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는 단순히 책이 아니다. 성서를 읽다보면 마치 살아있는 말씀처럼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독자를 쪼개고 부수고 다시 일으켜 세우고 변화로 이끄는 살아있는 힘이다. <고요함의 지혜>에서도 그런 힘을 만날 수 있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스승의 말씀을 듣는 것처럼 느꼈다. 그리고 세상이 주는 것과는 다른 평화와 위로를 만날 수 있었다. 깊은 지혜의 샘물을 긷는 것처럼 맑게 눈을 열어주어 나의 신앙과 삶을 새롭게 볼 수 있게 해주었다.

현대의 가장 주목받는 영적 스승이라 불리는 톨레는 자신이 깨달은 200개의 영적 경구를 10개의 주제로 무리지어 전해준다. 각 경구들은 깊은 사색과 명상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읽는 책이 아니다. 사색하고 명상하는 책이다. 이 경구들은 여러 종교들의 가르침과도 다르지 않다. 자신의 깨달음을 통하여 톨레는 그 가르침들을 현재화하고 쉽게 다가가도록 전해 준다. 그의 경구를 통해 성서도 더 분명해지고 살아나고 풍성해진다.

톨레는 1장 ‘안과 밖의 고요함’을 통해 존재의 근본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준다. 그의 고요함에 대한 성찰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이다. 존재의 근본이 바로 이 고요함이기 때문이다. 이름이나 형상보다 훨씬 더 깊은 차원에 존재하는 나의 실체는 ‘지극한 고요함’이다. 이 절대적인 고요함은 다만 ‘소음이 없는 것, 혹은 내용물이 없는 텅 빔과 같은’ 상대적인 고요함이 아니라, 모든 형상이 태어나는 근원적 의식이며 창조의 지혜이다. 고요하고, 비어있고, 무 無이지만, 그 안에는 모든 것이 태어날 근원적 순수 의식, 의지, 뜻이 있다. 우리는 이것을 신이라 이름 지었다.

우주는 어디에서 태어났는가? 빅뱅이 시작된 그 순간, 그 에너지를 잉태하고 감싸고 있던 ‘지극한 고요함 혹은 텅 빔’은 무엇인가? 형상이 생기고 물질이 태어났지만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근본적으로 이 고요함으로 연결되어있다. 내 안에도 내 밖에도, 이 우주 안과 밖에도, 이 지극한 고요함이 모든 존재의 눈이 되어 보고 있다. 지극한 고요함으로 본다는 것은 세상을 창조하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신 하느님의 눈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럴 때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저자는 생각, 에고, 지금 이 순간, 참 나, 수용과 순응, 자연, 관계, 죽음과 영원, 고통에 대한 존재론적인 명상과 깨달음을 통해 독자들에게 현실과 초월이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초월적인 것은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다. 아니 초월적일수록 생생하게 깨어있는 감각을 갖고 현실을 보게 한다. 보통 우리는 에고가 만들어낸 생각과 감정, 꿈, 욕망 등을 통해 잠들어 있거나 혹은 선 잠 깬 상태로 살고 있기에, 우리가 말하는 현실은 실상은 비현실적인 것이다. 에니어그램이 말하는 격정에 붙들려 지금 이 순간 참 나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적 가르침은 끊임없이 참된 실제에 대해 말하고 깨어나라고 말한다. 지극한 고요함과 연결될 때, 우리는 가장 종교적이며, 가장 초월적이며, 가장 현실적인 사람이 된다. 지금 이 순간 존재의 완전함을 가장 생생히 느끼게 된다.

우리는 잘 때 꿈을 꾼다. 꿈에 나오는 많은 등장인물이 있고, 그 중에는 나도 있다. 꿈에 등장하는 나와 꿈을 꾸며 바라보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누가 참 나인가? 낮의 생활도 꿈과 다르지 않다. 꿈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을 바라보는 내가 있다. 역할로서의 나와 바라보는 나는 다른 존재이다. 등장인물이 에고라면 바라보는 나는 존재이다. 한바탕 꿈을 꾸며 우리는 두려워하고, 절망하고, 기뻐하고, 희망한다. 이 꿈을 실제라고 우긴다면 그 얼마나 우스운 일이 될까. 꿈에서 느끼는 감정, 생각, 몸이 참 나라고 믿는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꿈은 꿈일 뿐이다. 깨어나라, 깨어나라, 깨어나라, 그러면 ‘참 나’가 보일 것이다.

‘지극한 고요함’은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본래적인 것이다. 그것을 갖기 위해 애쓰고 수고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그 고요함 속에 머무르는 것은 우리가 하는 어떤 선한 활동들보다도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다. “소란한 생각을 벗어나 고요함 속에서 모든 사물과 모든 사람을 만나는 것은 당신이 이 우주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내가 고요함이라 부르는 그 보석은 기쁨이기도 하고 또한 사랑이기도 하다.” 톨레의 홈페이지에 실려 있는 글이라 한다. 사순절을 보내며 지극한 고요함 속에 머물려 하느님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너무나 소란스러운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