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새들은 갈 곳이 없었습니다. 초가지붕도 없어지고 대숲도 없어졌으며 나무라는 나무는 모두 잘라 버린 후 그 둥치마저 불도저 바퀴에 밀려가 파묻혀 버렸으므로 새들은 앉아 쉴 곳조차 없어졌습니다.
까치가 오갈 데 없이 헤매이다가 공장 옆의 변압기가 달린 전신주 위에 가까스로 자리를 잡고는 위태하게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곧 머리에 헬멧을 쓴 사내가 장대를 들고 오더니 반이 넘게 지어 놓은 까지 집을 휘저어 무너뜨렸습니다.
공장이 들어앉을 때 옮겨 간 마을에서는 참새들이 우왕좌왕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슬레이트 지붕의 새 마을에는 참새가 집을 짓고 새끼를 칠 만한 곳이 아무데도 없었습니다. 먹이조차 달립니다. 농사를 짓지 않게 되자 흘린 낟알도 볼 수 없고, 웬일인지 잡아먹을 만한 벌레들조차 자취를 감춘 것입니다.
새들은 모두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마을엔 바람만 불고 먼지만 흩날렸습니다. 공장이 들어앉은 곳에서는 밤낮없이 기계 돌아가는 소리뿐, 전동차가 잠시 섰다가는 떠나는 정거장 계단 위엔 전에 못 보던 거지가 앉아 있게 되었습니다. 하루에 수천 명이 오르내리는 정거장 계단 위에는 어제도 오늘도 그 거지가 똑같은 모습으로 그린 듯이 앉아 있습니다. 머리카락이 꼬불꼬불한 너댓 살바기 계집애는 시멘트 계단 벽에 기대 앉은 채 하루 종일 잠을 자고, 꾀죄죄한 옷차림의 엄마 품에 안긴 어린 것은 쪼그라진 젖을 무작정 빨아댑니다.
앞에 놓인 플라스틱 바구니엔 동전 몇 잎, 이른 아침부터 밤 늦도록 앉아 있지만, 그들의 눈앞으로는 목이 긴 가죽 장화를 신은 여자 발과 콧잔등이 빛나는 단화를 신은 남자의 발이 바쁘게 움직이며 지나칠 뿐 바구니 속의 동전 수는 변동이 없었습니다.
첫눈이 내립니다.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이 아니라 바람에 흩날리는 싸라기눈입니다. 날씨는 더욱 을씨년스런 느낌입니다.
계단 옆에 세운 수은등 푸른 불빛 아래 눈발이 하루살이떼같이 날리고 있었습니다.
전동차가 도착했다가 떠나면서 내려놓은 밤 손님들이 바쁘게 계단을 내려갑니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 계단 옆에 앉아 있는 거지를 눈여겨보는 이는 없습니다.
계속해서 잠을 자던 아이는 까무룩 꿈나라를 헤매이고 있습니다.
소녀는 몸뚱이가 가벼워져 하늘을 날고 있었습니다. 소녀는 우선 종소리에 이끌려 예배당으로 가 보았습니다. 창문가에 앉아 예배당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자기 또래의 아이들이 때때옷을 입고 춤을 추고 있고, 난로 불은 활활 타고 있는데 의자에 앉은 어른들이 행복한 얼굴로 춤 구경을 합니다. 박수를 치고 웃고 떠들며 떡이랑 과자를 먹고 있었습니다.
소녀는 예배당 안을 들여다보면서 침을 삼키고 있습니다. 새까만 두루마기를 입은 목사님이 춤추고 노래하는 아이들을 하나하나 안아 주며 뺨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소녀는 예배당 창가에서 물러났습니다.
소녀는 다시 가벼운 몸으로 공중을 날아갑니다. 어쩌다 보니 소녀와 함께 날아가는 친구가 여럿이었습니다. 그들은 새였습니다. 때까치, 제비, 꾀꼬리, 황새, 참새, 부엉이, 뜸부기, 기러기, 그리고 까마귀도 끼어있었습니다. 수많은 갖가지 종류의 새들이 소녀와 함께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날아갑니다. 얼마를 그렇게 날아가다가 새들과 함께 어느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그 마을은 새들 말고도 온갖 짐승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습니다. 노루, 사슴, 늑대, 오소리, 여우, 호랑이, 그리고 소와 말도 있었습니다. 곰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푸른 풀밭에 모여 뒹굴며 놀고 있었습니다. 토끼가 춤을 추자 호랑이가 박수를 치고 곰이 재주를 넘자 말이 흥흥거리며 웃었습니다.
개울에는 맑은 물이 졸졸 흘러내리고, 나무 위에서는 새들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금빛 꾀꼬리가 목청을 가다듬어 반주를 하고, 제비란 놈이 지지배배 이중창을 했습니다. 바람 소리, 물 소리가 화음을 이루고 아름다운 곡조가 온 세상을 감싸는 것 같았습니다.
소녀는 두고 온 엄마와 동생을 생각했습니다. 엄마가 얼마나 기운이 없으면 소녀가 떠날 때 잘 가라는 인사도 못 하고, 동생은 빈 젖 빨기에 얼마나 허기져 있을까…….
그때 짐승들이 수런거리며 자리를 정돈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리에 붕대를 처맨 새 한 마리가 염소의 등을 타고 나타난 것입니다.
“아가야 !”
하고 염소 등을 타고 온 이름 모를 새가 소녀를 불렀습니다. 소녀는 그 새가 바로 공업 단지 공사판 사다리에서 떨어져 돌아가신 아빠의 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