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고난과 씨름하는 욥

고난은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원초적 문제이다. 고난은 누구라도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려 한다. 인지상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고난을 대면하게 되고 고난과 씨름하게 된다. 그 방식은 성격 유형에 따라 다르다.

에니어그램 #4번 유형은 고난에 대하여 민감하다. 고통을 현실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고통으로 인해 느끼는 감정을 가지고 씨름하기를 곧잘 한다. 욥이 느닷없이 고난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초기에는 스스로 건강하게 살고 있었을 때라, 상상하기 어려운 충격과 상실을 경험하였으나, 모든 일을 있는 그대로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고난을 그야말로 ‘필요한 고난’으로 받아들였고 ‘자발적 고난’으로 견뎠다.

하지만 재산도 잃고, 자녀도 잃었을 때만 해도 견디던 욥이지만, 견디기 어려운 악성 습진이 안겨주는 고통은 그를 지치게 만들고,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게다가 고통을 당할 때 누구보다 힘이 되고 위로가 되며 의지할 사람인 부인조차도 그를 힘들게 만들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친구들마저 도전하고 비판하며 속을 뒤집어놓고 신경을 건드렸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충성하려던 욥도 격심한 고난과 씨름하면서, 오히려 자기감정을 가지고 씨름하기에 이른다. 고통에 민감해지면서 자기 자신에게 몰입하며 스스로 위축되면서 현실을 도피하게 된다. 욥은 자연히 체념하면서 자기 내면 속에 깊이 빠져들며 스스로를 제한시키고 깊은 상실감에 빠져든다.

이쯤 되었을 때, 욥은 감정 표현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는 #4번 유형의 속성을 드러냈다. ‘욥은 이 모든 어려움을 당하고서도, 말로 죄를 짓지 않았다’(2:10). 입술로 부정한 말이나 참람한 말을 하지 않았다는 표현은 ‘맘속으로’ 죄를 지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4번 유형들이 이런 경우에 격정에 사로잡히게 되는데, 욥도 예외가 아니다. 시기는 내게 없는 것을 남이 가지고 있을 때 나오는 것이다. 내가 고통을 겪고 있을 때 남이 잘 나가는 것을 볼 때 시기가 난다.

욥이 시기를 드러내는 방식이 있다. 누구나 공감하기 쉬운 표현을 택한다. ‘내게 일어난 일은 기억에 떠올리기만 해도 떨리고, 몸에 소름이 끼친다’(21:6)고 말하고 나서, 대조적으로 말한다. ‘어찌하여 악한 자들이 잘 사느냐? 어찌하여 그들이 늙도록 오래 살면서 번영을 누리느냐?’(21:7-14)라고 말하며 친구들에게 항변하는 가운데 시기의 격정을 드러내고 만다.

자기 생일을 저주하면서 울부짖을 수밖에 없고(3:1), 스스로 당하는 고통을 기억하고 싶지도 않을 상황에서 표현한, 더욱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말을 한 것을 시기라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그러나 고난과 씨름하는 #4번의 내면에서 솟구치는 격정이 그런 것이다.

‘내가 겪는 고난을 모두 저울에 달아 볼 수 있고, 내가 당하는 고통을 모두 저울에 올릴 수 있다면, 틀림없이 바다의 모래보다 더 무거울 것’(6:2)이라 말하면서 자기 말이 거칠었던데 대하여 항변하는 데서도 맘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표현한다. ‘하나님이 나를 부수시고, 손을 들어 나를 깨뜨려 주시면, 그것이 오히려 내게 위로가 되고, 이렇게 무자비한 고통 속에서도 그것이 오히려 내게 기쁨이 될 것이다’(6:9-10). 고난과 씨름하는 욥의 모습이 처절하게 느껴진다.

