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봄에 나는 한 주간 c국을 다녀왔다. 철저한 계획도시로 만들어진 s시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번이 다섯 번째이니 제법 익숙할 법도 한데 올 때마다 새롭고 역동적으로 느껴진다. 내가 이 도시를 2년에 한 번 꼴로 방문하는 것은 p선교사와의 만남이 계기가 되었다.

설교를 막 시작하려는 순간에 문이 열리고 만삭의 여인과 노인이 들어와 조심스레 자리를 잡았다. 예배를 마치고 다가가 인사를 하였는데 뜻밖의 신분을 가진 분이었다. “예, 저희들은 선교사 가정입니다. 안식년을 맞이해서 근처에 와서 1년간 머물 계획이고 선교사님은 돌아오는 주일날 참석할 거예요.” p선교사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는 나와 비슷한 연배였고, 같은 신학교를 나오지는 않았으나 서울에서 목회하는 동기 목사의 소속교회 선교사였다. 대화하는 중에 소속교회를 옮기라는 담임목사의 얘기를 들었고 안식년 동안에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작은 교회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주님, 친구 녀석이 버리는 선교사를 왜 제게 보내셨어요. 형편이 이렇게 어려운데요.”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함께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새벽부터 만나서 함께 기도하고, 함께 운동하고, 밥도 같이 먹고, 이야기도 함께 나누었다.

그해 가을에 지방 교역자수양회가 있었다. 나는 담당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선교사님 가정과 함께 가기로 했다. 그들은 너무 좋아했다. 안식년을 맞이해서 한국에 왔지만 여행을 맘껏 할 수 없는 형편이었고, 더구나 동해안 지역은 신혼여행을 다녀간 후에 처음이라고 했다. 즐거운 시간은 꿈결과 같이 지나갔다. 수양회 끝나는 날 점심식사를 하면서 내가 농담을 섞어서 이렇게 제안했다. “야,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그냥 집에 가는 것은 너무 아깝다. 우리 여기까지 왔으니 통일전망대 들렀다 갑시다! 같이 갈 사람들은 제 뒤에 붙어요.” 사람 마음이 이심전심 以心傳心이라고 하더니 너도 나도 함께 하겠다고 따라 나섰다. 10대가 넘는 차량이 행렬을 이루었다. 고성 화진포에 있는 통일전망대주변은 많은 볼거리가 있었고, 우리민족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우리는 일행들과 헤어져 함께 주유소에 들러서 두 차에 기름을 채우고 집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5분쯤 지났을 때에 탱크저지선 옹벽이 나타났다. 이것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희귀한 구조물이며, 우리 민족의 아픔을 대변하는 것으로 분단과 전쟁의 상징물이었다. 이곳을 막 지나온 나는 엄청나게 큰 굉음에 깜짝 놀랐다. 뒤따라 나와야 하는 선교사님 차량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사고를 직감했다. 차량을 얼른 돌려서 세우고, 정신없이 그곳으로 뛰어갔다. 검은 연기가 치솟았고, 공회전 소리에 시끄러웠다. 차량은 옹벽을 들이받고 전복되어 있었다. 선교사님을 불렀다. 뒤집어진 차량 속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놀라운 것은 차량은 심하게 망가져 있었지만 선교사님 가족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충격에 타박상만 조금 있었다. 사고처리를 마치고, 폐차를 하고, 병원으로 달려가서 선교사님 부부가 물리치료를 받는 것을 곁에서 지켰다. 2시간 정도 물리치료를 받고 내 차로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밤 11시가 넘었지만 우리는 사고 중에도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고, 앞으로 감당할 남은 사명을 이야기했다.

그때 나는 이 일을 이렇게 받아들였다. “하나님께서 이 선교사님을 나에게 붙여주시는구나. 앞으로 내가 선교할 기회를 얻게 된다면 이분을 통해서 해야지.” 자연스럽게 이 일은 이루어졌다. 몇 년 후에 나는 새 임지에서 선교에 대해 기도하면서 실천에 옮기게 되었다. 날마다 새벽이면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매월 선교헌금을 보내고, 2년에 한 번은 방문하여 현지에 있는 작은 신학교에서 한 주간 동안 강의로 섬기고 있다. 척박한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일꾼을 키우는 사역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일을 하나님께서 진행하고 계신다. 선교사님의 헌신에 나를 조금 보탠다.

선교에 대해 무관심했던 나는 어느 날 찾아온 p선교사 가정을 통해서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고, 하나님의 음성을 교통사고를 통해서 들었다. 2년 후에도 나는 그곳에 또다시 갈 것이다. 그것은 내가 마땅히 수행할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작은 일에도, 사소한 만남 속에도, 혹시 그분의 신호 sign가 있는지 세밀히 관찰한다. 내가 사는 이유는 그분의 뜻을 순종하여 잘 받드는데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