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이제부터 2011년 볍씨의 울림을 시작하겠습니다.”

5월이 시작될 무렵, 볍씨에 작은 음악회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공연자도 되고 청중도 되는 음악회였습니다. 음악회를 기획하고 진행한 건 6학년 아이들이었고요, 음악회를 펼친 곳은 5학년 아이들이 배우고 생활하며 지내는 방이었습니다. 5학년 방이 볍씨에 있는 모든 방들 중에 제일 널찍해서 선택되었지요. 방 한 쪽엔 커다란 색지에 크레용으로 알록달록 정성 들여 쓴 ‘2011 볍씨의 울림’이라는 글자판이 걸려 있고, 그 옆으로 무대가 될 빈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1학년 아이들이 음악회의 시작을 열어주었습니다. 아이들이 분홍색 보자기를 어깨에 두르고 쪼로로 나와 섰습니다. 1학년 아이들한테는 이런 자리가 처음. 얼굴이 조금 붉어진 아이도 있고 괜히 머쓱해서 히죽히죽 웃는 아이도 있고 몸을 비쭉대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래도 선생님이 우쿨렐레로 반주를 하니까 아이들이 몸을 가다듬고 노래를 불러요. ‘봄 오는 길’, ‘개나리꽃’,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작은 별’, ‘햇볕’, ‘하나는 뭐니’, ‘밥상’을 짤막짤막 이어 붙여서. 노래 사이사이에 아이들이 직접 만든 작은 흙피리를 “뿌뿌 뿌뿌” 불기도 합니다. 카주와 비슷하게 생겼더군요. 이밖에도 이 날 공연은 다양했어요. 장구 장단에 맞춰 말놀이 노래 부르기, 하모니카, 오카리나, 리코더, 대나무와 돌, 경쇠, 페트병 마라카스와 같은 여러 악기들을 가지고 연주하기, 노래말 바꿔 부르기, 볍씨 살림을 챙기는 두레 모임인 [한 방울] 아이들이 글 쓰고 음을 붙여 지은 ‘절약송’ 배우기, 기타 연주와 노래. 그리고 제일 큰 환호를 받은 마지막 공연, 북춤까지. “둥 두둥 두둥 두둥” “따각 따각 딱 딱” 북소리가 대단했어요. 북춤을 선보인 반 아이들이 평소 조용하고 절제된 분위기를 많이 드러내왔는데, 그동안의 틀을 깼다는 점에서 더욱 신바람 나고 좋았던 공연. 노래와 춤, 시와 그림 같은 것들은 정갈한 나물 무침에 풍미를 더하는 들기름 같습니다. 그걸 만난 이의 기쁨,열정, 슬픔,고독을 다독이며 내면을 정화시켜주기도 하고 상처를 매만지기도 하고, 삶을 보드랍고 풍요롭게 만들어주지요. 이런 것들은 우리가 생활하는 때때마다 또 곳곳에 속속들이 들어와 있어야 합니다. 차를 타고 나가야 만나는 미술관이나 전시장, 연주회와 공연장 속에만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볍씨 아이들이 배우는 음악과 미술은 ‘쉬운 것’,‘작은 것’,‘가까운 것’을 지향합니다. 아이들이 배우는 악기-음악회에 사용되었던 악기들-는 가볍게 가지고 다닐 수 있어서 내 마음이 동하면 언제나 꺼내서 연주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림은 종이 한 장과 연필 한 자루만 있으면 그릴 수 있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학교 건물의 거의 모든 벽엔 아이들이 손수 벽화를 그려 볍씨를 볍씨답게 만들어갑니다.

볍씨 아이들이 예술을 만날 때 가치롭게 여기는 것 가운데 또 하나는 꾸며낸 것보다 ‘있는 그대로가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꽃은 참 예쁘다. 풀꽃도 예쁘다. 이 꽃 저 꽃 저 꽃 이 꽃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이창희 어린이가 쓴 시에 백창우 씨가 곡을 붙여 만든 노래)’는 노랫말처럼. 그래서 볍씨 아이들이 노래를 부를 땐 합창단 아이들이 부르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소리 내지 않습니다. 고운 목소리를 끌어내거나 두성으로 노래하기보다는, 몸을 열고 가슴을 펴고 자기 소리를 편안하게 내는지를 중요하게 봅니다. 또 보이는 그대로 묘사하는 세밀화를 자주 그립니다. 세밀화를 그릴 땐 그리는 것보다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게 먼저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보통 자기가 이미 갖고 있는 머릿속 상에 따라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실제와 다르게 왜곡된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들이 누군가의 얼굴을 그리려 한다면, 우선 아이들은 이런 것들을 봅니다. 눈 형태가 어떤지, 눈꼬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눈동자가 어느 쪽을 보고 있는지, 눈썹의 양쪽 길이가 어느 만큼인지, 미간은 그에 비교해서 길이가 어떤지, 코 길이와 눈 길이는 또 어떻게 차이 나는지, 콧볼이 눈의 어느 정도에 위치하는지, 콧구멍이 어떤 모양으로 얼마나 보이는지, 인중의 길이가 코와 비교해서 어떤지, 이가 어느 만큼 드러나는지……. 30-40분 정도 집중해서 보고 그리면 생김생김이 살아 있는 그림이 나온답니다.

