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대역사를 일으킨 헤롯

헤롯은 열정을 가지고 살았다. 정말 열심히 살았다. 다만 그 열정이 지나쳐 격정으로 나타난 것이 문제였다. 일찍부터 우두머리 노릇을 하고 살면서 강자로 군림해온 터에, 이젠 임금으로서 위세를 떨치고 싶은 것은 당연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강자는 대역사를 일으키는 유혹에 약하다.

헤롯은 스스로 대왕이 되고자 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며 위대한 업적을 쌓고자 하였다. 그 가운데 B.C. 20-19년에 예루살렘 제2 성전을 세운 것은 위업으로 꼽힌다. 수많은 노예들을 시켜 돌을 캐게 만들었고, 제사장 1000명을 동원하여 석공과 목수로 성전 건축에 종사하게 하였다. 1년 반 만에 그 거대한 공사를 마치는 열정을 보였다.

나머지 부대시설을 완성하는 데 80년이나 걸렸으니 가히 짐작이 간다. 이 성전은 헤롯 성전이라 불리우기도 하는데, 명실공히 성전이 완성되고 얼마 안 되어 A.D. 70년에 로마 군단에 의하여 초토화된다. 지금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통곡의 벽은 헤롯이 성전뜰 서쪽에 세운 벽의 일부인 것을 보면 그 규모를 알 수 있다.

에니어그램 #8번 유형들의 속성이 그렇듯이 헤롯에게서 지나친 자부심이 드러난다. 속으로 약할지언정 겉으로는 강하고 화려하게 보이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다. 권력욕과 명예욕이 하나로 작용한다. 당시 최강대국 로마 원로원도 황제도 자신을 지원해 주는 데서, 그리고 로마의 최대 라이벌인 파르티아를 물리치고 왕권을 회복하게 된 것도 그런 자부심을 만족시킬 만 하였다.

보통 사람도 힘이 생기면 우쭐대기가 쉬운 법이다. 항차, 대권이나 왕권을 잡으면 오만의 극치로 치닫기 쉽다. 메시야 콤플렉스 Messiah Complex가 생기기 마련이다. 세상을 평정하고 다스리는 욕망이 먼저 눈에 띄는 토목 공사를 벌이게 만든다. 헤롯의 업적으로 꼽히는 헤롯의 요새와 수로를 대대적으로 만들었다. 지금도 마싸다 Massada 요새는 세계인의 관광 명소일 뿐 아니라 이스라엘 국민에게는 안보교육의 장으로 또한 유명하다.

그러나 이처럼 대역사를 일으키면 고생은 백성의 몫이 된다. 헤롯과 같은 #8번 유형은 업적을 쌓고 성취하려는 욕망이 강하여 강제 동원에 익숙하다. 있는 힘을 다 기울여 일 한 사람들에게 수고했다는 치하도 잘 못한다. 동정이나 치하하는 일이 약자나 할 일로 치부하기 때문이다.

힘이 곧 정의요, 업적이 권력을 정당화시킨다는 생각이 강하여, 스스로 정의를 주창하고 실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의라는 함정에 빠지기를 잘 한다. 결국은 자신의 강한 욕심이 격정으로 나타나게 된다. 스스로는 대왕이라 생각하지만, 백성을 위한 통치가 아니라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백성을 억압한다. 민중을 억압하고, 노동력을 착취하면서도 웅장한 역사를 일으킨다는 성취감에 스스로 만족한다.

일찍이 예수가 권력 정치에 대하여 상대화 시킨 말씀을 받아들이고 살리기만 하면 어떤 강자도 폭군이 되는 것이 아니라 덕장이 되고 성군이 된다. ‘힘을 과시하거나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지 않는다.’든가 어떤 힘이든지 그 힘으로 ‘섬기는 사람’이 되는 길이다(참조 마가복음 10:42-45). 헤롯이 그토록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하고 많은 업적을 쌓을 만큼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격정이 열정과 능력의 오남용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것임을 모르고 살았기에 스스로 격정의 노예가 되어 살 수밖에 없었음을 본다.

4. 음모론에 사로잡힌 헤롯

어떤 폭력적인 사람들도 깊이 관찰하면, 능력도 있고 기가 세다. 폭군도 조폭도 마찬가지다. 다만 자신들에게 있는 힘을 정당하게 선한 목적을 위하여 정의롭게 쓰지 못하는 데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8번 유형들은 어려서부터 자신은 아직 약한 상태에 있음을 알면서도 강자를 이겨야 생존한다는 강박관념이 작용하기가 쉽다. 따라서 생각과 궁리가 많고 음모론에 익숙하게 자라기 쉽다.

