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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니? 그랬구나.
네가 그리 사연 많은
대장의 개였느냐?”
모두들 떠난 뒤에
정암 선생 다가오신다.
“그랬구나, 그랬구나
그래서 그랬구나.
웬일인지 눈에 띄어
데려다 놓았더니
너야말로 사연 있는
남다른 친구로구나.”
정암 선생 내 등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리시네.
그 옛날 당번병에게
내 얘길 들으셨는지
애틋하게 여겼는지
눈물을 다 흘리시네.
점순이 자기도 있다는 듯
꼬리치며 맴을 도네.
“너 또한 있었구나.
점순이도 있었구나.
그림 주고 데려온
네가 거기 있었구나.
북에서 온 점순이와
남녘 참 섬 진도 개가
정겹게 어울려서
잘먹고 잘 살아라.”
이 말씀 끝내고는
정암 선생 주저앉으셨네.

이일을 어쩔 건가.
그날부터 정암 선생
열이 펄펄, 앓는 소리로
밤을 꼬박 새우시네.
간호할 사람 없고
우리 둘은 눈만 멀뚱
그런데 이건 또 웬일
점순이가 배앓이 하더니
새끼를 낳았구나.
북에서 온 풍산개와
남녘의 진돗개가
어미 아비 되었으니
이 아니 경사인가.
정암 선생 어느 한 날
지팡이 짚고 나섰다가
강아지들 꼬물꼬물
처음 보고 놀라시는구나.
세상에 이런 일이
내 집에서 생기다니,
너희 둘의 새끼다보니
통일견이 아니냐?
얼씨구나 절씨구나.
경사 중에 경사로다.
정암 선생 기분 좋아
화필까지 드셨으니
백두부터 한라까지
조선 반도 그리시고
남녀노소 깃발 들고
어우러져 노니는데
개들도 꼬리치며
한바탕 도는구나.
강아지들 눈을 뜨고
이리저리 나다니는데
병석에 몸져 누우신
할아버지 큰일이네.
읍내에서 사람오고
아들 딸도 달려오고
아무래도 큰일이네.

난다.
미미 언니도 날고
별 단 개도 날고
나도 난다. 새같이 맨발로 난다.
지나가고 지나가고
지나가는 것이 지나가고
역사가 강물이 흐르고
우리는 그렇게 날고 있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느닷없이 대장의 개,
우리의 별 단 개가 한마디 했다.
근래 들어 입 밖에 내지 않던
서양 말을 오랜만에 발설했다.
그러고는 술술술, 이야길 풀어냈다.
한 서린 자기 얘기를 판소리 조로 읊어댔다.

구루마 지나가듯
버스 기차 자동차 지나가듯
역사 문화가 지나가고
나무배와 군함, 돛단배와 고깃배 지나가듯
바닷물이, 강물이 흐르고
세상에 인생사 흘러가듯
우리네 이야기도 흘러간다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