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하루는 아이들이랑 같이 노래를 짓기로 했습니다. 여느 때처럼 찬이가 제일 먼저 와서 “선생님, 다 했어요.” 그럽니다. 두 번째로는 정명이가 왔습니다. 정명이는 잘 못할까봐 조금 긴장한 모습이었어요. 하지만 완성하고 나선 아주 좋아하며 자기 노래를 몇 번씩이나 불렀답니다. 얼마 뒤엔 친구들이 노래 짓는 걸 돕겠다며 나섰습니다. 현지는 보통 노래들과는 좀 다른 선율로 시작하는 노래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현지의 노래는 독특한 느낌을 줍니다. 이연이는 선생님이 “잘 하고 있어.” 응원해주면 더 힘 있게 제 일을 해나가는 아이입니다. 나중에 반 친구들이 제일 즐겨 부른 노래는 이연이의 노래였는데, 노래를 짓는 그 순간에는 자꾸 확인받고 싶어했더랬죠.

아이들은 이처럼 같은 상황에서도 저마다의 빛깔을 냅니다. 아이들은 한 명 한 명 자기만의 행동 양식을 가지고 있고, 그러면서도 일정한 틀과 결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찬이는 시작도 빠르고 끝도 빠릅니다. 지금 무얼 해야 하는지 잘 간파해내고, 속도감 있게 일을 진행합니다. 대신 여러 친구들이 다양한 의견을 내서 느릿느릿 일이 진척되는 경우엔 조금씩 조금씩 목소리를 높이다가 결국 짜증을 낼 때가 많아요. 정명이는 자기가 한 일의 결과물이나 성취감을 중요하게 여기는 아이입니다. 자기가 자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친구들한테 영향력을 펼쳐서 함께 뭔가를 이루려 하지요. 현지는 외부 상황보다는 자기 내면의 느낌에 충실하려 합니다. 또 친구들과 어딘가는 다르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이연이는 선생님이나 친구들한테 의존하려는 경향이 큽니다. 하지만 한 번 마음을 먹고 용기를 내면 볍씨 아이들이 모두 모이는 회의에서도 발언을 잘 하고, 영향력 있는 친구에 대항하여 그의 잘못을 당당히 밝히기도 하고, 무대에 서는 것도 즐깁니다.

아이들을 만날 땐, 아이들이 하는 양을 흘려보지 않고 가만히 집중해서 깊이 들여다보는 게 필요합니다. 겉으로 드러내는 현상은 비슷하더라도, 속으로는 전혀 다른 원리가 아이들 안에 작동하는 경우가 적잖기 때문입니다.(에니어그램 수련을 하면서 이런 면을 더욱 견지하게 되었어요.) 친구가 여럿인 아이들 면면을 봐도 그렇습니다. 어떤 아이는 인정받고 자기를 중심으로 친구들을 모으려는 욕구를 갖고 있어서 열심히 친구들을 조직합니다. 어떤 아이는 자기를 보호해줄 수 있는 울타리가 되어줄 친구들한테 신뢰를 쌓아가며 관계를 꾸려갑니다. 어떤 아이는 그 아이가 갖고 있는 느긋함과 일관성이 친구들한테 좋은 느낌을 주어 많은 아이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게 됩니다. 어떤 아이는 친구들한테 지도력을 행사하기를 좋아하고 자기 친구가 어려울 때 든든히 지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어떤 아이는 흥이 넘쳐서 ‘얘랑 있으면 참 재밌어.’라는 생각을 가진 친구들이 붙습니다. 어떤 아이는 평소 호의를 베풀고 어려울 때 돕기를 자처하다보니 그를 찾는 친구들이 생겼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완성하는 데 똑같이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원인은 제각각. 앞으로 할 일들을 생각하니 이런 걱정 저런 걱정 많아져서인 경우, 마음먹고 행동에 옮기기까지 이것저것 따져보고 재어보는 경우, 요걸 선택하려 하면 막상 조게 아쉽고 그래서 조걸 하자니 이게 마음에 걸려 그런 경우, 천천히 조금씩 해나가도 스스로 답답함을 느끼지 않아서인 경우, 친구들과는 차별적인 나만의 것이 나올 때까지 고심하는 경우, 좀 더 마음에 차고 완벽한 것이 나올 때까지 계속 힘쓰는 경우.

