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몹시도 무덥던 여름날, 버스를 타고 지방을 다녀온 길에 택시를 탔습니다. 나이 지긋한 기사가 강남 터미널에서 긴 시간을 기다린 듯 쳐져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운행 도중에 이야기를 나눈 끝에 그 운전기사가 60대 후반임을 알았습니다. 안정된 사회 같으면, 연금으로 편하게 살며 노후를 지낼 나이에 지금도 힘겹게 일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요즘의 상황을 물은 것이 마치 뇌관을 건드린 양, 쌓였던 이야기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왔습니다. 경기가 하도 나빠서 택시 이용객은 줄을 대로 줄고, 교통 체증은 날로 심해지고, 연료비는 오르고, 요금은 매어 붙잡아 놓고, 도무지 팍팍하다는 것입니다. 평균 수입을 물으니, 하루 두끼 먹으며 새벽부터 밤늦도록 일 해도 한 달에 고작해서 일백 오십만원 정도 번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면 살지 않겠나 하는 생각으로 뜨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를 거울로 읽었던지, 묻지 않은 말을 덧붙입니다. 막노동을 해도 그보다는 나을 것이라며, 게다가 자기의 부인이 4년 전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 정도의 수입으로는 재혼도 못하여 혼자 힘들게 산다는 것입니다. 어떤 여자가 자기 같은 사람에게 시집오겠느냐고 자조적으로 묻는 것이었습니다.

이러 저러한 말로 위로하며 오는데, 이번에는, 어느덧 정치사회비평가로 변신한 기사가 말합니다. 민생은 이토록 어려운데, 대통령을 비롯한 여당의 지도자들은 위기도 아니라는데 기가 막힌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자기들은 배부르고 챙길 것 다 챙겨놔서 그런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반세기 가까이 택시 운전을 하며 살았는데 요즘같이 어려운 때가 달리 없었던 것 같다는 것입니다.

민생은 관심이 없고, 헤게모니 쟁탈전만 하는 모습을 보면, 자기 배가 부르면 남의 사정 모른다고, 민중의 고통이나 고뇌를 모르는 사람들 같다는 것입니다.

여러 날이 지났건만, 그 택시 기사의 말은 여운을 길게 남기고 있습니다. 필경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정곡을 찔러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가 당장에 풍요로운 사회를 내걸지는 못해도, 건강한 사회를 지향한다는 구호를 요란하게 외치지는 않아도, 최소한 편안한 사회, 땀흘려 열심히 살아가는 평범한 소시민들이 맘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그토록 어려운 것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일반 시민이나 지도자들이나, 내면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같은 원리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신경증적인 자아가 아니라 진정으로 참되게 다스리는 원리에 의하여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자아에 의한 다스림이 아니라 해방된 자아에 의한 다스림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면의 불안정이 아니라 내면의 온전함에 의하여 다스림의 원리가 서고 또 적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시민이 그래야 하지만, 특히 정치지도자들이 먼저 내면의 온전함을 이루기 위하여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신경증적인 자아 또는 팽창된 자아 때문에 숨은, 자아를 대속하고 구제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건강한 자아가 나타나서 적극적으로 표현되도록 태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말씀이 성육신하신 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면, 개별화 내지는 개성화 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은 사람의 일입니다. 성육신이라든가 개성화라는 말로 설명되는 내면의 온전함이 가능하려면, 우리의 정신생활 속에서 자아가 헤게모니를 포기해야 하고, 상황을 통제하고 사람을 지배하려는 욕구를 내려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이나 모든 분야의 지도자들이나 소시민 한 사람 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우리 모두가 내면의 온전함을 진지하게 이루고, 편안한 사회를 지향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쉬운 말로, 싸움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으로, 지배가 아니라 자유를, 경쟁이 아니라 협력으로, 이기고 지는 윈-루즈가 아니라 서로 이기는 윈-윈으로, 나-먼저가 아니라 항상-우리를 살리는 편안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지난여름, 무덥고 지루한 하루를 힘겹게 수고한 노기사가 말년을 편안하게 같이 지낼 반려자를 속히 만나면 좋겠습니다. 천호동에 산다는 그분에게 집 근처에 있는 교회에 나가서 한 식구가 되면 좋을 배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권했습니다. 그날 만났던 노기사를 위하여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