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학교가 올 해로 열두 번째 <우리땅 밟기(국토순례)>를 다녀왔습니다. 5월 10일-17일, 7박8일 동안 ‘이 길 위에서 한 개의 바우가 되라라’는 주제로, 강릉 바우길과 동해안 일대를 약 100km가까이 걸었습니다. 학생, 교사, 학부모 등 130여명이 움직인 큰 행사였습니다. 이번 <우리 땅>의 목적은 이렇습니다.

1. 모든 생명에 깃든 하느님의 뜻 찾기.
2. 대관령과 강릉 일대의 역사, 문화, 자연, 삶을 체험하고 배우기.
3. 걷기를 통한 극기 정신.
4. 공동체성 함양.
5. 생명, 평화에 대한 이해 도모와 내면화.

이런 목적은 단지 행사를 위한 구호가 아닙니다. 산돌친구들은 이번 <우리 땅>을 통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귀한 공부를 온 몸으로 했습니다.

걷기처럼 인간을 겸손하게 하고 한걸음 한걸음의 지혜를 알게 하는 그런 공부가 있을까요? 산돌의 수업 중에 <걷기영성> 과목이 있을 만큼 산돌은 걷기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박해조 선생은 걷는다는 것을 가을에 곡식을 걷는 것처럼 나를 거두어들이는 일이라고 합니다. 나에게서 떠나간 나를 찾아, 참 나를 찾아, 한걸음마다 거두어들인다는 것이지요. 또한 걷기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겸손하고 깊이 있게 들여다보도록 해줍니다. 걷고 걸어 몸이 지치고 힘들수록 친구들은 말이 없어지고 자신에게 집중합니다. 겸손해집니다. 똑같아 보이지만 한걸음마다 변하는 풍경의 차이를 봅니다. 차를 타고 지나면 결코 볼 수 없는 감추어진 풍경도 만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 하고 탄성을 발하는 그런 순간을 만나기도 합니다. 걸음으로써 인간은 자연을 떠나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친구들은 경험합니다.

매년 아이들과 함께 걸으며 발견하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걸으면 걸을수록 점점 살아난다는 겁니다. 몸도 살아나고, 마음도 살아나고, 생각도 살아납니다. 단순해지는데 깊어집니다. 제법 깊은 대화도 즐겁고, 서로에 대한 배려도 커지고, 끝없이 솟아나는 싱그런 생명력도 감탄스럽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선물인지 모릅니다. 이렇게 사랑스럽고 멋진 친구들이 있을까요? 부모들도 이런 신령한(?) 기운을 느끼기에 7박8일 동안 지원팀에서 붙박이 자원봉사로 헌신하면서도 기쁨이 충만합니다.

재미있고 감동스런 에피소드도 생깁니다. 1학년 신입생들은 처음 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긴장을 많이 합니다. 배낭도 제일 무겁습니다. 아무리 짐을 줄이라고 해도 제일 어린 친구들이 제일 무거운 배낭을 지고 출발하게 됩니다. 덩치 큰 5학년들은 개나리 봇짐 매듯 간편하게 떠납니다. 나중에는 후배들 배낭을 앞에 메고 가게 되겠지만... 결국 걷기 행렬에서 1학년 아이들이 가장 호되게 극기의 싸움을 합니다. 발톱이 빠지려는 고통을 웃고 견디며 끝까지 완주한 1학년 여학생, 장애 때문에 다른 친구들보다 2~3배 에너지를 쓰며 끝없이 투덜거리면서도 결국에는 완주한 1학년 친구, 휴식 때마다 물건을 흘려 매번 쪼그려 뛰기를 하는 1학년 친구, 그럼에도 단 한명의 낙오도 없이 모두 완주를 했습니다.

그런가하면 학교에서 사고치고 자성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맨 뒤에서 침묵으로 걸어야만 했던 친구들도 있습니다. 선배들 5명이 교장과 함께 그렇게 뒤에서 걸었습니다. 저도 아이들도 ‘자성’에 대한 큰 부담이나 무거움은 없습니다.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자성위>와 결정을 함께 했고, 기꺼이 침묵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매일 그렇게 함께 걸으니까 어느 틈엔가 묵언팀의 동지의식 같은 것도 생겼습니다. 묵직한 선배들이 맨 뒤에서 받쳐주며 걸으니까 전체 행렬도 안정적이고 든든해 보입니다. 얼굴에는 다 안다는 듯한 미소도 있습니다. 간혹 뒤로 쳐지는 친구가 있으면 배낭도 받아줍니다. 그렇게 자성도 공동체에 대한 봉사로 이어집니다.

맨 뒤에서 행렬을 봅니다. 어떨 때는 너무도 짧게 보이고 어떨 때는 ‘저기까지 언제가지?’ 할 만큼 길고 멀게 보입니다. 살아있는 뱀처럼 꼬불꼬불 움직이며 끝없이 나아갑니다. 소리가 없다면 마치 정지한 것처럼 보이는 그 작은 움직임, 그 묘한 느낌! 분명한 진실 하나, 그 모두가 ‘한 걸음’에 달려 있습니다. 한걸음이 쌓이고 쌓여 100km의 거리를 줄여갑니다. 그리고 그 한 걸음을 통해 아이들은 점점 바우처럼 든든해져 갑니다. 길 위에서 저는 정녕 바우처럼 든든한 아이들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