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나에게 단점을 얘기해 보라면 난 언제나 내 자신의 우유부단함을 지적하곤 했었다. 에니어그램을 공부하기 전까지는 이런 나의 우유부단함이 어디에서 기인된 것인지 알지 못한 채 그저 스스로를 질책하면서 움추러 들기만 해왔다.

에니어그램을 통해 나의 특성들을 확인해 봤을 때, 나는 확실히 6번 유형이 맞는 것 같다. 내 마음 깊은 곳의 뭔지 모르는 불안감을 항상 느껴왔기 때문이다. 특별하게 정말 형광등이 떨어지거나, 길을 가다 넘어지게 될까봐..아니면 사고가 생길까 하는 생각들로 걱정을 하는 일은 드물지만, 어느 순간 보면 나는 사소한 걱정을 하면서 겁을 집어 먹고 있을 때가 많다.

난 어릴 적부터 아빠의 따뜻함이 참 좋았었다.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시고, 내가 실수를 저지를 때도 언제나 내 편이셨다. 지금까지도 아빠에 대해서는 난 항상 믿고 의지하는 편이다. 이런 의지하는 게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는 친구들을 많이 의지하고 성인이 되고서는 남자 친구를 많이 의지하는 버릇이 있다. 혼자 있는 것이 힘들게 느껴지고 누군가와 같이 있거나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어떤 일을 수행할 때도 그렇다. 혼자서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 보다는 조별로 시키거나, 짝을 지어주면 난 편안하게 일을 할 수가 있고, 그럴 때 내 능력도 더욱 발휘가 되는 것 같다. 특히 권위있는 사람의 인정을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또, 나는 어떤 것을 결정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사소하게 점심 메뉴를 결정하거나 옷을 사는 일부터 크게는 전공을 결정하거나 내 장래에 대한 선택의 문제까지 어떤 것이 더 나을지에 대해서는 결정을 하는 그 순간까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결정을 하고서 후회하는 것은 허다한 일이고, 불안해서 누군가와 상의를 하게 되어도 그 사람의 말이나 충고에 휩쓸려 버리곤 한다. 친구들 중에 매우 독립적이고 씩씩한 아이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면서도 난 나를 잘 몰랐기 때문에 그런지 매번 같은 갈등을 겪곤 했다.

나는 소위 ‘모범생 스타일’이라고 친구들이 말한다. 내가 지극히 공부를 잘하고 반듯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어떠한 규칙이나 틀을 벗어나는 것을 거의 안하려 하고, 더 솔직한 얘기는 벗어나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간혹 어떤 틀을 벗어나게 되는 일이 생기면 다른 사람에 휩쓸려 행동 했다가도 그 분위기에 젖지 못하고 내내 불안해하기만 하기 때문에 사실 일탈의 재미도 그리 좋지는 않다. 그렇지만 간혹 내가 생각해도 놀랄 만큼 돌발적인 행동을 할 때도 있다. 주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나 굳게 믿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일을 진행시키곤 해 사람들을 놀래킬 때도 있다.

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친구들도 많고, 특별히 친구들과 트러블을 일으키지도 않는 편이다. 특히, 좋은 사람이 있으면 푹 빠져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한번 마음이 상하는 일이 생기면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내 자신이 많이 불편해지고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의심도 많아지고, 머리 속에서 계속 생각하고 곱씹는 작업을 반복하며 꼭 외관상으로도 티를 내서 그 사람이 알아주기를 바란다.

내가 기분이 좋을 때는 수다스러울 정도로 말이 많고 잘 웃고 누구에게나 친절하며, 남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든다. 남들도 나를 편안하게 생각하고 말이다. 의욕도 많아져서 누구보다 부지런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스트레스 받거나 기분이 상했을 때는 몹시 움추러 들면서 망설이고 열등감에 휩싸이고, 끊임없는 불안감에 힘들어 지면 남들에게 공격적인 언사를 내뱉기도 한다. 결국 반격정 때문에 9번으로 밀려가는지 나태함과 자기비하에 빠져 버린다.

특히, 새로운 환경에 처하게 됐을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내가 안 해본 일이나 안 먹어본 것, 안 가본 곳에 대해서는 안하고 안 먹고 안 가려는 쪽으로 마음이 더 많이 기울어진다.

나의 이러한 성향들이 아버지나 혹은 다른 사람에게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방어적인 모습들인 것을 이제서야 확인하게 되었다. 나의 안전보장에 대한 욕구 때문에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주변의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라는 것도 말이다. 결국은 절대 남들이 나를 보호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순간적으로 남들 등 뒤로 숨으려고 했던 내가 어찌나 어리석게 느껴지는지.

나를 정확히 안 이상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깨달았다. 나는 자신의 두려움과 불안감을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던 것을 포기하며,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회피하거나 방어적인 모습을 보이던 것, 내가 안전하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감시하던 것을 포기한다. 또, 내가 독립적인 사람이며 능력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며, 내 자신과 나의 재능과 나의 미래를 신뢰하고 있다는 것, 내가 안전하며 나에게 주어지는 일이 무엇이든지 그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나의 선한 마음을 온전히 발휘하면서도 씩씩하게 내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그동안 나의 불건강함 때문에 본의 아니게 피해를 본 주변 사람들도 아마 많을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이 다 내 문제였는데 말이다. 그렇지만 내 자신을 비하하는 일도 많이 줄여 나갈 생각이다. 실제 내 모습과 상상 속의 자신감 없는 내 모습은 분명 다를테니깐. 어떠한 관계를 민감하게 느끼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다른 사람들 속에서의 내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이 나의 현재의 모습을 바로 알고 자신감을 갖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에니어그램을 공부하고 나서도 아직까지는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버릇은 무우 자르듯 베어내기가 쉽지 않은게 사실이다. 그들이 좋고 함께 있고 싶다. 그러나 내가 바로 서지 않으면 그들도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물론 이거니와 내 무게를 그들에게 싣는 것이 그들을 힘들게 하리라는 것을 알기에 점차적으로 혼자서 하는 일을 늘려 나가려고 한다.

실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행동 뿐 아니라 마음가짐도 좀 더 독립적이고 담대하게 먹고, 마음 속 은근한 불안함과 두려움을 떨쳐내 보려고 한다.

이 소심한 나에게 영원한 나의 백그라운드인 하나님을 의지하면, 나는 담대하고 용기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 확신한다. 열등감도 우월감도 벗어버리고 성실하면서도 용감한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야겠다. 주님의 은총이 뼛속 깊이 스며들기를 간절히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