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상암동 축구 경기장 건너편 동네에서 사는 나는 4년 전 한일월드컵 열기가 한창 달구어졌을 때를 자주 회상합니다. 16강도 바라보기 어렵다던 그 해 정초를 생각하면, 정말 꿈만 같았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4강의 연출이란 아무도 기대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신화였습니다. 모두의 열정과 무조건적인 사랑이 연출한, 실로 놀라운 쾌거였고, 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사건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을 연호하며 뿜어냈던 응원단의 열기와 더불어, 목이 터지도록 외쳤던 시민들의 거리 응원의 함성, 그런 가운데서도 질서를 지키는 품위, 이 모두는 우리의 저력을 만방에 과시하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4년 전의 그 감격을 종종 떠올리는 까닭은, 단순히 위안을 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있는 그 저력을 어떻게 해서라도 지속적으로 살릴 길이 없을까 늘 마음을 쓰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음 만 먹으면’ 되는 사람들입니다.

제아무리 마음을 다져 먹어도 못할 사람은 못합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이 면에서 독특합니다. 우리는 마음먹기까지가 힘들 뿐, 한번 마음먹으면, 무조건적인 사랑이 순발적으로 용암처럼 솟구치는 사람들입니다. 지난 연말에도 세계를 놀라게 한 사건을 우리는 생생히 기억합니다. 황우석 박사와 연구팀의 업적이 세계를 놀라게 하였던 일 못지않게 한 연구원의 난자 제공 의혹으로 불거진 사건과 그 전말에 대한 보도로 온 세계가 들끓었습니다.

그때 우리 모두가 드러낸 열정 또한 세계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젊은 누리꾼들의 표현이 지나쳤다고 느낀 나머지 대통령이 나서는 것을 모든 시민들도, 세계도 지켜보았습니다. 이보다 더욱 감탄할만한 일은 황우석 박사를 사랑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의 표현이었습니다. 스스로 난자를 제공하겠다는 여성들이 단 며칠 사이에 700 명에 이르더니 급기야 1,000 명을 넘어서는,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진풍경이 연출되었습니다. 난자 제공 사건을 집중보도 하려던 MBC 방송국을 향한 반응도, 그 열기로 말하자면, 일련의 표현 양식에서 나타났던 것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토록 대단한 열정과 저력을 드러낼 때, 얼마만큼 표현과 구체적 행동을 절제하며 품위를 지키느냐가 남은 과제일 뿐입니다.

다시 한번 세계 속에서 한국이 어떻게 비쳐지느냐가 대단히 중요한 새해를 맞이합니다. 2006 독일 월드컵 대회를 치루는 과정이요, 황우석 박사와 연구팀의 계속적인 연구 성과는 또한 세계의 관심이 쏠리는 일입니다. 세계 줄기 세포 허브도 마찬가지입니다. IT강국의 면모와 자존심을 지속시키는 일 또한 아주 중요합니다. 40여년 전 ‘수출 사억불’ 목표를 달성하고 무역 입국을 부르짖던 때와 비교도 할 수 없고, 당시로는 꿈도 꾸기 어려웠던 일이 지난 해 말에는 현실이 된 것입니다. 이름하여 수출 5,000억 달러 시대를 연 것입니다. 무려 1,250배에 달한 것입니다.

문화 예술 등 각 방면에서 한류를 일으키며 아시아 일대를 그야말로 성난 파도처럼 밀고 가는 우리의 연예인들과 더불어 박지성, 이영표, 차두리 등을 비롯한 유럽에 진출한 축구 선수들,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맹활약하는 박찬호, 이승엽 같은 야구 선수들, 세계적인 스타들이 된 한국 골퍼낭자들, 박세리를 비롯한 미셸 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여성들이 있습니다. 국내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세계 곳곳에서 한국인의 위상과 저력을 살리며 빛내는 수많은 과학자, 기업인, 학자 등이 있습니다. 이들 모두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무조건적 사랑으로 표출되는’ 강한 기 氣와 무서운 저력입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주눅 들지도 말고 우리의 기를 살릴 일입니다. 그렇다고 잘난척하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억지로 과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속에 다진 마음이 알차고, 가꾼 실력이 탄탄하고, 품은 열정이 뜨거우면, 절제와 조화 속에서 나타나는 힘이야말로 우리의 무서운 저력입니다. 다만 세계의 생명윤리와 ‘글로벌 스탠더드’ global standards를 의식할 뿐 아니라 그런 세계적 표준을 함께 만들어갈 여유까지 가질 만큼 감정의 균형과 맑은 정신의 바탕에서 무조건적인 사랑과 활동을 펼칠 일입니다. 우리가 지금 꾸는 꿈은 의미가 있고, 우리의 꿈은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지금 새해에, 우리는 꿈을 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