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여 년 전, 이곳 학운리 마을은 넓은 들과 갯벌이 펼쳐진 평화롭고도 나른한 느낌이 도는 전형적인 농어촌 마을이었습니다. 기러기나 고니들이 떼를 지어 한가로이 노닐던 이곳도 이제는 영세 기업들이 찾아들어 공단을 이루어, 지금은 공장마다 외국인 노동자들로 득실대는 어수선한 마을로 변했습니다.

조그마한 상점이 있는 삼거리에는 전화 부스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주변에는 밤마다 고국으로 전화하는 사람들의 소리로 더할 나위 없는 이국적인 풍경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못사는 나라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향도 없지 않아 있지만, 열심히 일하고도 임금을 몇 달씩 못 받는 불법 체류자를 위하여 자기들의 월급에서 적지 않은 돈을 십시일반으로 모아 생활비를 보태주는 고마운 한국인 근로자들도 있고, 외국인 근로자들을 자기자식처럼 챙겨주는 정 情이 많은 마을 사람들도 있습니다.

작년에 우리교회를 수리했는데 (그 뒤치다꺼리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지만) 우리교회에는 이 일을 감당할 만한 일손이 없었습니다. 그 때에 나타난 사람이 파키스탄 사람 무쉬탁 장로였습니다. 그는 피부가 검은 편이라 일꾼들도 툭하면 “깜둥이가 뭘 안다고!”하면서 무시하거나 욕을 해도, 그는 미소로 답할 뿐, 아무 말 없이 자기 일을 열심히 합니다. 오히려 안스러울 정도로....

지난 5월1일, 우리교회는 창립 42주년 기념행사를 가졌습니다. 교인들이 별로 없어서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런데, 너무 아름다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파키스탄 친구들은 운동장 청소를 하고, 중국 친구들은 돼지 한 마리를 요리재료에 따라 수육 감과 숯불구이 감, 그리고 곰탕 감 등으로 칼질을 하는데, 그 솜씨에 모두들 감탄했습니다. 또, 여선교회회원들이 하는 주방일 까지 거들어주었지요. 사소한 일에서 민족성이 드러나고 생활 풍습이 드러납니다.

주로 새신자로 구성되었던 청장년들이 어느새 그들의 ‘형님’으로 변했고, 함께 아우러져 그 큰 행사를 끝마무리까지 깨끗하게 해냈습니다. 특히, 창립기념 예배 때에 파키스탄 친구들이 그들의 언어와 악기로 ‘주님 조금만 도와주세요.’라는 찬양을 했는데, 비록 그 가사는 알 수 없었지만 성령의 임재를 느끼며,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습니다.

아주 작은 시골교회, 아직 체계도 없고 조직도 엉성하지만, 모두 너를 생각하면서 자기자리를 지키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무쉬탁 장로가 우리 친정어머니의 양아들로 호적에 올리면서, 그가 저에게 누나라고 부릅니다. 원래 외국인들이 목사님과 사모님이란 호칭에 대해 잘 모르기에, 제 남편은 저를 그들에게 누나로 소개합니다. “누~나”라고 부르는 묘한 발음에, 웃음도 나고 귀엽기도 하지만, 기존교인들에게 들키면 호되게 꾸지람을 듣기가 일쑤여서, 눈치 빠르고 지혜로운 무쉬탁은 교인들이 없을 때만 ‘누~나’라고 부릅니다. 다른 외국인들도 ‘누~나’라고 부르다가 교인들로부터 야단맞으면, 왜 야단치는지 그 이유를 몰라서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기도 합니다.

지난주에는 중국친구가 가져온 버섯과 건과류로 부추잡채 만들어 꽃빵에 넣어 푸짐한 점심식사를 했고, 몇 주 후에는 선물 받은 파키스탄 의상을 입고서 주일 예배에 참석하여 파키스탄 친구들에게 기쁨을 주려고 합니다.

얼굴이 검고 궁색해 보이지만 억세게 일을 잘하는 그가 고국에 있는 처자식을 생각하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모습에 인간다움과 아픔을 느낍니다. 불법체류자들이 겪는 그 긴장과 아픔, 그 고단한 삶을 보면서, 제가 가진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도 이제까지 감사하며 살지 못한 것이 참으로 죄스러웠습니다.

그들의 눈물 속에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길 오늘도 기도하면서, 그들에게 엄마가 되어주고 형님이 되어 따뜻한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우리 학운교회공동체에 주님의 돌보심이 내내 함께 하기를 바라며, 이제는 더욱 인류의 평화를 위하여 진지하게 기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