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종님,

참 끈질기시네요. 저는 다 잊고 있는 지난 이야기를 다시 상겨주시니 저도 지금 새삼 당황하고 있습니다. 질문을 참 오랫동안 품고 계셨네요. 그렇게 오랫동안 질문을 품고 계시면 이미 어떤 답을 얻으신 건 아닙니까? 대학 교양과목으로 자연과학개론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수강한 것이 벌써 반세기도 전입니다. 우주에는 어떤 물질들이 있는가? 별이 죽으면 무엇이 되는가? 밤하늘은 왜 어두운가? 우주의 나이는 몇 살인가? 빅뱅이란 무엇인가? 우주에 외계인이 있을까? 별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태양의 나이는? 태양의 수명은? 우주는 팽창하는가? 수축하는가? 정지해 있는가? 블랙홀이란 무엇인가? 등을 물었고, 갈릴레오 갈릴레이, 아이작 뉴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에 관해서 배웠습니다. 그러나 곧 관심이 거기에서 그치고 더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신학대학에서 '욥기'를 강의하면서 물리학에 대한 관심이 다시 일기 시작했습니다. 스티븐 호킹의 저서 "시간의 역사"와 "위대한 설계"가 나온 이후, 제 주변에 몇 몇 분이 그것을 읽고 우주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니까 저도 덩달아 우주물리학에 새롭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이 두 권을 읽어 보았습니다. 우주에 대한 생각의 진화를 보고, 거대한 세계를 설명하는 상대성이론 相對性理論과 미세한 세계를 보는 양자중력이론 量子重力理論을 새롭게 그 두 책에서 새롭게 소개받았습니다. 스티븐 호킹과 레오나르도 믈로디노프는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에서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주를 설명할 수 있는... 인용자) 완전한 이론을 발견한다면, 머지않아 모든 사람들이 그 이론의 대략적 원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철학자들과 과학자들과 일반인들 모두가 우리와 우주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토론에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인간 지성의 궁극적인 승리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때 우리는 신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저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예언자 예레미야의 예언의 한 구절을 떠올렸습니다. 예언자 예레미야도 이런 시대를 내다보았습니다.

“31 그 때가 오면,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에 새 언약을 세우겠다. 나 주의 말이다. 32 이것은 내가 그들의 조상의 손을 붙잡고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오던 때에 세운 언약과는 다른 것이다.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은 나의 언약을 깨뜨려 버렸다. 나 주의 말이다. 33 그러나 그 시절이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언약을 세울 것이니, 나는 나의 율법을 그들의 가슴 속에 넣어 주며, 그들의 마음 판에 새겨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34 그 때에는 이웃이나 동포끼리 서로 '너는 주님을 알아라' 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작은 사람으로부터 큰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모두 나를 알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 나 주의 말이다.”([새번역] 렘 31:31-34)

호킹과 믈라디노프의 "위대한 설계"는 “실재 實在란 무엇인가?”를 묻습니다. 그 실재를 파악하기 위해 그는 “모형의존적실재론 模型依存的實在論, model-dependent realism”을 말합니다.

“그림이나 이론에 의존하지 않는 실재의 개념은 없다.(54쪽).... 모형의존적실재론은 실재론과 반실재론이 벌여온 이 모든 논쟁과 토론을 우회한다. 모형의존적실재론에 따르면, 모형 模型이 실재 實在에 부합하느냐 하는 질문은 무의미하고, 오직 모형 模型이 관찰 觀察에 부합하느냐 하는 질문만이 유의미하다.(57쪽)”

제가 호킹의 “모형의존적실재개념”을 보면서(57쪽 이하), 아니 그보다 먼저, 54쪽 이하에서 “그림이나 이론에 의존하지 않는 실재의 개념은 없다”(54쪽)는 말을 들으면서, 저는 저대로 그 말을 “묘사 描寫에 의존 依存하지 않는 실재 實在 개념 槪念은 없다”고 바꾸어 써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노자의 '도덕경' 첫 장의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 “이름이라고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의 글귀를 떠올렸습니다.

이어지는 진술, “모형의존적실재론에 따르면, 모형 模型이 실재 實在에 부합하느냐는 질문은 무의미 無意味하고, 오직 모형이 관찰 觀察에 부합하느냐는 질문만 유의미 有意味하다.”(57쪽)는 말은 저로 하여금 성서가 말하는 신 神, 지옥 地獄, 천국 天國, 처녀탄생 處女誕生, 부활 復活 등을 은유 隱喩나 비유 比喩라고 설명하는 것보다, 물리학에서 이런 용어가 지닌 배경과 연결하여 설명한다면 더 설득력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과학을 할 때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모형을 만든다. 모형의존적실재론은 과학적 모형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일상세계를 해석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창조하는 의식적 무의식적 정신적 모형들에도 적용 된다”(58).

모형의존적실재론은,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대상을 지각 知覺하는 방식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다음과 같은 진술을 봅니다.

너희는 너희가 섬기려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떠서 우상을 만들지 못한다. ([새번역] 출 20:4)

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었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너희 조상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 그들이 저에게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합니까?"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대답하셨다. “에흐예 아셰르 에흐예”(나는 내가 되고자 하는 대로 되어가는 나일 것이다. I WILL BE WHAT I WILL BE).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에흐예”( I WILL BE)가 너를 그들에게 보냈다고 하여라."(사역 출 3:13-14)

우리는 하나님을 모형 模型으로밖에, 말로밖에, 글로밖에, 그림으로밖에 묘사할 수 있을 뿐입니다. 모형, 말, 글, 그림 등은 실재 자체가 아닙니다. 실재를 관찰하게 하는 수단일 뿐입니다. 그 모형을 실재와 동일시하면 그것은 우상입니다. 저는 오히려 호킹에게서 “남에게 듣기만 하던 하나님”을 “내가 직접 만난 하나님”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욥의 경우를 설명할 과학적 언어를 배웁니다.

민영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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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티븐 호킹. 레오나르드 믈라디노프 지금/전대호 옮김,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까치, 2006, 20105), 203.
2) 스티븐 호킹. 레오나르드 믈라디노프 지금/전대호 옮김, "위대한 설계"(까치,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