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겨울 짱구는 대장이 죽인 거라 생각됐어요.
맞아요, 대장은 날 헌신짝같이 버렸고, 친구를 죽인거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렇잖아요? 대장이 짱구에게 싸움을 시키지 않았다면 짱구는 싸움터에 나가 그렇게 죽진 않았을 거예요.
짱구가 싸움을 좋아했다구요? 그건 그렇게 훈련을 시킨 탓이죠. 사람도 훈련을 시키면 그렇게 되지 않아요? 짱구가 괜히 싸움을 좋아하고, 싸움을 즐기다가 싸움터에서 죽은 거라면 할 말이 없죠.
그러나 내 친구는 그렇게 죽은 게 아니었어요.

난 다시 앓기 시작했어요.
밥도 먹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하고 누운 채 똥을 싸고 오줌도 싸고, 코도 헐고 눈꼽 끼고 털도 빠지고…….
너 이러다 그냥 죽을래?
…….
너 이러면 그냥 죽게 된다구.
고향 친구가 말했어요.
당번병은 밥그릇에 우유를 부어주며 안타까워했죠.
알아, 그냥 이대루 죽고 싶어.
차라리 짱구를 따라가구 싶어.
아서라, 이냥 죽을 수야 없잖니?
내 어떻게 해보마. 그래 어떻게 해봐야지…….
당번병은 혼자서 다짐하듯 말했어요. 그리고 얼마 후 나는 부대를 빠져나왔어요. 그의 고향 친구, 그러니까 진도 출신 당번병의 친구네 집으로 오게 돼요.
그러나, 부대를 나와, 키가 작고 돗수 높은 안경을 낀 새 주인에게 내 목줄이 넘겨졌을 때, 나는 알 수 없는 앞날에 대하여 웬일인지 불안했어요.
등 뒤에서 나팔소리가 들려왔어요. 성조기가 게양대에서 내려지고 있었죠. 옛날 같으면 곧 산책을 나갈 시간인데, 옛날의 산책로를 걸으며 나는 낯선 거리에 홀로 선듯 춥고 외로웠어요.

그게 너였어.
“맞아, 삼촌의 개야!”
나는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다.
“보라야, 뭐라고 혼자 중얼거려?”
미미 언니가 묻는다.
“저기, 저, 대장의 개가 바로 삼촌의 개라구. 별 단 개가 바로 우리 삼촌이 잊지 못하는 그 백구라구.”
“점점 모를 소릴 하는구나. 무슨 얘긴지 원…….”
“그러니까, 그 키가 작구 돗수 높은 안경을 낀 새 주인이 바로 우리 삼촌이라구. 우리 막내 삼촌…….”
“그래 그래, 좀 차근차근 얘기해보렴 보라야.”
“그래 그래, 차근차근 얘기할게, 미미언니.”
내가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 그래, 차근차근…….”
“우리 막내 삼촌은 카투사였어. 카투사 KATUSA가 뭐냐면, 한국에 와 있는 미국 육군에 배속된 한국 군인이야. 우선 영어를 잘해야 갈 수 있대.”
“그래서?”
“막내 삼촌은 영어를 아주 잘했거든. 그렇다고, 영어를 잘한다고 다 가는 건 아니고, 영어를 잘하는 사람 가운데서 가려 뽑는대, 그런데 우리 막내 삼촌이 거기 뽑혔던 거지, 그런데 삼촌은 개를 무척 좋아했어. 아냐, 지금 개 얘기보다 먼저 얘기할 게 있어.”
“그래 그래, 차근 차근…….”
“삼촌은 논산 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카투사에 배속되면서 한 번 더 훈련과정을 거치는데, 그 곳이 미군부대였어. 그러니까 미군부대에 근무하게 된 한국군에게 미군부대에서 한 번 더 적응 훈련을 시킨달까. 여하튼 그 두 번째 훈련을 마치는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