어머니의 사랑을 전적으로 지지하지 못하여 의심하거나 불신하게 되어, 누구도 쉽사리 믿기가 어렵다. 애증, 호불호, 감정의 불균형과 불안정 같은 것을 종종 느끼며 자라게 되니까 스스로 뭐든지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일찍부터 이익과 힘에 대하여 눈뜨게 되고 민감하게 되어, 이재에 밝고 권력에 빠른 감각을 갖게 된다.

헤롯의 어머니가 나바테아 귀족 출신의 딸이었고, 유모의 손에 크면서 #8번의 성격이 되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강한 성격으로 자랐다. 스스로 강해야 되기에 믿는 것은 자신뿐이다. #8번 유형이 순진하고 소박한 마음을 품고 약자를 동정하며 돌보는 마음을 갖지 못하면, 인간관계도 인격적 관계보다 기능적 관계로만 있을 뿐이다. 이해타산이 앞서고 공리주의와 업적주의가 늘 강하게 나타난다.

저 악명 높은 ‘영아학살’ 사건은 헤롯의 말년에 빚어진 하나의 사건일 뿐이다. 그의 일생은 권력 투쟁의 연속이었다 하여도 지나침이 없다. 일찍이 자기 아버지가 시저 암살 사건에 연류 된 위기에서 살아남았고, 패전으로 인하여 왕위에서 쫓겨났다가 복권되는 경험을 한 헤롯이었다. 더욱이 유대인도 아니고 왕족도 아니었던 그가 로마의 권력자와 실세들에게 충성한 결과로 왕위에 오른 처지이고 보면, 수성의 강박관념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았을 것이다.

스트레스로 말하자면 그야말로 신경세포가 파괴될 정도로 심했을 것이다. 자신의 권력을 넘보는 자로 여겨지면 누구라도 가차없이 처단하기에 이른다. 부인도, 세 아들도, 장인도 역모 죄로 처단하였다. 헤롯은 평생토록 긴장의 연속이었으며 우울하였고, 편집적 망상이 심했고, 스스로 괴롭히는 감정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리고 만성 신장염을 앓았고 괴저병 Fournier's gangrene으로 고생하였다.

잠시라도 긴장의 끈을 놓거나 방심하면 누군가 치고 들어올 거라는 음모론에 바탕을 둔 생존전략은 점점 더 자신을 고립시키고, 그런 만큼 누구도 믿을 수 없기에 스스로 더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결국은 말년에 더욱 포악해졌다. 죽기 직전에 아들 안티파테르 Antipater가 자기를 암살하려 음모했다는 죄로 법정에 세우고, 마침내 아우구스도 Augustus 로마 황제의 재가를 받아 B.C. 4년에 아들을 처형시켰다. 같은 해에 자신이 죽을 줄 모르고 한 일이었다.

제왕이나 평민이나 ‘성격이 운명이다’라는 틀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법이다. 자신을 알아야 그 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신의 격정을 알고 덕목을 살릴 때 운명이 바뀐다. 헤롯의 역사를 놓고 가정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능력이 있는 #8번 유형들이 자신을 알면, 누가 성군의 길을 택하지 폭군의 길을 택하겠는가?

강한 성격 strong character이라 불리우는 사람들이 대개 능력을 앞세우면서 성실을 소홀히 하기 쉬운 법이다. 헤롯이 그 전형이라 하겠다. 정욕 lust에 사로잡혀 권력의 화신으로 살다보니 그야말로 일생을 낭비한 비극적 인물이 되고 말았다. 건강한 #8번 유형이 순진무구하고 소박한 성품을 살리면 약자에게 뜨거운 동정심을 발휘하게 되는 것과 뜨거운 동정심을 발휘하게 되는 것과 거리가 멀게 살았다. 오만의 결과다. ‘오만이 앞서면 망신과 손해가 뒤따른다’ Lorsque l'oreuil va devant, honte et dommage le suivent.는 프랑스 격언이 떠오른다.

에니어그램 격언

수련 인성을 위하여 : 늘 깨어 있으라 기계적 삶에 저항하며 살기 위하여 수련하는 목표이자 가장 중요한 화두이다. 정진, 또 정진! 명상 49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정한 차이는 에너지로 나타난다. The real difference between men (human beings) is energy. Thomas Ful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