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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 아버지가 퇴근하여 커다란 엿보따리를 풀어 놓았을 때, 식구들은 모두 놀랐습니다. 두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당신은 무슨 엿을 이렇게 많이 사오셨수?”
돌이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그럴 일이 있었소. 한 데 붙지 않도록 시원한 데 두고 먹읍시다. 이웃과 나눠먹기도 하구.”
돌이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상여금 봉투를 내놓았습니다.
“엄마, 나 학원비 줘야지. 한 과목에 만 구천 원씩, 세 과목이니까 오만 칠천 원 !”
돌이가 말했습니다.
“넌 근로장학생 한다면서 무슨 학원비냐?”
엄마가 말했습니다.
“근로 장학생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요?”
돌이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돌이가요, 글쎄, 학원에서 칠판 지우고 물 떠다 놓고, 학원비 면제받는 근로 장학생이라지 뭐유? 그리구는 학원비는 따로 타다가 컴퓨터에 쓰는 뭐 모뎀이라나 뭐라나 사겠다지 뭐유?”
돌이 엄마가 말했습니다.
돌이는 지금 중학 1년생입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좀 특별난 데가 있는 놈입니다. 어려서부터 궁금증이 많아 묻기를 좋아했고,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에는 제가 자청해서 포경 수술을 하더니 5학년 때는 컴퓨터대회에 나가 대상을 타오기도 했습니다. 담임선생님이 귓속말로 돌이 엄마에게 녀석의 지능지수가 1백 50이라고 알려 주셨고, 체중이 많이 나가 뜀박질만 잘 못 할뿐 모든 면에 두각을 나타냅니다. 6학년 때 이미 형이 배운 중학교 1학년치 교과서를 들고 다니더니, 막상 중학생이 되고부터 과학 고등학교에 진학하겠다면서 설쳐 댑니다. 물론 학급일도 맡아 보고, 영재반 강의도 들으면서,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고입 준비 과정인 국, 영, 수 세 과목 중 한 과목을 듣고, 학교에 가 수업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머지 두 과목을 듣는다면서 학원에 다닌다더니, 이제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근로장학생이라고?
“돌이야.”
아버지가 돌이를 불렀습니다.
“네?”
돌이가 그 큰 덩치로 무릎 꿇고 앉아 엿을 먹다가 아버지를 바라봅니다.
“네가 다니는 학원에 근로장학생 할 아이가 너밖에 없더냐?”
“모두 고등학교 형들이라서 바쁜가 봐요. 게시판에 근로장학생 모집 광고가 며칠 동안 계속 붙어 있기에…….”
“그래도 그렇지. 모뎀이라는 것이 얼마짜리고 어디다 어떻게 쓰는 건지는 모르지만, 네가 꼭 필요한 것이라면 아빠가 사 줄 수 있는 것이고, 만약에 말이다, 학원에 공부하러 나오기는 하지만 학원비를 내기가 어려운 가난한 학생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런데 그 학생은 자기 집이 가난한 것이 부끄럽고, 가난한 것이 부끄러워 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린 마음에 그 용기가 안 나서,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는데, 모든 일에 자신만만한 돌이가 나섰기 때문에 그 학생이 그냥 움츠러들고 말았다면, 그래서 결국 그 학생은 학원비를 낼 수 없어서 더 이상 학원에 못 나오게 된다면…….”
돌이 아버지는 옛날 생각이 났기 때문에 이야기가 길어집니다.
“어이구, 당신은 어린애 데리구 앉아서 시시콜콜 무슨 얘길 늘어놓는 거유? 사 오신 엿이나 잡수슈!”
돌이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그래, 엿이나 먹자. 내가 쓸데없는 얘기를 했는지두 모르지…….”
돌이 아버지는 담배를 태려 물었습니다.
“아녜요 아빠, 지금 생각해 보니깐 제 카세트를 빌려간 형이 있어요. 그 형은 고1인데요, 저보다 키부터 훨씬 작아요. 그 형은 카세트가 없나 봐요. 무척 갖고 싶은 눈치였어요.”
돌이가 말했습니다.
“그래서?”
돌이 아버지가 돌이를 바라봅니다.
“제 카세트를 그 형 주면 어떨까요?”
돌이가 말했습니다.
“그냥 주면, 자존심이 상할걸?”
돌이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사실은 그 형이 얼마 전부터 제 일을 도와주거든요? 강의실 두 개를 맡았는데, 하나는 그 형이 도와줘요.”
돌이가 말했습니다.
“그래? 그것 참 잘 됐구나. 이왕 주려거든 새 카세트를 사 주려무나, 학원비는 네가 번 거니까…….”
이번에는 돌이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방이 더워서인지 어느새 조각엿이 녹아 붙고 있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