 것은 아니다. 2호 객차의 뒷부분에 2석의 장애인 석이 있고 그 뒤에 장애인용 화장실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곳에 승차한 2인의 장애인도 허울좋은 장애인석에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2석중 앞을 제대로 보고 앉을 수 있는 자리는 한 석이고 만약 2대의 휠체어가 탑승을 한다면 한 명은 대충 휠체어를 옆으로 돌려 창문을 바라봐야 한다. 가족이나 동행이 있어도 즐거운 대화는 불가능하다. 장애인 화장실이라고 하지만 혼자서는 문조차 열 수 없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객차 문을 열고 나간다 해도 산너머 산이다. 편의시설을 갖춘 장애인용 화장실이라고 하지만 제대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결국 누군가에게 안겨서 용변을 해결해야 한다.

2시간의 짧지 않은 여행을 다녀온 장애인들은 또 한 번 배신감을 느낀다. 다시 돌아와 쓸쓸히 주인을 기다리는 휠체어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길이 안스럽다. 한 장애인은 말한다. “다시는 타고 싶지 않습니다. 다른 장애인이 탄다고 하면 말리겠습니다.”

장애인석도 휠체어가 제대로 위치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