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서 나는 환멸을 느끼는 기간을 지냈다. 나는 정치와 교회가 변화에 반동적인 모습을 보았다. 나는 스스로 급진주의(근본개혁주의)라는 딱지를 붙이고 살면서도, 실은 지난날의 황금시대를 회복하고자 대체로 애쓰는 세상에 비해 뒤떨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나는 기독교와 구체적으로는 가톨릭이 이른바 포스트모던세계에서 근본개혁적으로 변화하고 심오하게 타당성을 지닐 것으로 상상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변화가 내 생전에 이루어지리라 기대는 하지 않는다. 여러 해가 거듭될 수록 내가 느끼는 것은 내가 속한 전통을 잘 알고, 그것을 나의 비전에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수도회를 떠난 지 몇 해가 지나면서 나는 더욱 넓은 영역의 심층 심리학과 세계 종교에 관하여 발견하였는데, 그것은 나의 영성에 강렬한 영향을 끼쳤다. 그런 것이 각기 인간 실존에 대한 커다란 물음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며 문제를 제기하느냐 하는 것과 각기 나름대로 어떻게 미스테리를 지탱하는가를 보게 되었다. 오늘날 나의 신앙은 근본 바탕에서 보면 깊이 가톨릭적이지만 그밖에 수많은 다른 영향으로 색깔이 칠해졌다. 나는 모든 전승의 사람들과 형제애를 느끼며, 예술을 보면서도 영감에 대하여 절대적으로 열려있는 상상력을 나타낸 것일 때는 그 또한 우리가 미스테리와 접촉하게 해 주는 목적에 부합되는 것을 본다. 그래서 나는 같은 문장 안에서 궁극적인 의미의 한 점을 탐구하기 위하여 신학자와 소설가에게 동시에 도움을 청할 수도 있다.

개인적인 신앙이 먼저이지만, 그것은 늘 과정일 뿐이다. 교회는 우리에게 꾸준하고 변함없기를 기대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신앙의 끝자락에 머물러 사는 사람들에게 허용되는 완전은 아니다.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이, 누가 나에게 충실한 가톨릭 신자냐고 물으면, 나는 변명의 여지를 남긴다. 나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내면으로부터 이바지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나의 수호천사가 나를 그 중심에서 멀리 벗어나게 이끌었다는 사실도 나는 안다. 내가 느끼기에 나는 가톨릭교회의 영혼에 충성해 왔으나 그 구조나 규칙에 충성한 것은 아니었다. 교회도 상당한 변화를 겪었고, 나는 한층 더 근본개혁적으로 변화하여서 그 둘을 합치기는 어렵게 되었다.

나는 나의 종교적 유산에 대하여 끊임없이 새롭게 상상하는 데 나의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그 반면에, 동시에 나는 다양성의 원칙에 충실하게 산다. 그 중 가장 의미심장한 변화는 나의 신앙이 뜨거운 동정심을 가지고 잘 살아가는 쪽과 다양성의 상황 속에서 의미 있는 일들을 위하여 이바지하는 쪽으로 방향 설정이 되어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가톨릭 신앙을 유지하는데 집중하지는 않는다. 나는 선 불교 식의 가톨릭 신자이고, 도교적인 가톨릭 신자이고, 자인교 식의 가톨릭 신자이며, 심지어 무신론적인 가톨릭 신자이다. 내가 사랑하는 가톨릭 신앙은 철통같이 방어된 성채 속에 사람들이 포로처럼 갇혀있는 것이기보다는 오히려 위대한 미스테리 속으로 찾아들어 갈 수 있는 길이다.

나에게 내 자신만의 믿음을 허용하지 않는 그런 종류의 신앙에 대해서는 인내심이 별로 없다. 그런 신앙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확신이 없는 연인과 같이 질투하는 것이다. 그런 신앙은 요구하는 것은 많고, 불안정하고, 종종 비열하기까지 하다. 신앙은 우월감이나 오만을 조장할 수 있는데, 그것이 억지로라도 신자가 주류에서 떨어져 나와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자기 방어적으로 사는 소집단 속으로 들어가게 만들 수 있다. 신앙은 온갖 가치를 그 속에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그림자를 지니고 있으며, 선에 대한 잠재력이 큰 것만큼이나 악에 대한 능력도 크다.

때때로 신앙을 둘러친 울타리는 호전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저 포근하게 방어적일 따름이다. 한번은 선거기간 중에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사회자가 친절하고 동정적인 사람이었는데 나에게 보수적인 후보에게 투표할 것이냐고 묻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처럼 그도 종교를 정치적 보수주의와 연결시켜 생각하였다. 나는 옛날의, 심지어 고대의 사상에 대하여 강한 애착을 느끼는 반면에 정치적으로는 자유주의적인 경향이 있다. 나는 깊고 오래된 가치를 보존하기 원하지만, 알고 보면 가장 보수적인 입장은 자기중심적이고 편집병적이다. 동시에 전형적인 자유주의 정치는 18세기적인 자연신론 즉 미스테리가 없는 자연종교에 지나치게 묶여있다. 정치적으로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파벌이나 당파의 이원론적으로부터 헤어나는 길을 찾는 것이다.

사람들이 종종 자신들의 종교적 확신에 대하여 불편하게 느끼는 것은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다. 신앙이란 미스테리를 가리킬 뿐 만 아니라 심층의 깊은데서 솟아난다. 따라서 온전히 이해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것이다. 신앙은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거기서는 생각이 전적으로 제 집처럼 편안할 수가 없다. 신앙은 욕망에서 솟아나오며 불안에 휘감겨 있다. 우리의 신앙은 근원적인 상상을 형성하는데, 우리는 그것에 의하여 살아간다. 바로 우리의 삶은 거기에 의존하는데, 그럼에도 그것이 깊숙이 자리 잡고있기 때문에 그것을 명료하게 아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 이런 모든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앙에 대하여 예민하다.

신앙적이며 영적인 사람들 편에서 세계를 신자와 불신자의 세계로 양분하는 것은 심각한 잘못이다. 우리는 모두 신자들이다. 진정한 물음은 우리의 신앙의 대상과 상관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과연 우리가 절대적으로 소중하게 여길 만큼 충분히 위대하고 무한하고 가치가 있는가? 아무 것이라도 신이 되거나 우상이 될 수 있다. 신성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수없이 많이 있다. 그런 것은 우리가 아직 깊은 종교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배반한다. 그들은 결국 원자재로서, 그것이 변화되어 미스테리가 되고 우리는 그런 미스테리에 의하여 살아갈 수 있다.

신앙의 대상은 결코 순수하지 않다. 우리 모두는 금송아지를 숭배한다. 그러나 날마다 우리는 신을 상상하는 우리 방식을 항상 정화시킬 수 있다. 종교는 과정이지 달성이 아니다. 종교는 신앙들의 구성체가 아니라 탐험으로서 최상의 환경 속에서 늘 정제되어 가는 것이다. 신앙은 인간의 사랑과 같다. 때에 따라 변하고, 그런 변화에 대한 어떤 저항도, 그것을 엄격하게 지키려는 어떤 노력도 결국은 사랑을 약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