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에서는 독자 여러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잠시 보류하고, 최근에 제가 방문했던 어느 교회 출입구에 걸려 있는 성경 본문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한문 전서체 篆書體로 쓰인 성경구절이 액자에 끼어 걸려 있습니다. 한자 漢字는 모두 27글자입니다. 번역본을 살펴보니, 1925년에 샹하이(상해) 미국성서공회에서 발행한 천문리[淺文理] 상제판 上帝版입니다1).

본문은 욥기 8장 20-21절입니다. 한문이어서 잘 모를 수도 있겠습니다만 관심이 있는 분들 사이에서는 해독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본문입니다.

上帝不棄篤實者不
援助惡人上帝必使
爾盈口而喜笑滿脣
而歡呼
約伯記第八章二十?二十一節

이것은 욥의 친구 빌닷이 욥을 비난하면서 그에게 한 말입니다. 上帝不棄篤實者不援助惡人(상제불기독실자불원조악인)은 “하나님은 흠 없는 자를 버리지 아니하신다. 악한 자를 도와주지도 아니하신다.”는 뜻입니다. 上帝必使爾盈口而喜笑滿脣而歡呼(상제필사이영구이희소만순이환호)는 “(네가 만일 흠 없는 사람이 된다면) 하나님은 네 입을 웃음으로 채워주시고, 네 입술을 환호로 채워주실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말 [개역]에서는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20 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악한 자를 붙들어 주지 아니하신즉
21 웃음으로 네 입에,
즐거운 소리로 네 입술에 채우시리니
22 너를 미워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입을 것이라
악인의 장막은 없어지리라
([개역] 욥 8:20-22)

빌닷의 이 말에 대해 욥은 다음과 같이 반박합니다.

9 :1 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2 내가 진실로 그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
3 사람이 하나님과 쟁변하려 할지라도 천 마디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하리라
4 하나님은 마음이 지혜로우시고 힘이 강하시니 스스로 강퍅히 하여 그를 거역하고 형통한 자가 누구이랴 ([개역] 욥 9:1-4)

욥 8:20-22과 욥 9:1-4은 이어지는 문맥입니다. 욥 8:20-22은 빌닷이 욥을 공격하는 세 번째 발언의 끝 부분이고, 욥 9:1-4은 빌닷의 공격을 반박하는 욥의 대답 중 머리말 일부입니다.

제가 이번호에서 이것을 급히 다루고 싶었던 것은 욥 8:21-22과 같은 본문을, 성경에 적혀있다고 해서,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고, 이것을 우리의 좌우명 座右銘으로 삼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上帝不棄篤實者 不援助惡人
하나님은 독실한 사람 버리지 않으신다.
악한 자 돕지는 않으신다.
上帝必使爾盈口, 而喜笑, 滿脣而歡呼
하나님은 네 입을 웃음으로
네 입술을 환호로 채워주실 것이다.

이것을 글로 써서 액자에 넣어 하루에도 여러 번 드나드는 출입구 벽에 걸어 놓으면, 그곳에 출입하는 이들은 오며 가며 그 액자에 시선이 꽂힐 때마다 이 본문은 어쩌면 그에게 기도 祈禱나 진언 眞言 같은 구실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독실한 사람 버리지 않으시고 악한 자 돕지는 않으신다.”는 이 말은 말 내용 자체는 참 좋습니다. 그러나 욥기는 현재의 문맥에서는 이런 교훈을 독자에게 주려고 기록된 책이 아니라는 점에 착안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이 당하는 온갖 고난이 하나님의 정의로운 심판의 결과라는 점, 욥은 그런 벌을 받아 마땅한 어떤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런 벌을 받은 것이라고 설득시키려고 합니다.

이런 말은 이미 엘리바스가 고통당하는 욥을 두고서 일찍이 한 말과 비슷합니다.

7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8 내가 보건대 악을 밭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9 다 하나님의 입기운에 멸망하고 그 콧김에 사라지느니라
([개역] 욥 4:7-9)

욥의 세 친구들이 욥을 비난하면서 한 말 중에서 어디 틀린 말이라도 있던가요? 다 유대교의 전통적인 교리 아니면 경험적 지식을 말하고 있어서 욥마저도 친구들의 말을 반박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어쩌면 사탄이나 사탄의 조종을 받는 인물도 격언을 인용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서 좌우명 같은 것을 선택할 때는 주석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을 급히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민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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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淺文理 上帝 ??舊約聖經串珠??, 上海米國聖經會印發(1925). 상제판(上帝版)이란, 하나님을 “神(신)”으로 표기하지 않고, “上帝(상제)”로 표기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