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은 그 장애의 정도에 따라 보통 1급에서 6급까지 장애유형별로 나누고 있습니다. 숫자가 작으면 작을수록 중증이어서 흔히 중증장애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1,2급 장애인을 말합니다. 이들은 대부분 스스로 보행이 불가능합니다. 때문에 휠체어나 보조기구를 사용해 이동을 합니다. 얼마 전 한 여성장애인을 만났습니다. 사무실에서 불과 5분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생활하는 이 장애인은 30대 중반으로 수 년 전 비 오는 날 공사장 인근을 걷다가 넘어져 목 아래 부분을 전혀 사용할 수 없는 중증의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물론 절망의 시간도 있었지만 지금은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며 당당하게 일상적인 생활을 합니다. 비슷한 유형의 장애인들을 직접 만나서 자신감을 불어주는 상담은 물론이고 여러 곳을 다니며 강의를 통해 새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최근 이분을 만났는데 불만 섞인 목소리로 서운함을 털어놓았습니다. 내용은 얼마 전 인천지역에서 한 중증장애인이 생활고를 비관해 지하철 선로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이와 관련한 언론의 무관심을 탓하며 필자가 발행하는 장애인인터넷신문 위드뉴스에서도 관심을 갖지 않은 것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중증의 장애인으로 장애인권운동의 현장에서 호흡을 같이 했던 동지가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보며 자신도 같은 고민을 계속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사람들을 종종 만납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전동휠체어의 등장과 보급으로 인해 이러한 사람들이 거리로 많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일년 365일 방에 누워 벽과 하늘만 바라보며 살아야 했던 중증의 장애인들이 이제는 거리로 우리의 삶의 현장으로 나와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속으로 이러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듯 중증의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회로 나오게 한 계기가 독립생활 혹은 자립생활이라고 하는 IL(Indepe -ndent Living)운동입니다. IL운동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중증의 장애인들에게 이른바 활동보조인이라는 협력자를 붙여줘서 스스로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물론 가정에서 가족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중증의 장애를 갖고 있더라도 스스로 결정할 권한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우리의 중증장애인들은 그러한 선택권을 박탈당했습니다. 가정에서도 의사결정에서 배제시키고 하다 못해 자신과 관련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가족들의 결정에 승복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IL운동은 무엇보다도 중증장애인 당사자의 결정을 존중하고 그의 결정에 따른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러한 정신을 지키기 위해 가족으로부터 떠나 독립적으로 생활을 하고 자원봉사자와는 다른 형태의 유급도우미라고 할 수 있는 활동보조인은 철저하게 중증장애인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신변처리에서부터 이동, 식사, 목욕 등등 일상의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제도가 부분적으로 시범 도입되어 일부의 중증장애인들이 서비스를 받음으로 비장애인들과 같은 일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예산부족이라는 벽에 막혀 확산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중증장애인들이 전국의 지방자치단체 앞에서 농성을 벌이며 활동보조인 서비스 제도화를 요구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절망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제공하는 것과 같은 활동보조인서비스, 이제는 이것을 정부에게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가 함께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무실 공간을 제공하든 인적자원을 훈련시켜 파송을 하든, 어떤 형태로든지 한국교회도 동참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