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20년 전에 CBS 월요특집의 주제가 ‘이제는 먹을 것이 없습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불량 식품을 고발하기 위한 시리즈였지요. 그러나 그때와 지금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회 경제가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한국의 경제성장을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코리아드림’을 안고 한국을 찾아옵니다. 연변의 많은 조선족 부모들은 자녀들을 위하여 한국에 와서 힘든 노동을 마다하지 않고 일을 합니다. 세계에서 손꼽을 정도의 대도시 ‘메갈로폴리스가 된 서울’은 이제 생활비가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변했고 생활수준도 높아졌습니다.

불량과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 IT산업이 발달한 나라입니다. 세계 유명브랜드가 시장 개척 과정에서 명품을 선호하는 한국의 소비자들의 성향을 따라서 한국시장을 벤치마킹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어른들은 최고품으로 휘감고 채우고 하는 동안에 자라나는 세대는 불량식품이나 오염된 식품을 집단으로 먹고 발병하는 사회가 되는 꼴이 아닙니까? 없고 모자라서 함께 고생하는 처지라면 얼마든지 이해하고 참기도 해야 할 일입니다. 능력이 모자라서 마련하지 못한다면 열 번이라도 견디겠지요.

그러나 문제는 전혀 다른 데 있습니다. 개인이나 사회를 막론하고 성숙의 기준은 능력과 성실의 조화에서 찾을 수 있다 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문제는 능력이 모자라기보다는 성실이 턱없이 모자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최근에 일어난 급식 파동으로 고통을 당한 학생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 사회의 성실성이 근본적으로 고찰되어야 할 사건입니다. 지금 우리의 생활 형편이 어떤데, 이런 일이, 그것도 재벌 회사가 관여한 시스템에서 일어난단 말입니까? 뒷북을 치는 소리는 요란하였습니다. 식자재 유통 및 공급 과정에서부터 조리 및 배식 과정, 위생 시설, 지하수, 종사자들의 위생 점검, 심지어 냉동차들의 온도기와 냉동기 조작 등, 제법 요란할 정도로 파헤치고 조사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야말로 ‘발본색원’이 되는구나 하고 일말의 기대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며칠 안 가서 나온 결과 발표는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식자재도 지하수도 그 어디서도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20여년 전에 어느 야당 정치인 댁에 화재가 났을 때, 고양이가 방화범이라고 발표했던 사건이 불쑥 떠올랐습니다.

딱히 누구라고 지목할 수는 없어도 이런 일은 도깨비가 했든가 귀신이 한 일일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어 보입니다. ‘맘몬’이라는 도깨비의 장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랫동안, 실로 오랫동안 ‘수명장수, 부귀다남’을 중시하면서 살아온 맥이 이어졌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맘몬이즘 Mammonism이 끈질기고, 돈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한참 자라는 우리의 미래요 ‘희망들’을 볼모로 삼고 그야말로 정신없이 기계처럼 돈 버는 데만 혈안이 되어 뛸 수야 없는 일’이 아닙니까?

허기야 맘몬이즘이 그리 쉽게 극복될 수는 없는 줄 압니다. 오죽하면 ‘돈 나올 구멍이 안 보인다면 독재자도 조폭도 사라질 것이다’라는 말이 나오겠습니까? 바로 돈 때문에 지난날에 ‘한국인들은 일하러 태어난 사람들이다’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일밖에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놀 줄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많이 달라졌지요. 놀 줄도 알고, 여가도 레져라는 이름으로 즐길 줄 알게 되었고, 웬만하면 아이들 조기 유학 보내느라 열을 올리지 않습니까?

이제 모두 차분하게 생각할 일입니다. 선후가 있습니다. 사회 곳곳에서 보이는 부정직, 부패, 불의 같은 것을 씻어내야 할 일이지만, 무엇보다 먼저 ‘우리의 미래를 소홀히 다루면’ 천벌을 받는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자라나는 세대를 애지중지, 아끼고 보살피고, 그야말로 옛어른 말씀대로 금지옥엽 金枝玉葉처럼 소중히 가꾸는 일에 모두 신명을 바쳐야 할 것입니다. 이게 나라 살리는 일입니다. 대한민국을 살리는 일입니다. 이것은 장래의 일만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 모두의 영혼을 돌보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