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는 신종 플루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교통의 발달로 인하여 과거와는 달리 나라와 나라, 대륙과 대륙을 넘나드는 이동의 속도가 빨라지고 문화와 문화 간의 접촉이 빈번해지면서 편리한 점도 많아졌지만, 어제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아픔과 문제들이 오늘 이 땅에서도 동일하게 재현될 수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지구가 하나의 유기적인 공동체임을 더욱 피부 깊숙이 절감하게 되는 시기가 되었다.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화합하며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려는 목표는 이제 대표적인 다문화 국가 미국이나 유럽 어느 나라들만의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사회의 목표가 되었다.

프랑스 ‘떼제’라는 작은 마을에 가면, 1944년 화해와 일치를 위해 설립된 ‘떼제 공동체’의 창시자 로제 슈츠의 독특한 발자취를 볼 수 있다. 그의 헌신적 삶에 가장 강렬한 열정을 불어 넣어준 사람은 바로 그의 외할머니였다. 1900년대 초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과부였던 그의 외할머니는 세 아들을 전장에 내보낸 채 북부 프랑스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파괴와 공습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할머니는 피난을 가지 않고 집에 남아 도망병들과 노인들, 어린이와 임산부들을 맞아 그들의 삶을 보살피면서 모두 떠나지 않을 수 없었던 최후의 순간까지 남아 있었다. 그때부터 어느 누구도 자신이 겪었던 것과 같은 아픔을 당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열정이 할머니의 삶을 움직였다. 그녀는 갈라진 그리스도인들이 유럽에서 서로를 죽이고 있으며, 새로운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리스도인들만이라도 서로 화해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이렇듯 당대의 가장 불행한 사람들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것과 자신의 신앙을 배반하지 않으면서 가톨릭 신앙과 화해하는 것. 할머니의 이 두 가지 열망은 젊은 로제의 삶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리하여 제2차 세계대전이 다시 유럽을 강타할 1940년 당시 로제는 외할머니의 이러한 열망을 자신의 삶의 목표로 삼고, 어머니의 나라인 프랑스로 들어가 떼제 공동체를 설립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이러한 로제 슈츠의 생을 살펴볼 때, 그의 삶에 가장 핵심적인 가치를 품게 한 동기는 바로 그의 가족에서 비롯되었음을 볼 수 있다. 열정적으로 참된 가치관을 실천하는 하나의 작은 가족 공동체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된다. 어느 단체나 조직에서 그 뼈대를 이루어 나가는 원동력은 바로 그 공동체가 가지는 핵심가치이다. 화해와 일치를 몸소 실천하였던 한 가족의 사례처럼, 이러한 가치들은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열정적인 삶과 믿음이 바탕이 될 때 그 지속성이 강해진다.

사람은 누구나 가정과 학교, 사회, 신앙공동체 등에 소속되어 살아가고 있다. 우리 각자가 속해 있는 공동체가 다음 세대에 바라는 핵심적 가치는 무엇인가. 그러한 가치를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이루어 가야 할 것인가 하는 것들이 다양한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리더들의 일반적인 과제 중 하나이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신은 때론 인간 삶의 어두운 시간들을 통하여서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삶의 목적들을 분명히 깨닫게 하시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고슴도치의 생태를 관찰해 보면 흥미로운 점들을 많이 발견 할 수 있다. 그 중 어떤 모습은 앞서 언급한 로제 외할머니의 삶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고슴도치는 별다른 재주가 없어 약한 존재이다. 혼자 있을 때 고슴도치는 몸을 동그랗게 말고 가시를 세우는 수동적인 방법으로 위험을 피한다. 그러나 고슴도치 어미는 다르다. 평상시에 느릿느릿 움직이는 것 같다가도 자식들에게 위험이 닥친다는 판단이 들면 가장 먼저 위험을 감지하고 순간적으로 온 몸에 가시를 수직으로 세워 새끼들을 보호하는 동시에 아주 재빠르게 조금씩 점프를 반복하여 전진하며 적극적인 방어태세를 취한다. 이러한 모습은 단순하나 가히 위협적이어서 상대가 깜짝 놀라 도망가게 만든다.

우리도 공동체나 자신의 삶에 가끔씩 어려움들이 닥칠 때 이러한 방법을 배우면 어떨까. 전쟁 때문에 도망가지 않았던 로제의 할머니처럼,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들이 닥칠 때마다 숨고 움츠러드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다른 이들의 어려움을 민감하게 돌보고 섬기는 삶이, 넓게 보면 공동체 안의 위기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문제해결을 위한 강력한 돌파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