이렇게 자기 꼴을 가지고 제 삶의 길을 걸어갈 아이들. 이 아이들의 빛깔은 어느 것이나 소중히 여겨지고 지극히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아이가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할 줄 아는, 그래서 다른 이 또한 인정하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어떤 기준을 잣대로 두고 아이를 재단한다면 아이의 자존감은 떨어지고 왜곡된 방향으로 제 힘을 쓰게 될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안학교 안에도 대안학교형 모범생으로 인식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보통 에니어그램 수련 과정 중에서 3번이나 7번으로 확인되는 아이들이 그러한데, 외향적이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을 수려하게 잘 하고 무언가를 빨리 익히고 자연스럽게 이목을 집중시키는 친구들을 보면서 ‘내 아이는 왜 안 그렇지?’ 고민하는 부모님들이 있지요. 하지만 이는 그 부모님이나 부모님의 아이, 심지어 부러움을 받는 아이 모두한테 안 좋은 영향을 미칩니다. 한 아이는 우주의 꽃. 사랑받기 위해 또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온 우주에서 단 하나뿐인, ‘나’입니다. 그걸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목회자들로 구성된 송탄 성서공동체 주간모임이 12월 7일(수) 장진순 목사가 시무하는 해맑은 교회에서 있었다. 모두 6명(김기섭, 김명신, 김종우, 원종혁, 우철영, 장진순)이 참석하였는데 우리모임의 규례에 따라 장소를 제공한 장진순 목사가 진행하였다.

기도로 모임을 시작하고 본문(이사야 61:1-4, 8-11)을 읽은 후 먼저 본문에 대한 각자의 소감을 말하였는데 거의 흡사한 “복음의 결과는 회복이다” “이 구절이야말로 복음의 정수이다” “속이 후련하다” “참 아름답다” 등의 각자의 느낌을 말하였다.

오늘의 질문과 나눔은 주님께서 주님의 일꾼으로 나를 세상에 보내셨다(1절)는 의식을 가진 자의 삶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희년(은혜의 해)과 연관시켜서 이야기해보고 “내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할 것이다”(11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의 삶에서 발견되어지는 특징은 어떠한 것일까? 하는데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었다. 이번호에서는 실험적으로 간담회형식으로 꾸며보려 한다.

김기섭: 특별히 목회자에게 있어서 세상에 그냥 왔다 그냥 가는 인생이 아닌 소명의식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김명신: ‘기름부음 받은 자’는 근본적으로 충만한 에너지를 받는 것이기 때문에 그 에너지를 당연히 즐겁게 십자가를 지고 갈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우철영: 동감하구요. ‘주께서 나를 보내셨다’라고 의식하는 사람은 나의 생각과 뜻대로가 아닌 보내신 자의 뜻을 실현하기에 힘써야하는 것은 당연할 텐데요, 나는 그런가 하는 생각을 해보면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가난한 자와 억눌린 자, 정말 포로 된 자들을 위해 말로만하지 말고, 그렇게 행동하면서 살아야하는데 그렇지 못한 삶이 안타깝지요. 특별히 오늘 이사야서를 인용하신 예수님의 말씀 누가복음 4;21을 보면 이 희망과 말씀이 “지금 응하여졌느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제 생각은 여기서, 즉 나의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지도록 내가 애써야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장진순: 보내신 분의 뜻을 개인이 거절할 수도 있는 것이기에 중요한 것은 받아들이는 자의 진실 된 수용이 있어야하는 것이 아닐까요?

원종혁: 제 생각에는 반드시 행동해야 한다면 일종의 투사형인데 목회자(종교)의 본질적 기능이 투사적이어야 한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종교인과 투사는 구별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수도원에서 예배를 집전하며 수도사로서 진리탐구에 매진하고 진리를 선포하는 것도 보내신 분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고 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은혜의 해” 즉 희년이 사실 역사적으로 행해진 때는 없었습니다. 희망을 말하는 것이지요.

김종우: 우리가 아는 대로 ‘행동’이나 ‘수도’나 서로 상대적 개념이 아니라 보완적 개념이겠지요.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목회자의 기능가운데 제사장적 기능과 예언자적 기능이 조화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진순: 제 생각에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응해졌다”는 말은 이런 모든 자유와 해방을 이루는 예수가 오셨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그래서 우리는 그 사실을 전파해야하는 것이구요.

김명신: 오늘 본문은 제 3이사야로서 바벨론 포로기의 이스라엘백성들을 위로하며 희망을 주기위한 말씀으로 아는데 요즘 영원한 소망 없이 세상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참 희망의 말씀인 것 같습니다.

장진순: 또 한 가지 함께 고백하며 나누고 싶은 말씀은 하나님 안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영혼의 소유자는 삶의 모습과 특징이 어떤 것일까 하는 건데요, 저는 어떤 절망 가운데에서도 소망을 갖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우철영: 사명의 역할을 감당할 때 자연스럽게 즐거움의 모습이 나타날 것으로 생각되네요.

