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를 읽다보면 흥미로운 이야기를 종종 만나게 됩니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당부한대로 가나안 입성의 교두보를 확보하자마자 철 연장으로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온 회중 앞에서 율법을 읽어줍니다(수 8:30-35; 신 27:6-7). 모세는 왜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쌓으라고 했을까? 짐작해볼만한 이유가 없지 않습니다. 모세는 파라오가 노예들을 동원해 다듬은 돌로 지은 거대한 신전과 화려한 궁궐에서 고통 받는 히브리 동족을 구명하려다 도망쳐 나온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미디안 광야에서 야훼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아예 제단조차 없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에서 ‘내 백성을 해방하라’는 신언을 들은 것입니다. 바로 그와 같은 연유로 모세는 가나안에 입성해서 철 연장으로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쌓도록 한 게 아니었을까. 백성들의 고역을 피하려 했던 모세의 생각이 그러했다고 봅니다. 그렇게 다듬지 않은 돌로 쌓은 제단이 점차 정교하게 다듬은 돌로 성전을 지으면서부터, 이제 성전은 백성들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용합니다.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박해 받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다듬은 돌로 지은 성전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성전보다 큰 이가 여기 있다”(마 12:6).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고 했으니 유대인의 입장에서는 경악할 일입니다.

그렇게 다듬지 않은 돌로 쌓은 제단에서 화목제를 드리고 함께 먹으며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라는 말씀 역시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여기 ‘함께’ 먹는 행위 가운데 그 대상을 유대인은 말할 것 없고, 본토인(가나안 원주민), 이방인(이스라엘 안에 사는 외국인) 모두를 포함하고 있습니다(수 8:32-33). 놀라운 일입니다. 저 옛날 신 앞에 나온 야훼 공동체는 함께 먹는 밥상에서만큼은 모두를 차별하지 않고 공평하게 대한 것입니다. 후에 사도 바울도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롬 14:20)며 공동체 안에서 먹는 것 때문에 하나님의 정의가 무너지는 걸 경계했습니다. 바울은 더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기쁨”(롬 14:17)이라며 ‘그 나라’를 물질로부터 거리를 둡니다. 정의, 평화, 기쁨 이 세 가지는 모두 관계 용어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 세계와의 관계가 바르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는 성취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습니다. ‘오직 성령 안에서’ 성취된 정의, 평화, 기쁨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선한 일일지라도 사람이 자기 힘으로 그것들을 이루려 할 때는 도리어 불행을 초래한다는 게 역사의 교훈입니다.

여호수아서는 더욱 놀라운 사실을 전해줍니다. “모세의 명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과 여인과 아이와 그들 중에 동거하는 객들 앞에 낭독하지 아니한 말이 하나도 없었[다]”(수 8:35): 백성들 앞에서 말씀을 낭독하는 행위는 오늘날 설교 행위와는 격을 달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는 행위 자체가 그들 모두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축복하는 행위입니다. 이처럼 중차대한 제의 행위에서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남자, 여자, 아이, 떠돌이 유랑민인 객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빠짐이 없게 했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고대 밀의종교의 제의는 으레 특정 종족이나 계급의 배제 하에서 이뤄졌습니다. 다른 부족이나 떠돌이 유랑민은 당연히 배제 대상이고, 같은 부족임에도 여자와 어린아이 장애인 등은 부정 탄다는 이유로 배제했습니다. 그렇게 밀의종교가 성행하던 시대에 야훼 종교는 말씀을 들려주는 제의에서 만인을 차별하거나 배제하지 않고 동등하게 대한 것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몇 가지 이스라엘 초기의 제의 행위들은, 21세기를 사는 오늘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모두가 경탄할만한 일입니다. 날로 극심해지는 빈부격차는 말할 것 없고, 직장에서의 차별, 정규직의 비정규직 차별, 장애인 차별, 이주민 차별, 약자 차별, 성차별에 성폭력 등 갖가지 혐오와 배제와 편 가르기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차별의 벽은 높기만 한 대한민국입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오염된 세상을 정화시키기는커녕 문제의식조차 없는 게 한국교회의 현실입니다. 다듬은 돌로 화려하고 웅장하게 지은 성전이 곳곳에 즐비한데도 말입니다. 선교초기, 일제를 향해 목숨 걸고 독립만세를 외쳤던 역동적인 신앙이 어느 사이 ‘성전’ 안에 안주하는 신앙으로 변질된 것입니다. 통탄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