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여 년 전, 1965년에 장신대를 졸업할 때, 필자는 졸업논문으로 “복음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asileia tou theou’와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천국사상 天國思想’”에 관한 비교논문(BD 학위)을 쓴 바 있다. 그 논문의 주요논지 主要論旨는 한국그리스도인들의 대다수가 생각하는 천국사상이 복음서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와는 거리가 먼, 피안 彼岸의 세계만을 생각하는, 즉 죽어서 천당 天堂에 들어가는 것을 추구하는 신앙 양태를 비판하였다. 반면에 필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차안 此岸의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서 힘써야 한다는 ‘당위 Sollen’을 논하였다.

지난 2002년에는 본 교단(예장통합) 제 87회 총회가 “조선 예수교 장로회 총회 창립100주년”을 바라보며 ‘생명살리기운동10년’(2002-2012)을 선포하였다. 이 운동은 세상의 생명과 인류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땅에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 즉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피조물이 더불어 살아가는 지구생명공동체” 건설을 목표로 삼았다. 본 교단 총회는 이 같은 ‘생명살리기운동10년’의 신학적 기초와 방향을 위한 ‘총회산하연구단체협의회’를 결성하였으며, 필자가 초대회장이 되어『하나님 나라와 생명살림』이란 책을 출판하였고, 그 다음 『하나님 나라와 생명목회』(고용수 엮음)란 책을 출판하였다. 여기서 논의 된 것은, 그동안 한국교회가 교회성장제일주의, 즉 ‘기독교왕국화’(마르틴 루터가 저항하고 개혁한)와 ‘예루살렘 성전화’(예수께서 헐라하시고 몸도 십자가에서 헐어버린)를 추구한 것을 지양 止揚하고, 세상의 생명과 인류의 소망이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이 땅에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곧 하나님의 ‘통치/주권’(Herrschaft)과 ‘왕권 Konigsherrschaft’이 실현됨으로써 모든 피조물이 함께 더불어 상생하는 지구생명공동체를 추구하자는 논지였다.

최근에 필자가 새삼스럽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오늘날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아직도 하나님의 통치와 왕권의 지배를 받으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간절히 ‘기다리며’, 그 나라가 이 땅에 속히 임하도록 애써 ‘서두르며’사는 ‘종말론적 하나님백성공동체’로서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로 사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 더러운 악령과 어두움의 세력인 사탄의 지배를 받으며 사는, 하나님의 백성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 나라와 이 백성들이 선한 정치와 정의로운 경제, 건강한 사회와 아름다운 문화가 창달된 나라다운 나라에서 사람대접 받으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폭력과 불의, 가진 자 와 갖지 못한 자 간의 심한 양극화와 갈라지고 터진 상처와 갈등 가운데 있으며, 아직도 질병과 가난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아픔과 고통가운데서 살고 있는 불쌍한 이 백성들, 무엇보다도 남북분단의 아픈 역사 속에서 배고픔과 질병, 폭력과 죽음의 두려움에 시달리며 죽지 못해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의 고통을 보며 그들의 신음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을 성서에서는 더러운 귀신이 들린 것으로서 ‘악령/ 惡靈,, an evil spirit’에 사로잡힌 것이라고 하며(막1:23), 사회학적인 용어로는 오래되어 뿌리가 박힌 폐단으로서 ‘적폐/積幣, deep rooted evils’라고 한다.

그렇다. 오늘날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already’ 이 땅에 실현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했지만, ‘아직도 not yet’ 우리는 악령의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 나라 이 백성들 역시 우리 사회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오래 된 적폐가 제거되지 않은 현실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이야 말로 하나님의 통치와 왕권이 지배하는 그의 나라를 간절히 기다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이 백성들이 ‘악령추방’과 ‘적폐청산’을 위해 힘써야할 ‘때’(카이로스)라 하겠다.

지금 우리 사회(정치, 경제, 문화 등)는 지난해 촛불혁명으로 대통령이 탄핵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고, 따라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적폐청산’이란 큰 과제로 인하여 아픔과 몸살을 앓고 있다. 요즘 정치권에서 말하는 ‘적폐청산’이란 성서와 신학에서 말하는 ‘악령추방’과 다를 바 없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루터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교회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적폐’, 즉 악령을 추방하는, 교회갱신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속에 뿌리박고 있는 ‘적폐’, 즉 악령을 추방함으로써 사회 개혁을 하는 일에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계속).

** 이 같은 맥락에서 한국기독공보사의 ‘주간논단’의 원고 청탁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운동과 악령추방’이란 제목으로 3회에 걸쳐 집필 한 것을 햇순과 공유합니다.

김종렬 목사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