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하루를 지내다보면 아이들한테 많은 말을 듣게도 되고 또 많은 말을 하게도 됩니다. “선생님, 어제 밤에요.……” “선생님, 일로 와 봐요. 이거 좀 보세요.” 아침 학교 버스에서 아이들이 내리면 누군가는 제 손을 잡고 자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크게 상처 받은 아이가 아니라면 보통 아이들은 재잘재잘 이런 저런 이야기하는 걸 좋아합니다. 아이들은 보드랍고 민감하고 감성이 풍부합니다. 아이들은 자기가 새로 알게 된 것을 표현하고 함께 기뻐하고 행복을 나누며 사랑받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은 자기가 겪은 일과 그 때의 느낌을 공유하면서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합하고 자기 속에 들어온 감정을 소화해나갑니다. 아이들의 정서나 인지 발달에 대화는 아주 중요한 요소랍니다.

아이들은 앞에 있는 이 사람이 자기 말에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귀 기울여 듣고 있는지 아닌지 직감적으로 알아차립니다. 교사 안에 자기가 할 말로 가득 차 있으면 얘기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사는 아이가 다가와 이야기를 시작하면 온몸으로 들을 준비를 하고 아이를 맞이해야 합니다. 아이가 입으로 하는 말 말고도 눈과 얼굴 표정으로 하는 말, 손과 몸짓으로 하는 말을 눈으로 듣고 아이가 전하는 느낌을 알아차리기 위해 감각을 열어두어야 하지요. 나란히 걸을 땐 손을 따뜻이 잡고 살짝 아이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서, 가만히 서 있을 땐 몸을 낮춰 아이와 시선을 마주하며 아이의 마음에 공명하고 반응합니다. 또 때론 제가 아이한테 이야기를 꺼내고 위로를 받거나 행복감을 키웁니다.

문제는 우리들 사이에서 평화가 깨질 때입니다. 아이들 안에서 싸움이 일어났는데 쉽게 풀리지 않거나 아이가 옳지 않은 말이나 행동을 할 때, 어떤 아이가 다른 사람들 마음에 생채기를 낼 때 제 속에도 짜증이나 분노가 생기기도 하고 조바심이 일기도 하고 실망감이나 좌절감을 느끼게도 됩니다. 이런 순간 교사도 감정에 휩싸여 또 다른 폭력을 일으키기가 쉽습니다. 이때 재빨리 자기 상태를 인지하는 것, 대신 아이한테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것과 걱정하는 바를 솔직하게 말하는 게 필요합니다. “OO아, 나는 너가 ~라고 하니까 마음이 힘들어. 친구들이 너를 미워하게 될까봐 걱정도 되고.”

늘 마음을 가다듬고 이야기를 전하는 것에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이 하는 말을 찬찬히 듣고 있다 보면, 가끔씩 놀라거나 선득한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한 아이가 언젠가 제가 한 말을 똑같이 따라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말투나 억양까지 그대로 닮아 있습니다. 그 말이 그래도 좋은 말, 기운을 북돋는 말이면 다행인데, 화를 절제하지 못하고 했던 말이거나 명령조나 부정적 느낌을 담아 한 말일 경우엔 정말 큰 일 났다 싶습니다. 그 땐 아이들한테 제가 잘못된 말을 했었다는 걸 밝히고 용서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교사가 뱉은 말의 씨앗들은 아이들의 마음밭에 떨어져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습니다. 선한 것은 선하게, 그렇지 않은 것은 또 그것 그대로. 어떤 말은 믿음을 쌓고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고 용기를 북돋지만, 어떤 말은 왜곡된 편견을 낳고 상처를 내고 관계를 깨뜨립니다. 교사는 그걸 지켜보며 삽니다. 말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얼마나 진실되고 책임 있게 말 한 마디 한 마디 나누어야 하는지 가슴 절절히 느끼고 배우며 삽니다.

볍씨 교사들은 작년부터 우리말의 본뜻과 얼을 찾아가는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오랫동안 한글 연구에 힘써 오신 선생님을 모시고 말이죠. ㄱ, ㄴ, ㄷ, ㄹ, …, ㅍ, ㅎ, ㅏ, ㅑ, ㅓ, ㅕ, …, ㅡ,ㅣ각 글자 하나하나에 담긴 이치를 알아가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올해엔 볍씨에서 중요한 가치를 담고 있는 말들을 꼽아서 풀이하는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볍씨, 몸, 마음, 생각, 밥, 살림, 자치, 만남, 일, 지기, 생명, 나눔, 말씀, 글, 나, 너, 마을, 소리, 놀이…….

10년 전 즈음, 말에 다양하게 반응하는 물의 결정 사진과 그에 대한 연구 내용을 담은 책이 출간됐는데, 그 책을 보고 아주 놀라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말이 중요하다는 말은 많이 들어왔지만, 눈으로 직접 보는 건 또 다른 느낌을 줬더랬습니다. 그래서 아이들한테도 가끔 그 사진들을 보여주며 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우리가 어떤 말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보기도 하고요. 오늘 하루도 우리가 듣는 말, 또 하는 말들에 사랑과 기쁨의 기운이 실리기를 소망하며 세상의 평화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