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온갖 술수를 동원하여 하나님을 부정하는 게 인간입니다. 예수께서 솔로몬 행각을 거니실 때입니다(요 10:22-33). 유대인들이 몰려와 예수를 에워싸고 ‘당신이 누구인지 밝히라’고 다그칩니다.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데도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않는 것이다.” 예수의 대답입니다. ‘감히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라니!’ 유대인들은 예수를 돌로 치려고 달려듭니다. 대제사장 가야바는 산헤드린에서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요 11:50)이라고 예수를 죽이도록 살인을 교사하기도 했습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대리인이 되어 하나님의 아들까지 죽이려는 자들의 독기에 소름이 돋습니다.

잘 알려진 영화 ‘밀양’ 이야기. 아이를 죽인 살인범이 피해자 어머니에게, “저는 주님의 도움으로 마음의 평화를 찾았는데, 당신은 왜 그렇게 고통스러워하십니까? 남을 미워하지 말고 용서하고 마음의 평화를 찾도록 제가 기도해드리겠습니다.” 기막힌 일입니다. ‘행복한 가해자’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피해자에게 회개하라고 설교하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자들이 벌이는 파렴치가 이러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선 내가 누구인가를 알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자기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아는 것입니다.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아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죄 때문입니다.

바울은 죄의 심각성을 알기에 ‘사망이 왕 노릇’한다고까지 했습니다(롬 5:12-17). 죄가 무엇이기에 그토록 위세를 떨치는 것일까. 칼 바르트는 [로마서강해]에서, 죄는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과 대립하는 것, 자신의 피조성을 부정한 것이라고 설파한바 있습니다. 피조성을 부정한다는 것은 자신이 창조주가 되고자 함이요, 생명의 고유성을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이런 죄가 지배하는 세상은 언제나 음침한 죽음의 세력이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정치를 외면하고 통치만 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담은 칼럼을 본 일이 있습니다. 민주국가에서 권력은 ‘통치’가 아닌 ‘정치’를 통해서 구현되는데 박 대통령에게서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치를 외면하고 통치만 하려는 권력은 독재의 나락에 떨어지기 쉽다는 게 역사의 교훈입니다.

바르트는 또 ‘죄는 피조자인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자신을 강탈한 것’이라고 합니다. 죄는 창조주와 피조물이라는 관계로 묶여 있어야 할 정신적인 띠를 끊어버리고 그 근원을 망각한 상태에서 자신과 하나님을 나란히 세우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 하나님은 죄 가운데 있는 인간에 의해 버림받은 분, 고통당하는 분, 부정된 분으로 기억됩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려 했던 것이 바로 이런 연유 때문입니다. 죄는 인간이 하나님을 부정한 것이니 그 자체로서 권력입니다. 그리하여 죄는 죽음의 권력으로 세상을 지배합니다. 이 차디찬 죽음의 권력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가? 역시 바울의 관점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에 의해 아담의 피를 물려받은 내가 부정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바울은 ‘아담 안에서’ 라는 말 반대편에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말을 놓고 있습니다. 인간은 본시 피할 수 없는 죄의 유전을 지니고 있지만 그것 때문에 죽는 것은 아닙니다. 회개하고 돌아서지 않기 때문에 죽습니다. 죄 안에 있으면서, 은혜 안으로 자신을 옮기지 않기 때문에 죽습니다. 사람이 병이 들어 죽는 게 아니라, 병을 치료하지 않기 때문에 죽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스스로를 돌이켜보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내가 예수로 인해 ‘행복한 사람’이라면, 나로 인해 예수께서 고통을 겪으신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행복에 취해서 타인의 고통을 알지 못하는 것은 자기가 죄인임을 모르는 죄악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한 행복은 행복일 수 없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데서 오는 행복이라야 참된 행복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것이야말로 구원받아야 하는 인간의 기본자세이기도 합니다. ‘예수로 인해 행복한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한다면 세상은 훨씬 밝아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