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순, 공동체성서연구

 

 


5/2010

 

 

 

 

 

 

 

 

 

 

 

 

영혼의 논리와 언어

 

영혼의 종교(The Soul's Religion) (75)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

토마스 무어 지음






 




날카로움을 무디게,
매듭을 풀게,
섬광을 부드럽게,
티끌과 합쳐진다.



물질 속에서 상상됨으로써 이루어지는 자아의 구체적 상실은 영성 수련의 핵심에 놓여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종교 언어나 제도에 명백한 언급 없이도 성취될 수 있다.

나도 목공예를 조금 한다. 그런데 그걸 내가 왜 하는지 때때로 의아하게 생각한다. 나에게는 도구가 많지도 않고, 그나마 있는 것조차도 다루는데 재주가 형편없다. 그러나 나는 나무를 만지고 옮기고 자르고 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나무가 지닌 무한한 색깔의 범위를 눈여겨보는 일과 기름이나 왁스를 먹이면 어떻게 그런 숨은 빛깔과 흔적이 배어나는지 보는 것을 좋아한다. 나무 전체가, 그 결 뿐 아니라, 나에게는 고집이 센 것처럼 느껴진다. 기대했던 대로 잘라지지도 않고, 아무리 조심해도 내가 만드는 가구에서 옹이가 빠져나간다. 내가 상다리를 너무 휘게 만들어서 조각들이 쉽사리 실험 예술로 통할 수 있을 듯하다.

목공예에 얽힌 고독과 집중과 창조적 표현을 나는 사랑한다. 게다가 의심의 여지없이 목공예는 가치관을 가르쳐 주고 관상기도를 북돋는다. 많은 사람들이 믿기를 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이 세상으로부터 멀어져야 할 것처럼 그러지만 목공예는 색다른 교훈을 가르쳐 준다. 즉, 물질과 작업에 그토록 가까우면서도 수도원의 새로운 노력에 착수한 초심자가 된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 도마복음서에 보면, 예수가 말하기를, 여러 가지로 다르게 감동을 주는 귀절이 있는데, “나무 조각을 잘라라. 그러면 내가 거기에 있다.” 내가 말 그대로 나무 조각을 가르고 처녀 펄프에서 태고적 아로마를 맡을 때, 나는 다시 한 번 나의 감각이 신의 현존을 찾아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는 또한 거기서 나의 본래적 자아를 발견하고, 소우주 속에서 온 세계를 발견한다.

같은 정신이 나를 에릭 질 Eric Gill의 작품으로 끌어간다. 그는 1920년대에 공동체를 만들었는데, 거기서 일꾼들이 의식적인 통과제의를 거치면서, 공예는 신의 영광과 이웃의 유익을 위하여 완성된다는 사상을 받아들인다. 질은 모순으로 가득한 사람으로서 열정적이었다. 삶이나 예술에 있어서 극히 에로틱하였다. 그럼에도 그는 생활면에서나 의복에 있어서도 장인 수도사처럼 헌신적이었다. 그의 특유한 영성은 미덕과 도덕성을 이해하며 애쓰는 이에게는 도전이 되는 것으로서 기독교의 경건과 작업과 사물에 대한 경의와 이교도적인 에로티시즘을 배합하였다.

내 책의 일부는 아주 오래 전에 질이 디자인 한 자체로 앉혔다. 그리고 작업에 대한 내 자신의 태도에서도 그의 영향을 느낀다. 나날의 작업과 공예는 내 영성의 주요 부분을 형성하는데, 내 자신의 영성 생활은 교회를 할 때보다도 작업을 상실 할 때 더 감소하리라 생각한다. 나의 이상은 생활화된 영성으로서, 거칠기 보다는 섬세하고, 응용적이기보다는 통전적이며, 세속성에 반대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불가분의 것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질은 수 천 시간을 들여서 석판에다 우아한 알파벳을 새겨 넣었고, 그리고 나서 서구 세계에서 잘 알려진 것으로서 가장 에로틱한 에칭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의 서예와 에로틱한 그림이 양쪽 다 강렬한 영적 질을 지녔는데, 마치 그 둘이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 듯하며, 그래서 그의 알파벳은 거의 타계적이면서도 감각적이고, 그의 에로틱한 이미지는 사람들을 불순한 관능으로 끌어내리기 보다는 오히려 감각적인 정신세계로 끌어올린다.

나는 내가 출판한 글들이 다분히 나의 일부인 유모어와 에로티시즘을 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알기에 좌절감을 느낀다. 엇비슷하게 밖에는 단어들 속으로 내가 들어가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독자들은 나에게 그런 특성이 없는 것처럼 이해할 것으로 보인다. 출간되지 않은 소설의 단편들 속에서나 색다른 글 속에서 나는 이런 것을 쏟아 놓는다. 에로티시즘의 대가인 에릭 질 같은 인물에게 내가 그토록 강렬하게 끌린다는 사실은 동시에 나 자신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된다. 그럼에도, 끊임없는 좌절이기도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글을 쓰면서 그다지 감각적이지 못한 가면을 쓴다. 어쩌면 내가 사적인 형태의 에로티시즘에 끌려서 사는 듯한데, 결국 이런 에로티시즘은 나의 공적 생활 속으로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스며드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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