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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삶의 뜨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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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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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라는 헬라어 표기가 레기온 Λεγιwν입니다. 3,000∼6,000명으로 편재된 로마 군의 군단을 ‘레기온’이라 합니다. 황제의 명령 외에는 누구의 명령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작전을 전개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조직입니다. 그리하여 ‘레기온’이라는 말 자체가 감히 저항할 수 없는 힘, 곧 개개인이 부정된 집단의 괴력을 발산합니다. 자신을 무소불위의 힘으로 인식하는 집단, 그러나 무엇인가를 파멸시킴으로서 종말을 향해 달리는 집단이기도 합니다. 귀신들린 자가 자기를 “우리”로 인식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가 공동묘지를 거처로 삼았다는 것 자체가 산 자의 땅이 아닌 죽은 자의 땅을 기반으로 삼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레기온은 죽음의 권세인 것이지요. 예수님 당시 유대민족을 무력으로 지배하고 있는 로마가 그랬습니다. 로마제국이야말로 저항할 수 없는 무소불위의 레기온이었습니다. 하지만 작은샘교회 강일상 목사는 [마가복음의 기적이야기]에서 다른 가능성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로마에 저항하는 또 다른 레기온, 제국주의 침략에 대항한다는 명분으로 자국민을 억압하는 집단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민중을 위한다는 공산주의자들이 민중에게 악마가 되고,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자들이 자국민을 억압하고, 민중운동 혹은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권력에 중독되어가는 이들이 레기온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국수적인 애국주의, 타민족에 대한 우월주의, 타종교에 대한 배타주의도 레기온과 이웃사촌일 것입니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 테러를 일삼는 알카에다 조직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예수 앞에서 “우리”라고 큰소리친 레기온은 로마라는 레기온에 저항하는 또 다른 레기온, 거대한 레기온인 로마제국에 억압당하는 자기 백성을 볼모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더러운’ 레기온입니다. 물론 반신적인 세력만이 레기온이 되는 건 아닙니다. 진리를 수호하고 교회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야만의 발톱을 곧추세운 레기온도 있습니다. 지난 교회의 역사가 이를 반증합니다. 중세 유럽교회의 마녀사냥, 종교개혁 당시 개혁교회의 재세례파에 대한 탄압은 레기온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집단 광기입니다. 요즘 대한민국이 제일 가치로 여기는 ‘경제’라는 것도 알고 보면 레기온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인간은 보이지 않고 경제만 보인다면 그것이 레기온입니다. 해석상의 문제는 있지만, 귀신들이 돼지 떼에게 들어가 집단 몰사한 것은 레기온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기도 합니다. 떼로 움직이고, 결국은 떼로 죽음에 이르는 운명 말입니다. 아무리 대의명분이 선할지라도 ‘나’가 부정된 ‘우리’만이 강제된다면 레기온과 다를 바 없습니다. 특별히 한국 사회는 레기온이 되기 쉬운 집단주의 성향이 강함을 우리는 항시 유념해야 합니다.
요즘 일부 권력층으로 인해 소망교회가 문제가 되는 것은, 소망교회가 우리 시대에 거스를 수 없는 힘의 상징이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소망교회 문제만은 아닙니다. 이미 힘으로서 군림하는 교회는 많습니다. 아직 그에 이르지 못한 교회들은 그 허접한 뒷모습이라도 닮으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습니다. 성장주의, 번영주의 이면의 욕구가 그런 것이지요. 진보나 보수나 피장파장입니다. 교회가 힘의 상징이 되었다면 이미 교회로 보기 어렵습니다. 힘의 상징이 된 교회는 부와 권력과 고상함과 호사스러움이 넘쳐납니다. 알고 보면 썩은 웅덩이와 다를 바 없지요. 썩은 웅덩이 물로는 세상을 정화시키지 못합니다. 흐르는 물이라야 세상을 정화시킵니다. 예수께서는 레기온의 사슬에 매인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레기온과는 결코 한 자리에 앉으실 수 없는 분이지요. 사람들은 한국교회의 개혁을 말하지만, 힘이 되고 싶어 성장과 번영의 덫에 걸린 한국교회가 자기부정을 하지 않고는 결코 새롭게 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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