우리 모두는 창조의 힘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예술가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 속에 들어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는 그 순간!

주님의 교회가 과연 무너질까? 세계 개신교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한 성장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던 한국교회가? 그동안 놀라우리만큼 양적팽창을 보여준 한국교회는 한편으로 공교회성을 무시한 교회의 사유화경향, 초대형교회로의 지나친 몰입과 건축, 그로 인한 담임목사직 세습, 재정비리, 성직매매 등 교회의 본질을 벗어나 세속주의에 물들었고 급기야 세상으로부터 비난 받는, 세상을 걱정하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 걱정하는 교회에 이르게 되었다. 오늘의 교회를 향하여 어떤 외부의 사람들은 잘 되었다는 듯이 냉소의 눈초리로, 어떤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적으로, 또 어떤 이들은 걱정과 불안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현상가운데 한국교회도 환경에 따라서 서구의 교회처럼 축소될 수도, 소아시아의 ‘일곱교회’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는 성서의 진술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계 2:5).

회복과 부흥의 방법은 있다. 그 중 중요한 하나는 교회의 본질로 되돌아가는 것인데 그 첫 번째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거룩성의 회복”(고전12:27, 3:16)이며 그 거룩함은 세속화와는 명백하게 구별되는 것이다.

교회가 세속화되는 많은 이유 중에 중요한 시작은 공교회성의 무너짐이다. 교회가 목회자나 교회내 실력자들에 의해서 사유화되면서 위에서 언급한 교회의 부정적인 모습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 주간에도 몇 번씩 고백하는 사도신경의 “거룩한 공회”인 교회는 그 의미 그대로 공교회인데 이 거룩한 교회를 사유화하려는 모든 시도와 계획은 공교회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제 개체교회중심이 아니라 머리되신 주님의 유기체로서로서의 공교회성이 회복되어져야한다. 각 교회는 경쟁의 대상, 시기와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라 공생과 나눔의 관계,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지체의 관계가 되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작음과 작은 정신의 회복”이다. 성경은 구체적으로 교회의 크고 작음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교회의 성장이전에 대개의 경우 초기교회의 모습을 주로 다루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교회의 본질에 대해서는 유추해 볼 수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거룩한 예배 공동체, 더 나아가 주를 위한 헌신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볼 때 예수님께서 과부의 헌금을 칭찬하셨다는 성서의 진술(막 12:35-44)은 그 의미가 크다. 더 많은 헌금을 낸 어떤 사람보다 값지게 여기시고 그 여인을 드러내 주셨다. 작지만 그 여인은 최선을 다하여 정성으로 드렸기 때문이다. 물질을 넘어 자신을 드린 것이다. 돈의 다소는 예수님과 관계가 없다. 본질적으로 헌신의 의미는 물질적인 많고 적음, 크고 작음의 의미가 아니다. 예수님이 보시기에 진정한 헌신은 물질우상주의, 맘모니즘과 전혀 다른 것이다. 오히려 부자의 물질적 부유함에 대해서 경고하셨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마 19:23-30) 하신 말씀은 더 나아가 부의 오만함과 교만에 대해서 그리고 부를 가진 인간의 속성에 대해서 경고하신 것이다.

인간이 가진 크고 좋은 것은 인간을 교만하게 한다. 다윗은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인구조사를 고집하고 실시했다(삼하 24:1-9). 장수로서 권력자로서 치밀한 계획을 위한 인구조사가 왜 나쁜 것 일까? 오히려 지혜롭지 않은가?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을 그려 볼 수 있다. 하나님은 그로인한 다윗의 교만과 오만하게 됨을 걱정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하나님보다 세상의 힘을 의지하려함을 경고한 것이 아닐까? 하나님이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은 세상의 어떤 것 보다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작은 존재로서의 인간의 모습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헌신과 섬김의 공동체인 교회는 세상의 무엇보다도 오직 하나님만 인정하고 의지하는 “작음”이다.

더 이상 작은 교회 목회자들은 패배의식에 사로잡혀있어서는 안 된다. 하고 싶어도 작아서, 그리고 없어서 못하겠다고 푸념하지도 체념하지도 말아야한다. 작은 교회 목회자들은 작은 교회야말로 본질적 교회임을 자각해야한다. 또한 모든 교회는 작은 교회의 정신을 가져야한다. 작은 교회의 정신만이 무너져가는 한국교회를 다시 세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