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번역을 읽다가, 번역판들마다 번역 방법이나 표현만이 다른 것이 아니라 아예 내용 자체가 서로 달리 나오면, 독자들은 적지 않게 당황하게 됩니다. 더욱이 자기가 좋아하던 본문이 엉뚱하게 반대의 의미로 나오면 정말 환장하지요. 귀하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모처럼 좋은 질문 만나서, 특별한 성경 공부도 할 수 있게 되니 반드시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시편 16편 2-4절은 정말 번역자들을 골탕 먹이는 본문입니다.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과 그리스어 칠십인 역과 시리아어 역과 그리스어 심마쿠스 역 등이 서로 이독(異讀)을 보이는데다가, 히브리어 본문도 여러 가지로 읽혀지고 있어서, 원문을 회복하려고 하는 본문비평가들까지도 당황하여 때로는 이렇게 때로는 저렇게 히브리어 본문을 재구성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16편 2-4절을 잘 이해하려면 3절에 나오는 히브리어 “크도쉼”이 누구를 가리키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글자 그대로는 “거룩한 자들” 혹은 “성도”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개역]과 [표준새번역]은 “성도(聖徒)”라고 번역하였는데, [공동번역] 은 이것을 우상(偶像)으로 이해하면서 소위 “거룩하다는 신(神)들”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너무나도 다른 이해입니다.

주석들도 두 가지로 견해를 서로 달리 합니다.

1) 한 견해는 여기 “크도쉼”은 “경건한 사람들”이거나 “제사장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말 [개역]이나 [표준새번역]이 이 이해를 따르고 있습니다.

2) 또 다른 견해는 “크도쉼”이 “우상들”, 혹은 “다른 신들”을 가리킨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우리말 [공동번역]은 바로 이 두 번째 견해를 번역에 반영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시편 16편의 시인 혹은 기도자가 하나님께 아뢰는 것은 자기가 전에는 이런 신들을 좋아하였지만 지금은 생각이 확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그 신들에게 더 이상 제물(祭物)의 피를 붓지 않고 그 신들을 다시는 섬기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그래서 달리 이 본문은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전에는) 땅에 있는 우상들을 존귀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신들을 섬기면서 즐거워하였었습니다.”

혹은

“(하나님,) 소위 이 세상에 있는 거룩하다는 것들을 존귀하게 여기는 자들, 그것들을 섬기며 기뻐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게 하여주십시오.”

그러나 또 많은 주석들은 우리말 번역 [개역]이나 [표준새번역]에서 보듯이, 시편 16편의 시인 혹은 기도자가 땅 위에 성도들을 존귀한 사람으로 자기의 기쁨으로 삼고 있음을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으로 봅니다.

어쨌든, 두 번역이 시편 16편 전체를 볼 때는 전체 내용에 상반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개역]과 [표준새번역]은 표현이 다를 뿐 근본적인 내용이 다른 것은 아닙니다. 참고삼아 말씀드립니다만, 3절의 화자(話者)는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의 말입니다. 그것은 기도자의 독백일 수도 있고 ([개역]처럼), 하나님을 향한 기도자의 기도 내용일 수도 있습니다 ([공동번역]이나 [표준새번역]처럼).

다음의 두 영어 번역에서도 서로 다른 이해를 반영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NIV Psalm 16:3

As for the saints who are in the land, they are the glorious ones in whom is all my delight. (땅에 있는 성도들로 말할 것 같으면, 그들은 영광스러운 사람들이고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다.)

NAB Psalm 16:3

Worthless are all the false gods of the land. Accursed are all who delight in them. (땅에 있는 모든 거짓 신들은 아무런 쓸모도 없다. 그러한 것들을 좋아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민영진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