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균형잡힌 요한

부활의 첫 날 아침에 요한이 보여준 균형 감각은 #2번 유형의 건강한 상태를 나타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막달라 사람 마리아가 이른 새벽에 ‘빈 무덤’을 발견하고 와서 보고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 갔습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으로 갔다. '둘이 함께 뛰었는데, 그 다른 제자(요한)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서, 먼저 무덤에 이르렀다.'그런데 그는 몸을 굽혀서 삼베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으나,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요한이 결국은 전승 속에서 부활을 제일 처음 믿은 제자로, 사도로 인정받기는 하였으나, 그 당장에는 베드로가 무덤 안에 먼저 들어가도록 배려하였을 만큼 균형이 잡혀 있었다. 이 뿐만 아니라 그 뒤에 예수가 디베랴 바다에서 일곱 제자들에게 나타났을 때도 그랬다. 밤새도록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은 제자들에게 예수가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하였을 때 그대로 했더니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을 정도로 고기를 많이 잡았다. 그 때 요한이 베드로에게 '저분은 주님이시다'라고 말을 하였는데, 막상 예수에게 다가 가려고 바다로 뛰어내린 사람은 베드로였다.

이렇게 늘 베드로와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안정되고 균형잡힌 #2번의 겸손하며 건강한 모습이다. 요한복음 공동체를 들여다보면 수제자요 으뜸 사도로 인정된 베드로와 리더십을 공유하며 상호보완적인 입장에서 활동한 데서도 그의 겸손을 볼 수 있다.

예수의 승천과 성령 강림 사건 이후 처음 교회를 세우고 이끌어 가는 데도 요한은 베드로와 함께 탁월한 역할을 한다. ?아름다운 문’ 곁에 앉아서 구걸하고 있던 지체장애인을 고칠 때도 베드로와 요한이 함께 성전에 올라가던 길이었다(행3:1-10).

부활을 증언하며 설교하다가 붙잡혀 가서 감옥에 갇힌 때도 베드로와 요한은 함께 있었다(행 4:1-3).

베드로 중심과 요한 중심이 따로 형성될 법도 한데 둘이 합쳐져서 요한복음 공동체가 이루어졌다고 신학적으로 이해한다. 요한의 균형 잡힌 겸손한 태도가 가능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처음 교회에 충격적으로 중대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바로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해지고 사마리아 사람들이 '주 예수의 이름으로'세례를 받은 것이다.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대표로 파견하였다. 대단히 중요한 대표성을 함께 감당하였다.

사도 바울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요한은 베드로와 함께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것을 볼 수 있다. 바울의 기록이다 : ?그래서 기둥으로 인정받는 야고보와 게바(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를 인정하고, 나와 바나바에게 오른손을 내밀어서, 친교(코이노니아)의 악수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이방 사람에게로 가고, 그들은 할례 받은 사람들(유대사람들)에게 가기로 하였습니다(갈2:9).

선교 영역과 역할 분담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진 역사적 사건에서 요한이 균형자 역할을 감당한 일이었다. 평상시에 사랑받는 것이 기본적인 욕망으로 작용하는 #2번 유형이 최상의 상태에서는 그런 욕망을 뛰어 넘어서 사심없는 사랑을 베풀며 침착하고 감정의 균형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우아하게 행동한다. 부활의 증인이 되어 베드로와 함께 리더십을 발휘하는 요한에게서 #2번 유형의 최고로 건강한 모습을 본다.

4.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는 요한

‘사랑받던 제자’ Beloved Disciple 요한이 바로 ‘사랑하는 사도’가 된다. 건강한 #2번 유형이 그렇듯이 요한은 자기가 사랑 받는 것에 구애받지도 연연하지도 않고 사랑할 뿐이다. 자기는 ‘돌보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이란 건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표본이 된 요한은 성서에 영원한 기록으로 남는 요한복음서에서 나타나듯이 기독교 예술사에서 뚜렷한 이미지로 나타난다.

예수 상을 그릴 때 기본적으로 십자가 상을 그린다. 역사적으로 세 가지 경향을 본다. 처음 교회가 박해 상황 속에서 카타콤에서 지낼 때는 숨어서 지내던 시기였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A.D. 313년에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에 대한 박해를 끝내고 정식 종교로 공인하였다. 그 이후 기독교는 십자가를 승리의 십자가로 표현하며 힘의 상징으로 삼기 시작하였다.

십자가 상의 두 번째 경향이 사랑의 십자가요, 세 번째 경향이 고난의 십자가였다. 승리의 십자가는 예수를 근육질의 강한 형체로 표현하든가 승리자 예수의 검으로 표현되기까지 하였다. 두 번째 사랑의 십자가는 십자가 위의 예수가 아래로 내려다보며 어머니 마리아와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사연을 말하는 장면으로 묘사된다. 세 번째 고난의 십자가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이나 앙상한 모습과 함께 팔도 온 몸도 축 늘어진 모습으로 그린다.

이런 전형적인 십자가 상 가운데 두 번째 성향이 바로 가상 칠언 즉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남긴 마지막 일곱 마디 말씀’으로 기록된 대목(요19:26-27)에서 본다. 4복음서를 통털어서 십자가 곁에 남은 남성 제자는 요한이 유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요한은 사랑의 아이콘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화 ‘최후의 심판’에서도 요한은 사랑받는 제자로 묘사된다. 그밖에도 한스 멤링 Hans Memling 같은 수많은 성화 작가들이 한결 같이 요한을 여성처럼 묘사하는 것을 본다.

에니어그램 연구자들 가운데 미국에서는 #2번 유형의 남성은 없다고 단정하는 사람이 있다. 타당한 말은 아니지만, 이는 #2번 유형은 남성들조차도 사랑에 민감한 만큼 섬세한 여성성 Feminity 또는 anima가 다른 남성들에 비해 훨씬 강하기 때문이리라 본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에도, 십자가 곁에 남은 사람들이 여성들이었는데, 요한만 있었던 것도 사랑에 강한 여성성이 지닌 강점을 드러낸다고 볼 수도 있다. 특히 십자가에서 곧 운명할 예수가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효심의 극치를 보이는 순간에, 평소 사랑하던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를 의탁하는 장면은 사랑의 극치라 묘사함이 당연하다. 그 자리에는 요한의 어머니도 함께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즉 ‘그들 가운데는 막달라 출신 마리아와 야고보(작은)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세베대의 아들들(큰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있었다.’ 요한은 이제 예수의 어머니를 자신의 어머니로 모시게 된 것이다. #2번 유형이 건강한 상태로 성숙되고 통합될 때 사심 없는 도움과 사랑을 실천할 뿐 아니라 대의를 위하여 자기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순교자적 자세를 취한다.

요한은 예수의 사랑을 받은 제자로서 또한 그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사도로서 존경을 받은 인물이다. 심지어 ‘믿는 사람들 사이에 퍼져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들’(요21:23) 하였을 정도로 소문이 났다. 물론 예수의 말씀이 잘못 해석되고 전달되기는 하였으나 요한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전설에 의하면 요한은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박해를 피하여 에베소에 가서 살았다고 한다. 요한의 상징이 독수리인 만큼 그의 사랑과 영성이 하늘 높이 치솟은 듯하다. 인생이 남기는 것은 결국 어떻게 사랑하였느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