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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나, 바다가 갈라지다니….”
“모세의 기적 같군!”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정말이었어요. 영화 〈십계〉에서처럼 물 벽이 생기며 땅바닥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바닷물이 잦아들 듯 물러나며 도도록 자갈길이 올라오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렇게 자갈과 개펄이 올라오자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야, 바다 바닥이 올라온다!”
“바닷물이 물러난다!”
그러고는 기다렸다는 듯, 미친 듯이 몰려나갔습니다. 만세를 부르듯 양팔을 뻗어 손을 흔들며 뛰어가는 이, 비닐봉지를 풍선같이 날리며 달려가는 사람, 언제 준비 했는지 장화를 신고 양동이와 호미를 들고 가는 사람, 어느새 삽을 들고 개흙을 파헤치는 사람까지 있었습니다. 무작정 신발을 벗어들고 섬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도 보였구요.
“낙지다, 세발낙지!”
“왔다메, 조개가 크기도 허다!”
그런가 하면, 울긋불긋 깃발 들고 흰 바지 흰 저고리에 검정 무명조끼 받쳐 입고, 머리엔 수건 질끈 동여매고, 징과 꽹과리와 북과 장구장단에 춤까지 덩실덩실 추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놀이패도 보였습니다.
“미미 언니!” “응?”
“우리도 가요.”
“왜?”
“놀랍잖아요?”
“뭐가?”
미미언니는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있어요.
“놀랍다고?”
“…….”
“놀랄 수 있다는 건 살아있다는 증거가 되지.”
미미언니는 혼잣말같이 대꾸했어요.
“언닌 놀랍잖아요?”
“뭐가?”
“바다가 갈라지는 것.”
“글쎄, 그럼 우리도 건너갈까?”
미미언니가 드디어 일어났어요. 나는 언니 손을 잡았어요.
언니 손은 얼음같이 차가웠어요. 그 때 머리 위에 나비 떼가 나타났어요. 아니 그건 여러 가지 산누에나방이었어요. 산누에나방 뿐 만 아니라 각종 곤충 떼였어요. 나는 너무 놀라 얼음같이 차가운 언니 손을 그대로 잡고 있었습니다.
곤충 떼는 한 방향으로 날았어요.
물잠자리 떼가 날고 여러 가지 종류의 벌 떼가 그야말로 벌 떼같이 날았어요. 여치 떼가 날고 각종 거미 떼, 매미 떼, 나비 떼, 귀뚜라미들이 날았어요. 사마귀 떼, 메뚜기 떼며, 여러 가지 종류의 풍뎅이, 무당벌레들이 날았어요. 딱정벌레며 쇠똥구리며 사슴벌레들이 날고 게아재비, 하루살이 떼가 날고 반딧불이 떼, 벼멸구 떼, 바구미들까지 날았어요.
“언니, 저건 소떼야. 그치?”
“그 뒤를 보렴, 닭과 오리들도 가는구나.”
그랬어요. 소들이, 누렁이 검둥이 얼룩이들이, 마치 아프리카의 들소 떼같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돼지며 닭, 오리 떼가 요란한 소릴 내며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분명 무슨 전염병이 퍼졌거나 어디 전쟁이 일어났거나….”
미미언니가 또 혼잣말을 했어요.
“…하긴 그게 그거지. 애초부터 놓여 살던 것들을, 풀 뜯어먹고 흙바닥에 뒹굴며 자유롭게 살아야할 것들을 울에 가두고, 제 뼈를 갈아 사료라고 먹이고, 잠도 못 자게 닦달을 하니 짐승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지. 목숨들이, 하느님이 진노하신 거지 뭐….”
우리들은 잠자코 걸었어요.
별 단 개가 앞장서 걸었어요.
사람들은 점점 줄었어요. 육지에서 멀어질수록, 섬에 가까워질수록 바닷길에 들어선 사람 수는 점점 적어졌어요. 그러다보니 마지막엔 우리 셋이서 걷고 있었어요.
무인도였습니다.
섬은 어느새 바다 가운데 떠 있어요.
바닷길이 다시 물에 잠기고 육지는 아스라이 멀리 보였죠.
머리 위를 날던 곤충들과 짐승들도 보이지 않았어요. 바람이 불고 주위가 어두워졌어요. 별 단 개가 끙끙거려요. 끙끙거리며 언닐 부른 것 같아요.
이윽고 옷깃을 잡아당겨요. 언니가 멈춰 섰어요. 나도 멈춰 섰어요. 언니가 내 손을 잡았어요. 별 단 개가 멍멍 짖었어요. 그러다보니 우린 어느새 방안에 들어와 있어요.
그 방은, 언젠가 아빠랑 가 본적이 있는 춘천의 인형극장 같았어요. 무대에 불이 들어오고, 별 단 개가 무대 위에 서 있어요. 미미언니와 나는 관람석에 앉아 있고요.
관람석엔 소며 돼지며 닭과 노루며 오리들이 함께 앉아있고, 여기저기 곤충들도 있는 것 같았어요. 작은 날개 짓 소리가 들렸어요. 그러나 어두워 잘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숨소리 하나 내지 않았어요.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