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서의 공개

지난 4월 초순에 "햇순" 독자들로부터 그리고 각종 언론 기관의 문화부 기자들로부터 같은 질문을 받고 인터뷰도 하고 짧은 글을 쓰기도 하고 했습니다만 햇순 독자들과는 좀 더 면밀하게 이 책을 다루고 싶습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전 세계에 공개하고 각종 매체가 다룬 "유다복음서"에 관한 소식을 접하면서 일찍이 경외전 문서가 인류에게서 이러한 주목을 받은 적이 있나 싶어 놀랐습니다. 실물 자체가 기원후 3-4세기 경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 자연 잊혀진 책이었는데 콥트역본이 발견되고 사본이 복원되고 그 본문이 영어로 번역되어 나옴으로써, 밀서 密書와도 같은 경외전의 그 실체가 만천하에 공개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경외전 문헌 중 하나일 뿐

우선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유다복음서"는 신약의 복음서에 들어오지 못한 영지주의 문헌 중의 하나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금년 4월 초에 외신이 "유다복음서"의 발견 과정과 그 본문의 복원 및 영어번역을 전 세계에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인들이 보기에, 마치 신약성서 안의 네 복음서 외에 제5의 복음서가 발견된 것처럼 잘못 알려지고 있거나, 더욱이 그것이 주님을 배반한 유다가 전하는 복음서라는 점에서 세인의 주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보도를 통해서 알려진 것처럼 "유다복음서"는 다른 경외전 문헌들 곧, "빌립복음서" "도마복음서" "베드로복음서" "참복음서" "완전복음서" 등과 함께 경전 복음서에 들어오지 못한 영지주의 문서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다만 그동안 문헌에만 언급되어있고 그 내용 일부가 간접적으로만 알려진 2-3세기의 문헌이 비록 파손된 부분이 많긴 하지만, 또 그리스어에서 콥트어로 번역된 것이기는 하지만 당시 영지주의 이해에 관한 상당한 정보를 지닌 실물로 발견되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합니다.

발견, 본문복원, 번역에 이르기까지

학계의 연구 결과는 "유다복음서"를 서기 1세기, 혹은 2세기에 씌어진 것으로 봅니다. 성격상 밀서 密書 곧 비밀계시 秘密啓示인데다가 이단으로 몰리면서 실제로 전해 내려오던 과정에서 실체가 상실되어 버립니다. 서기 180년 당시 영향력이 컸던 교부인 성 이레니우스가 이 문서를 비판함으로써 그 존재가 언급된 바 있습니다. "유다복음서"의 본래 본문은 그리스어였지만 4세기 당시 이집트에서 사용하던 콥트어로 번역해서 파피루스에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현존하는 콥트어 본문은 모두 26페이지 분량입니다. 이것은 1970년대 초에 이집트 골동품 시장에서 우연히 발견됐고 스위스 메세나 고미술 재단이 이를 입수, 소장하고 있었던 것인데, 그동안 메세나 재단 측이 미국의 내셔널지오그래픽과 협력해 영어와 불어, 독일어 번역 작업을 마쳐 2006년 4월초에 전 세계에 공개하였습니다. 정경 복음서들이 예수 사후 50- 80년 사이에 저술된 것에 비해 "유다복음서"는 이보다 뒤늦은 1-2세기 사이에 영지주의 Gnosticism의 한 분파인 가인파 Cainites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콥트어 번역문은 300년경의 것으로 추정됩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2005년 1월 애리조나 대학의 방사성 탄소 분석 연구소는 파피루스와 가죽의 샘플들을 정밀 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고대 문서가 서기 220년에서 340년 사이의 것으로 추정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잉크 측정법, 다중분광 이미징 MSI 등에서도 이 문서가 3, 4세기에 쓰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문서의 상태는 페이지가 없어지거나 페이지가 반 이상이 찢기거나 천여 개 정도의 파편들로 부서져 있는 등, 보존상태가 최악이었다고 합니다. 저명한 고대 문서 번역가 케이서와 파피루스 보존 전문가인 스위스의 다르브, 독일 아우스버그 대학의 콥트 학자 워스트는 이들 문서를 퍼즐 맞추듯 복원했다고 합니다.

총 26페이지짜리 유다 복음서는 13장의 파피루스의 앞뒤 면에 쓰여 있습니다. 이들은 부서지기 쉬운 조각들을 유리 두 장 사이에 끼워 넣은 후 조각들과 각 페이지의 사진을 찍고 컴퓨터로 파피루스 섬유의 연속성에 맞는지 등을 검사하는 방식으로 문서의 80% 이상을 5년 만에 비로소 짜 맞출 수 있었다고 합니다.

유다복음서를 이제는 영어번역이나 우리말 번역으로도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어 본문은 현존하지 않지만 그것을 번역한 콥트어 본문은 이번에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자체의 홈페이지에 공개하였고,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또 재빨리 우리말로도 번역하여 자기의 홈페이지에 올린 이들도 있어서 부지런한 이들은 이미 읽어보기도 하셨을 것입니다.

영어번역으로는 The Gospel of Judas (Translated by Rodolphe Kasser, Marvin Meyer, and Gregor Wurst, in collaboration with Francois Gaudard. The National Geographic Society, 2006)가 있습니다.

전통 종교 바깥에서 전해져 온 "유다복음서"의 기성종교를 비판하는 풍자 諷刺는 문학으로서 지니는 가치가 높습니다. 문학적으로 고찰해 본다면 "유다복음서"는 일종의 풍자문학 諷刺文學 satirical litera- ture 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된 예수의 열두 제자들과 예수는 늘 적대관계에 있습니다. 짧은 "유다복음서" 안에 예수가 제자들의 행태를 비웃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옵니다. 제자들이 그들의 신에게 기도할 때, 그들의 신에게 엄숙하게 종교의식을 행할 때, 자신들이 성업에 종사하는 성직자라고 자처할 때, 거룩한 존재라고 주장할 때, 그들이 교회에서 성창 聖娼을 제도화하고 어린이를 희생 제물로 바치는 인육제사를 합법화하고, 더욱이 이 모든 일을 예수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을 언급하면서 예수는 그들을 비웃습니다. 그때마다 제자들은 예수를 선생이라고 부르면서도 그에게 화를 내고 마음속에서 분을 참지 못하고 속으로 그들의 선생을 경멸합니다. 글 전체에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갈등이 가득 차 있습니다. 예수는 자기의 제자들이 종교 지도자들이 되어 혹세무민하고 있는 횡포를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그들에게 그런 헛된 제사는 당장 집어치우라고 호통을 치는 예수에게서 우리는 거짓예배를 규탄하는 이사야의 예언(사1:11-13)이 다시 울리는 것을 듣습니다. 유다를 배신자라고 규탄하는 기성 종교, 그 종교를 비판하고 풍자하면서, 유다를 그 열둘에서 분리시키고, 오히려 유다가 예수의 비밀 교훈을 간직하고 있는 참 제자였다고 묘사하는 데서 풍자는 그 극에 달합니다.

퍽 개인적인 살핌이겠지만 18, 19세기 유럽의 타락한 기독교를 풍자했던 블레이크, 보들레르, 로트레아몽, 랭보 등의 반기독교적 문학의 기원을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교회의 타락을, 아직 경전이 확정되기도 전인 기원 2-3세기 경에 이렇게 신랄하게 묘사하다니요!

민영진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