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은 지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한다. 어쩌면 이러한 주장은 현대인들이 극히 물질적인 것에 집착한다는 말의 다른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무속이나 사이비 종교에 심취한 사람들은 늘어가고 있다는 소식이 종종 들린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가장 이성적일 것 같이 여겨지는 서구사회도 예외가 아니라고 한다. 얼마 전 개봉한 ‘사하바’가 장안에 화제를 몰고 오고, ‘오멘’이나 ‘검은 사제들’ 같은 영화들이 개봉될 때마다 관객이 몰리는 것도 ‘신비’에 목말라하는 이런 사회적 현상의 표출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기독교는 신비의 종교라고 한다. 그러나 그 신비는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다’는 ‘성육신’의 신비이지 흔히들 생각하는 예언 豫言이나 축귀 逐鬼 혹은 투시 透視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삶의 현장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피하여 가기가 결코 쉽지 않다. 신학교에서는 그런 주제조차 다루지 않지만 목회현장에서는 피하여 갈 수 없는 문제다. 어쩌면 정통신학에서 다루는 주제들보다 회중들을 열광하게 하는 그리고 목사의 신령하고 영험함을 가르는 것들이 바로 그러한 것들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귀신 어쩌고 하면 본능적으로 비웃어지는 게 신학생들의 체질(?)이라고 생각할 때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예외이기는커녕 스스로 생각해도 냉정하고 날카로운 성격이니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보면 측은지심 惻隱之心이 어찌 생기지 않았겠는가? 그런 올챙이 적 이야기다.

첫 목회를 하던 교회는 위치상으로도 응달이거니와 누가 봐도 음산한 분위기였다. 이유야 어떻든 그러한 분위기는 겁 많은 나를 처음부터 주눅들게 했다. 하지만 그럭저럭 적응해 가던 어느 날, 텅 빈 예배당에 나가 홀로 한참 기도하는데 처음 보는 여인네가 들어와 앉는 것이 아닌가. 교회가 길가에 있으니 지나가던 사람이겠지 하고 있는데 갈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래서 먼저 일어나 문을 향하는 순간 뭔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왔다. 방금 전까지 있던 그 여인이 없지 않은가. 더 황당한 것은 생각해보니 나는 강단 위에서 십자가를 향해 기도를 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그 여인을 볼 수 없는 위치였는데. 그렇다면? 순간 섬뜩한 생각에 급히 집으로 들어왔지만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다음 날, 노인 집사님께 전후 사정은 이야기하지 않고 이러저러한 모습의 여인을 아시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갸웃거리시면서 하시는 말씀. “전도사님이 어떻게 그 여자를 아세요. 전도사님 오시기 전에 죽었을 텐데?”

얼마 후, 새벽기도를 마치려는데 감동(?)이 와서, 평소 안하던 소리를 했다. “오늘 원하시는 분, 한 분만 안수해드리겠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 분이 벌떡 일어나 나오는 게 아닌가. 그 순간 소름이 쫙 돋으면서 이거 큰 일 났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러나 이미 내 뱉은 말이니 안수를 할 수 밖에. 그 다음은 뭐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른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기도에 기도를.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와 그 여인 그리고 권사님 한 분만 있었다. 알고 보니 너무 무서워 다른 사람들은 다 도망갔다고.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새벽 2, 3시면 들리는 그 여인의 기도는 칼로 신경을 찌르듯 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어느 분은 귀신이 사단에게 하는 기도라고). 그렇게 한 달 남짓 안수라 불리는 씨름을 이어가던 어느 날 기도 받던 그 여인이 게거품을 품고 축 늘어지는 게 아닌가. 놀랍기는 했지만 그 사이에 공부한 축귀에 대한 지식으로 차분히 기다리고 있노라니 30여분 죽은 듯 누어있던 여인이 부스스 일어나 입을 열었다. “제가 그 동안 좀 이상했나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밀려온 허탈감. 사실 그 여인은 그 지역 토박이가 아니라 서울에서 귀향한 부잣집 인텔리 며느리였다. 한 동안 재미있게 교회를 섬기던 그 여인은 다시 서울로 갔고. 후에 전해들은 소식은 귀신이 다시 들어왔다고.

이 이야기가 독자들은 믿어지시는가? 어느 겨울 몇 안 되는 교인들이지만 부흥회 중이었는데 (은혜 받아?)대성통곡하는 소리에 나는 물론 강사도 감동이 되어 회중을 둘러보는데 아무도 우는 사람이 없었다. 이상하다 싶어 살펴보니 그 소리는 인적조차 없이 싸늘한 바람만 스쳐가는 창 밖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지금도 그 때 생각을 하면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바람이 지난다. 그 경험은 철부지 전도사를 조금 더 겸손하게 만들었지만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에피소드다. 멍청한 사람의 착각이라고? 진심 그랬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