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4월입니다. 꼭 90년 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탄식했던 이상화 시인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라고 암울한 조국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절망을 눈부신 봄의 풍경을 통해 그려냈습니다. 똑같은 심정으로 다시 4월을 맞이합니다. 분단된 한반도는 국가비상체제(?)로 전환되어 남북이 맞대결로 치닫고, 생명을 바쳐 민주주의를 세웠던 4.19 혁명 정신은 퇴화하고 오히려 영구집권을 꿈꾸는 탐욕스런 권력에의 욕망이 어두운 그림자를 대한민국에 드리우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드러난 무능하고 무책임한 국가의 모습과, 경제적으로 양극화 되어 늪에 빠진 것처럼 점점 더 절망 속에 빠져드는 시민들의 무거운 삶은 대한민국이 삼류국가로 전락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이런 걱정이 봄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들로 나가 보십시오. 누에고치를 벗어던진 나비처럼, 혹은 이 세상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은둔자처럼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살금살금 들판으로 나가 보십시오. 사랑이 성큼 거기에 와있습니다. 생명이 또다시 피어나고 있습니다. 묵은 낙엽을 들추어내면 생명은 녹색 희망으로 부활하여 벌써 저 앞에 가고 있습니다. 아아, 생명보다 앞서는 게 있을까요? 인간의 탐욕이 아무리 세상을 어둡게 해도 생명을 꺾을 수 있을까요? 희망은 들에서, 혁명은 어린 새싹에서부터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 걱정은 내려놓고 마음껏 푸른 들을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예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걱정과 염려대신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을 보라고. 걱정과 염려는 우리 마음을 병들게 하지만,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은 우리 마음을 치료해줍니다. 그러니 먼저 우리 자신부터 위로하고 치료해야 하겠습니다. 선거를 통한 혁명은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우리가 먼저 행복해지고, 우리가 먼저 생명 안에서 깨어있으면, 모든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권력게임이 얼마나 헛된 욕망의 그림자인지! 그 게임에 괜히 휩쓸려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바라보십시오. 관찰하십시오, 인간의 탐욕들을, 그리고 나의 욕망과 탐욕을 관 觀하십시오! 선거 국면을, 분노나 절망에 취하는 욕망의 무대가 아니라, 깨어나 절망과 분노를 바라보는 영성의 장으로 만드십시오. 그러기 위해 우리를 깨어나게 하는 맑은 기준이 필요합니다. 봄의 생명들이 우리 영혼을 깨워주는 하늘의 전령들입니다.

서양의 붓다, 현대의 장자라 평가받는 구르지에프는 인간발달의 일곱 단계를 말하며 한 가운데인 4단계를 ‘균형 잡힌 중심’을 갖고 사는 단계라고 했는데, 이 단계에서부터 인간의 진정한 영적 발달은 시작된다고 보았습니다. 그가 제자들과 함께 1922년 파리 남부 퐁텐블로 인근 샤또 프리외뢰에 세웠던 <인간의 조화로운 계발을 위한 학교 Institute for the Harmo- nious Development of Man>의 이름에 ‘조화로운 계발’을 내세운 것은, 그가 균형과 조화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본능이나 감정이나 지성에 치우쳐서는 영적 상승을 이룰 수 없기에 균형과 조화를 이룬 수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저는 구르지에프의 균형과 조화의 지혜를 이번 선거를 맞이하는 시민들에게 전해주고 싶습니다.

선거는,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는 균형과 조화의 지혜를 필요로 합니다. 이것은 전쟁이 아닙니다. 어느 한 쪽을 끝장내고 정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생각과 다른 판단을 가진 사람들이 다른 것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조화를 이루는 일입니다. 이번 선거를 맞이하면서 우리가 지성이나 감정이나 본능에 치우치면, 즉 균형을 잃고 어느 하나에 끌려가면, 우리는 다시 권력게임의 수렁에 빠질 것입니다. 전쟁과도 같은 선거를 치룰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생각과 빠른 판단을 하고, 너무 감정에 깊이 빠지거나 무감각해지며, 너무 쉽게 분노하거나 절망합니다. 그래서 결국 선거가 끝나면 또 다른 대결국면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역사를 더 길게 보고 생명의 긴 호흡으로 숨을 쉬면서 이번 선거를 나의 영적 수련의 장으로 삼는다면, 다른 것들 사이에서 균형과 조화를 찾는 지혜의 기회로 삼는다면, 선거가 축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너무 현실감이 떨어진 이야기입니까? 그만큼 우리가 이미 깊은 욕망, 감정, 판단의 잠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요? 봄볕이 모처럼 참 따뜻합니다. 커피 한잔 들고 어디 양지바른 곳 찾아 앉아보십시오. 즐겨보십시오. 바람결에 살랑거리는 신의 유혹을 느껴보십시오. 이번 선거철, 격정의 4월이 평안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