4. 하나님과 일치하는 욥

에니어그램 영성의 핵심은 변화의 영성이다. 누구나 격정에서 헤어나 덕목으로 나아가는 데 그 초점이 있다. #4번 유형의 사람들은 시기의 격정에서 헤어나 감정의 균형 곧 침착의 덕목에 이르는 때 성숙하고 자유로워진다. 그렇게 되면 최상의 상태가 되어 매우 독창적이며 감동적인 표현을 하게 된다. 스스로 갱신하여 새로워지며 자신의 창의성으로 남을 구하는 특징을 지니게 된다. 그들의 모든 가능성을 살려서 경험이나 감정이나 뭔가 가치 있는 것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을 지닌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연작 판화로 욥을 그린 작품은 유명하다. 처음에 등장하는 욥과 자녀들은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모습인데 악기는 나무에 걸려 있다. 내향적이며 개인주의적인 사람들이 경건한 삶을 지키는 모습이지만, 거기엔 예술성도 창의성도 표현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나중에 등장하는 모습은 활기차게 악기도 연주하고 춤추는 모습을 통하여 예술적인 독창성을 표현한다. 작가는 이런 표현을 통하여 #4번 유형의 일상적인 모습에서 건강한 상태로 변화할 때 예술성과 창의성이 되살아나는 면을 보여준다. 욥의 변화 과정이라 하겠다.

#4번 유형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상상력도 창의성도 상실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스스로 어렴풋이 느끼기는 하지만, 이렇게 정신적인 자유나 창의성을 끌어내지 못하는 것이 창조주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4번 유형이 격정에 사로잡히면 자신의 재능과 카리스마를 무시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격정을 사로잡고 나서면 자신의 카리스마와 독창성을 맘껏 발휘하게 된다. 자신의 카리스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될 때, 근원에서 창조주를 발견하고 하나님과 일치를 이루게 된다. 고난이 극심할 때는, 차라리 죽고 싶은 심정이었던 욥이 ‘차라리 숨이라도 막혀 버리면 좋겠습니다. 뼈만 앙상하게 살아 있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7:15) 라고 울부짖는다. 고난이 시작될 때 부인이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서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2:9) 라고 하였을 때는 의연하던 욥이 고난이 극심해지자 스스로 ‘차라리’를 연거푸 외치면서, #4번 유형의 스트레스가 극심할 때, 자살 충동을 강하게 느끼는 모습을 드러낸다. 격정이 요동칠 때 상황이다.

그러나 고난이 결국 욥이 스스로에게 솔직하기 때문에 #4번 유형들이 더 이상 퇴화하는 것을 막는 길이 열린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찬양하는 힘이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며 하나님과 일치를 갈망하게 만든다. 자신의 비참한 운명을 직시할 때 비극은 끝이 나고 희극으로 전환되고 마침내 동화로 이어진다. 프레드릭 비크너 Frederick Buechner는 ‘Telling the Truth-The Gospel as Tragedy, Comedy and Fairy-tale’에서 이를 웅변적으로 묘사한다.

욥기가 처음 시작될 때 동화로 시작되다가 급전직하에 비극이 되더니 마침내 희극을 거쳐 다시 동화로 이어진다. 고난의 과정 속에서 자신의 격정이 덕목으로 변환되는 회개가 이루어진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자기 내면으로 위축되는 것이 죄요, 하나님이 주신 카리스마와 창의성을 무시하는 것이 죄요, 말로는 아니나 맘속에 격정이 발동하는 것이 죄임을 깨닫는 것이다.

회개하면, #4번인 욥의 위축이 관상 Contemplation으로 변화된다. 내면의 저항과 거부도 사라진다. 이런 진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 삶에 대한 고뇌도 신음도 절규도 나온다. 폭풍이 밀어닥치는 소용돌이 속에 던져진다. 그러나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과 일치를 이룰 때, ‘태풍의 눈’속으로 들어가 더할 수 없는 ‘침착’ Equanimity을 이루게 된다.

욥은 회개를 통하여 창조주를 재발견하며 창조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한다. 소문을 듣듯이 아는 게 아니라 ‘내적 지식’ Inner Knowing과 ‘경험적 지식’ Experiential Know- ledge으로 아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제가 귀로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제 눈으로 주님을 뵙습니다’(42:5). 하나님 안에는 융의 말대로 ‘내적 양극’ Inner Opposites이 있다. 고난과 희망을 아울러 끌어안을 때, 하나님과 일치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