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아, 그리고 경완아.
삼촌은 이곳 통일 전망대에 올라 이 글을 쓴다. 휴전선이 가로막고 있어 갈 수 없는 금강산을 바라보며, 이 글을 쓴다.
“삼촌이 시인이야?”
너희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나의 사랑하는 조카, 경일아, 그리고 경완아. 미안하다. 시인도 못되는 주제에, 너희 말대로, 주제파악도 못하고, 늘 알쏭달쏭한 글만 써서 미안하다. 그래서 미안하다는 거다. 설익은 사람의 이야기는 대게 그렇지. 쉽게 쓰는 일이 가장 어렵지. 이야기를 잘 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알아듣기 쉽고, 덜 된 사람의 이야기는 뭐가 뭔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지. 그래서 삼촌은 이제 글 같은 거 그만 쓰려고 해. 이야기를 아주 쉽게 쓸 수 있을 때까지는.
경일아, 그리고 경완아. 그렇지만 마지막으로 이야기 하나만 더 하자. 그래 마지막 이야기 하나.
개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그 개는 이웃집에 사는 여자 친구, 그래, 옆집에 사는 친구를 좋아했다. 그래서 매일 옆집에 가서 놀았단다. 자기 집도 지키지 않고. 그러니 주인이 좋아했겠니? 그래서 집주인은 그 개를 나무 기둥에 묶어놓았다.
주인집에는 아기가 하나 있었다. 그 아기는 개를 예뻐했단다. 그러나 개는 아기가 자기를 예뻐해주는 것이 싫지는 않았지만, 그보다는 옆집의 친구가 더 좋았다. 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 개는 친구를 불렀지.
멍멍, 멍멍멍.
친구가 찾아왔다. 그러나 집안으로 들어올 수가 없었다. 마루 위에 주인 할아버지가 긴 담뱃대를 물고 앉아 계셨거든. 그래서 친구는 울타리 밖에서 빙빙 돌기만 했지.
멍멍, 멍멍멍.
개는 계속해서 친구를 불렀지. 그래서 친구는 사립문 안으로 살그머니 들어섰어.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마루 위에 앉아 계시던 주인 할아버지가 갑자기 고무신짝을 집어 던지며 호통을 치셨어.
“이놈의 개, 저리 썩 없어지지 못하겠니?”
친구는 깨갱거리며 도망치고 말았지.
그날 밤이었어. 달이 떴어. 친구가 가만가만 울타리 틈으로 기어 들어왔어. 두 친구는 마루 밑에서 만났어. 그리고 소곤소곤 얘기했어.
“보고 싶었어.”
“나두.”
“가지마.”
“얻어맞는 걸.”
그때 주인 할아버지가 나오셨어. 변소에 가시는 모양이야. 그런데 개가 보이지 않겠지? 그래서 마루 밑을 들여다보신거야.
“이놈의 개새끼, 여우같이 또 왔구나.”
할아버지는 다시 고무신짝을 집어 던지셨어. 친구는 다시 도망갔지. 그래서 그 개는 속상해서 울었어. 밤 새워 울었어.
아기가 잠이 깼어. 그리고 말했어.
“엄마, 개가 왜 울어?”
“아파서 그런가 봐.”
엄마가 대답하셨어. 그런데 이튿날 아침 할아버지가 말씀하셨어.
“얘들아.”
“네?”
아기의 아빠와 엄마가 할아버지 앞에 손 마주 잡고 서 계셨어.
“얘들아.”
“네?”
“저 개 말이다. 밤중에 개가 울면 집안이 좋지 않다. 없애버려라.”
“그렇지만 어떻게….”
그렇지만 할아버지의 명령은 어길 수가 없었단다.
“엄마, 개가 어디 갔어?”
“…….”
“아직도 아파? 병원에 있어?”
“그래, 많이 아파서 오래 있어야 돼.”
엄마가 말씀하셨어.
그리고 얼마 후, 옆집 개가 새끼를 낳았대. 그런데 글쎄 동네 청년들이 잡아먹은 그 개를 꼭 닮은 새끼가 한 마리 있지 뭐니? 그래서 그 새끼개를 가져오게 됐어.
“엄마, 엄마.”
“응?”
“개가 왜 작아졌지?”
“…음, 그건 말이다. 아파서 주사를 맞았거든? 약도 많이 먹구. 그래서 작아진 거야. 그렇지만 이제 자라. 자라서 그때같이 커. 그때만큼 크고, 더 자랄거야.”
엄마가 말씀하셨어.
“음, 그렇구나. 아파도 가만히 있어야겠네. 주사 맞구 약 많이 먹으면 나도 저렇게 작아질 게 아냐?”
아기가 말했어.
“…….”
엄마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
경일아, 그리고 경완아.
거짓말은 참 나쁜거야. 그래서 삼촌은 신문사도 그만두구, 동화를 썼어. 그런데 이제는 동화두 쓸 수 없게됐어. 거짓말을 써서는 안될 것 같아. 삼촌의 이야기를 이해하겠니? 그래, 지금은 이해를 못해두 나중엔 이해하게 될거야. 그리고 삼촌도 언젠가는 이야기를 아주 알아듣기 쉽게 쓸 수 있을거야. 그때까지는 좀 오랫동안 기다려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