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명 남짓 되는 아이들이 얽혀서 지내다보면 하루 사이에 여기서 꿀렁, 저기서 폴랑, 빛깔도 모양도 다른 갖가지 일들이 일어나곤 합니다. 다 조금씩은 서로 다른 아이들이 빚어내는 소리들이 어떨 때에는 신기하게 한 가지로 꼭 맞아들고 어떨 때는 기묘하게 어우러져 조화를 이룹니다. 하지만 뒤틀리고 찌그덕거리고 삑삑빽빽 거릴 때도 많습니다. 둘 사이에서 또는 세넷 사이에서 개인 대 개인으로, 때에 따라선 여럿 대 여럿으로. 충돌이 일어나는 까닭도 가지가지. 각자 자라온 배경과 경험치, 잠재된 욕구와 가치관, 그런 것들을 표현하는 법이 다르다보니 받아들일 수도 이해할 수도 없어서, 또는 너무 비슷해서 내가 원하는 걸 얻는 게 쉽지 않아지거나 내 단점이 거울처럼 자꾸 비춰져서 언짢고 신경이 쓰이고 초조해지고 짜증이 나고 심술 나고 속에서 불이 이는 것입니다.

일단 다툼이 일어나면 우리는 긴장하기 시작합니다. 다툼에 제일 직접적으로 관계되어 있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그러면서 우리들 안의 기운이 자연스럽게 흐르지 않고 ‘얼음’ 상태에 들어가고 에너지가 쌓입니다. 이런 순간을 포착했을 때 이 큰 에너지를 어떤 방향으로 쓸 것인가가 참 중요합니다. 이때 누군가 침착해지지 않고 모두 함께 분위기에 휩쓸려가다가는 너도나도 상처를 받을 위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때만큼 자기 자신과 우리들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적기를 찾기 어렵습니다. 잠깐 멈추고 집중해서 상황이 어쩌다 이렇게 흘러왔는지 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 친구는 또 어떤지 살펴보다 보면, 내 진짜 욕구를 확인하게 되고 친구도 새롭게 볼 수 있게 됩니다. 싸움이 자기를 깨치고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로 작용하는 것이지요.

볍씨에 처음 온 아이들과 함께 모여 어떻게 지낼까 약속을 정해보자고 하면 아이들이 대뜸 이야기하는 말 중에 하나가 ‘싸우지 말자’입니다. 제가 묻습니다.

“싸우면 어떻게 되는데? 우리가 싸우지 않고 지낼 수 있을까?”

아이들이 갑자기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싸우면 왜 안 되지? 우리는 대화를 이어가면서 싸움을 없애려고 기를 쓰기보다는 ‘어떻게 싸울 것인가’,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로 초점을 옮겨 갑니다. 그러면서 먼저 우리 안에 싸움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편안하게 인정하고, ‘싸움이 일어나면 이렇게 해보는 게 좋겠어’라고 이야기해둡니다.

이런 배경에서 만들어진 볍씨의 문화가 ‘싸움이 일어나면 다 같이 모인다’입니다. 싸움이 어느 한 순간의 문제로만 또 당사자라고 불리는 그 아이들만으로 일어나는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 보통 싸움은 평소에 조금씩 쌓이고 쌓였던 불만이 터져 나오거나 반복되는 상황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일어나게 되지요. 또 싸움을 한 아이들 옆에는 그 상황을 함께 겪으며 동요된 아이, 알게 모르게 싸움을 부추긴 아이, 친구들이 언성이 높아지든 말든 관심 갖지 않고 마냥 내버려 두는 아이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이야기를 나눠야, 지금의 장면을 과거로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맥락과 복잡하게 짜인 관계의 그물망 안에서 짚어볼 수 있게 됩니다. 또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세밀히 보면서, 한편으로 망원경으로 보듯 폭넓은 시야에서 관찰할 수도 있게 됩니다.

다 같이 모였을 때 상황을 객관적으로 읽어내려는 노력은 하지만, 시시비비를 따지거나 잘잘못을 가리면서 누가 누구를 심판하는 데 목적을 두지는 않습니다. 그저 우리는 자기감정에 솔직해지고 그걸 나누려고 힘씁니다. 있는 그대로 자기를 드러내야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니까요. 함께 이야기하면서 아이들은 나(때론 우리)만 옳고 정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합니다. 나만 억울하고 분하고 속상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또 다른 관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갈등의 파도를 넘어서 나에 대한 그에 대한 우리에 대한 믿음을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