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부정맥을 치료하기 위해 전극도자 절제시술을 했습니다. 심장에서 불규칙한 전기 자극을 일으키는 부위를 찾아내 고주파 에너지로 태워버려 부정맥을 근원적으로 치료하는 시술입니다. 시술 후 다음 날 퇴원하는 간단한 시술이라고 했지만, 수십 군데를 태워 심장이 화상을 입었으니 몸이 놀란 것은 당연지사일 것입니다. 몸살 걸린 것처럼 통증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진통제를 먹고 통증명상을 하며 지나가는 과정이려니 받아들였지만, 견디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지금 이 순간 깨어있는 것’에 대해 좀 더 명확한 실습을 했다는 것입니다. 통증은 지금 이 순간에 있습니다. 온 몸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계속되는 통증 때문에 따라오는 여러 가지 감정들과 생각들, 좌절감, 우울감, 낙담, 답답함, 분노, 다양한 충동들, 짜증, 두려움, 끊임없는 생각들은 무의식, 즉 내면의 에고들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잘 되지 않아도 이것을 분리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통증을 통증만으로 존재하도록 만드는 것, 그래서 내 전 존재가 지금 통증 자체가 되는 것, 그러면 통증이 고통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노력은 고통은 통증에서가 아니라 에고에서 오는 것이라는 것을 점점 명확하게 알게 해주었습니다.

통증을 잊으려고 영화를 보거나 재미있는 책을 읽거나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리려는 노력은, 결코 고통을 해소하는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명확한 의식 속에서 통증을 느끼는 것, 지금 이 순간을 붙들고 견디어 내는 것이 방법입니다. ‘견디어 내는 것’은 온전하게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현존)에는 아직 다다르지 못한 것이지만, 회피(에고의 잠에 빠져드는 것)보다는 현존에 가까운 것입니다. 좀 더 명확해진 깨달음이 이번 시술을 통해 제가 얻는 선물입니다. 에고의 고통에 붙들린 육체와 통증을 의식하며 현존하는 육체는, 같으면서도 다른 육체입니다. 설거지를 한 그릇과 설거지가 안 된 그릇이 같은 그릇이면서도 다른 것처럼 말입니다. 현재에 깨어 존재할 때 육체의 수명도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깨어있음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유예된 것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할 상황을 내다보며 이러다 한반도 평화가 다시 긴장과 대립 국면으로 전환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소리도 들립니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갈등도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한반도는 강제적으로 남북 분리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은 지난 70여년 지속되었습니다. 분리라는 통증보다 더 심각한 각종 고통들이 남북 사이에서, 남남과 북북 안에서, 그리고 정치 지리적 국제관계 속에서 오랫동안 자라왔습니다. 집단적 에고들의 욕망을 따라 현재에 존재하지 못하고, 과거의 망령과 미래의 두려움에 붙들려 고통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4·27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를 현재에 깨어나게 할 하늘이 주신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지난 1년의 과정을 돌아보면, 우리의 에고들은 자꾸 과거로 회귀시키려는 사탄의 속삭임에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관성화된 온갖 두려움과 부정적 생각들이 자꾸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깨어나야 합니다. 현재에 존재해야 합니다. 자꾸 과거에 붙들리고 오지 않은 미래를 예단하며 주저해서는 안 됩니다. 두려움은 두려움을 낳을 뿐입니다. 남과 북이 손에 손을 잡았던 그 감격의 순간에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뿐만이 아니라 온 세계가 어떻게 기뻐했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오는 4월 27일 14시 27분, DMZ평화인간띠운동이 펼쳐집니다. 강화에서 고성까지 500km DMZ을 연결하는, 남과 북이 마주 잡은 손에서 느꼈던 감동과 희망을 현재에 불러내는 행사입니다. 50만명의 인원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운동본부는 조직적 동원보다는 광화문 촛불 집회처럼 자발적 운동이 되기를 바라며 홍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운동이 DMZ을 따라 마을 마을마다 평화의 축제가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예언자들이 역사를 뚫고 들어오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바라보며 노래했듯이, 기도하고 준비하는 분들이 그런 환상을 보며 노래하고 있습니다. 현재에 존재하는 순간, 역사(시간)는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저 은유와 환상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새로운 세상을 봅니다. 우리는 그런 순간에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다른 말로하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한민족이 집단적으로 각성할 전혀 새로운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꽃피는 봄날, 우리 DMZ에 소풍가지 않으시겠습니까?

“그 때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 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사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