김기섭: 다른 제 3자에게 주시는 말씀이 아니라 목회의 어려움을 절실히 느끼는 중에 제게 주시는 말씀으로 알아 용기가 생겨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하는 자들로서 보내진 자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이 우리의 응답임을 확인하며 오늘 모임을 마쳤다.

삶의 자리를 벗어나려는 치열한 몸부림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는 필리핀의 현실을 보노라면 선교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 거대한 산 앞에 서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시기만큼 400여년의 식민지 생활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아름답기는 하나 기생식물의 꽃을 도시의 꽃으로 삼고 부끄러움을 전혀 느끼지 못하며 인식조차 못하는 이들, 변화나 발전보다는 그저 그 자리에 안주하려는 모습과 함께 여기저기에서 바라보고 기대하는 바가 느껴지기에 큰 부담감으로 다가옵니다.

2013년 한국교회가 제9차 세계교회협의회 총회와 제3회 아시아기독교생명농업포럼을 유치하여 대내외적으로 기독교의 위상이 높아져 이제는 베풀고 나눌 수 있는 지도자 그룹에 설 때가 된 이때에도 자기중심적, 제국주의적, 물량주의적 선교가 주를 이룰 수밖에 없는 현실이 못내 아쉽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철저하게 현지교단과 협력하여 새로운 선교의 장을 열어보고자 치기어린 생각으로 낮은 자리에서 온 몸으로 좌충우돌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이곳 민다나오의 상황을 살펴보니까 이미 서구선교사들이 연구하고 투자한 내용과 시설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선교적 시설물들이 현지인에게 이양되어 운영하고 있지만 서로의 네트워킹이 단절되어 유지하기에도 급급한 모습이 역력합니다.

우리의 사역이 모든 면에서 부족하고 늦게도 출발한 터라 시작하기조차 어려운 현실이지만, 철저하게 협력사역을 선언하고 철저하게 2년여 동안 지시와 교육이 아닌 협력과 배움의 그리고 섬김의 시간들을 보내었습니다. 이들의 필요와 요구를 하나씩 알아가고 서로 이해하면서 많은 대화 속에서 진정한 마음의 소통을 통하여 서로를 신뢰해 가고 있습니다. 일방적 요구가 아닌 협력과 대화가 주를 이루며 때로는 내가 그들을 돕는 것인지, 그들이 나를 돕는 것인지 모를 때도 있습니다. 지금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골 마을의 기도처에 파송되어 주일예배 때에 현지어로 번역한 설교를 읽어가도 불평없이 들어주는 이들을 보면서 스스로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워낙 어려운 형편의 교회인지라 선교사의 도움으로라도 일어서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현지 노회에서도 아직은 아무 기대도 하지 않고 있으며, 다만 빨리 현지 언어를 익혀 소통과 협력으로 새로운 사역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모습이 보입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과과정에 음악과 미술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찬송을 부를 때에도 악보를 읽을 줄 몰라서 가능한 코드로 좀 낮은 음정으로 늘어지는 듯한 찬송을 부를 때 답답함을 느낍니다. 제가 악보를 스크린에 띄어 주며 찬양을 시작하자 이내 악보 읽는 법을 가르쳐 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이제 몇 년이 지나면 현지 찬송가 파워포인트 악보를 전부 만들 수 있으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오늘도 함께 자료를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농업적 사역과 관련된 사역들이 조금씩 연결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곳 역시 젊은이들이 도시로 나가 모내기가 점점 어려워져 가는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기계화가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한국에서 의식있는 이들만이 사용하던 투묘방식의 이양법을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필리핀 현지의 농업연구소에서 실험을 마치고 유기농 쌀 재배의 방법으로 채택하여 함께 보급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십 여 년 전부터 보급되어진 한국의 자연농업 기술이 이들의 상황과 잘 맞아 교육교재로 사용되어지지만 아직은 특정인만이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농업기술센터와 비슷한 형태의 농민지원센터를 만들어, 현지 농촌교회를 중심으로 마을 공동체에서 사용하도록 하여 현지교회가 자립할 수 있는 모델을 현지교단과 함께 만들어 보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땅을 가지고 있어도 환금비율이 낮아 농사를 포기하는 것이 현실인 이곳에서 무모한 시도처럼 보이지만 한명 한명씩 뜻을 같이하는 동역자가 생기고 있어 희망이 됩니다. 내가 계획하고 이끄는 것이 아닌, 철저하게 인도함을 받는 형태로 시작이 되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그 분의 뜻에 순종하며 나아갈 때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때가 오며, 그 열매를 통해 큰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기를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