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학한 지 36년 만에 같은 과 科 친구들과 독일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독일에 사는 한 친구가 초대를 해서, 여덟 명의 친구가 그 친구 집 방문 겸 여행길에 나섰습니다. 1월부터 준비해서 6월 말에 떠났으니, 그만큼 설레임의 시간도 길고 좋았습니다. 여러 친구들의 경험과 정보력이 더해져서, 아주 촘촘한 여행 스케줄도 짜 가지고 떠났습니다. 묶을 숙소의 위치를 위성지도로 검색해서 역에서 가까운지, 우범지대는 아닌지 까지 파악해보고 떠났습니다. 그동안 직장에 매여 있어서 15일이란 긴 시간의 휴가를 못 가졌었고, 남편관련 사람들과의 여행에만 익숙해져있던 저에게 대학시절 내 친구들과의 여행은 뭔가 자유로울 것 같고, 기대가 많이 되는 여행이기도 했습니다.

떠나기 전, 한 친구가 장난스레 말했습니다. “얘들아, 여행이 길어지면, 일행들이 싸우기도 한단다. 그 한계가 9일 이라던데?” 그 말을 듣고, 준비모임을 갖던 우리는 떠들썩하게 웃었습니다. 우리 여행이 15일이니, 우리도 조심해야겠다고는 하면서도, 우리는 아마도 그렇지 않을 거라는 생각들을 하면서 말입니다.

소매치기가 많다는 소문에 허리에 차는 전대도 공동구매하고, 유럽은 식당에서 물을 안주고 생수 값이 비싸다니, 절약할 요령으로 빈 물통들도 하나씩 챙겨들고 드디어 여행을 떠났습니다. 독일 친구 집에서의 첫 4박 5일 동안, 친구들의 속 모습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잠을 잘 못자는 친구, 코를 고는 친구, 잘 못 걷는 친구, 사진을 잘 찍는 친구, 유난히 배려를 잘 하는 친구, 쇼핑정보가 가득한 친구, 같은 그림으로 사진이 찍힐까봐 옷차림에 엄청 신경 쓰는 친구….

스무 살 무렵 알게 되어, 그동안 드문드문 만나기도 한 친구들이었지만, 그야말로 민낯으로 보름을 함께 지내는 일은, 저에게 많은 생각과 깨달음, 반성을 하게 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학창시절, 조용하고 느릿느릿했던 친구가 아주 빈틈없는 사람이었던 것도 알게 되고, 아주 깐깐한 인상을 주었던 친구가 사실은 속 깊은 사람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배려를 잘하고, 빈틈없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꼭 그런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물건을 친구 집에 두고 나와 번거롭게 했고, 다른 친구들은 아무 말 안하는데, 저에겐 친구들의 어떤 모습들이 불편하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농담처럼 웃어 넘겼던, 9일이 채 되기 전에, 제가 먼저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누구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그동안 불합리하고 불편하게 느꼈던 점들을 조목조목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감정을 섞어 버린 것은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불편한 마음을 갖고 남은 여행을 함께 하기엔 들인 비용과 시간이 아깝고, 제 개인만을 위한 이야기도 아니었고, 100세 시대엔 ‘재 財테크’ 못지않게, ‘우 友테크’를 잘 해야 한다는데, 조심할 것은 서로 알아야 더 편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인 것은 사실입니다. 고맙게도 친구들은 제 이야기를 잘 받아주었고, 서로 조심하면서 남은 기간 즐겁게 여행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만, 여독이 풀리고 귀국 후 시차 적응도 끝나고 나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지적하기 전에 다른 친구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못 느꼈던 것일까? 아니면 참고 있었던 것일까? 이번 모임의 ‘평화’를 위해 계속 참고 있었어야 했을까?

크고 작은 공동체에 참여해 있으면서,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옳을’지, ‘현명할’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여행이었습니다. 오래전, ‘원칙에 옳은’대로 행동했던 것이, ‘현명’하지는 못했던 경험이 떠올라서 다시 한 번 찝찝했습니다. 직장일로 우리 일행보다 며칠 먼저 귀국한 친구가 카톡을 보냈습니다. “얘들아, 지적질 하지 말고, 남은 기간 재미있게 놀다와라~~” 아, 그 현명한 친구가 내가 화내기 전에 그 카톡을 보냈었다면 좋았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