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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로 띄우는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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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어디에 내놓더라도, 한국교회처럼 ‘믿음’을 강조하는 교회도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한국교회에서 ‘믿음’은 그가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지 아닌지를 식별하는 가늠자입니다. 하지만 그토록 강조하는 믿음임에도, 그 믿음이 드러내는 반사회적, 반역사적, 반민주적, 반생명적인 행태에는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한국교회 처음 그리스도인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저들은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도 새 시대를 여는 빛이었고,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우는 표식이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게 되면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벧전 4:16)는 말씀을 주옥처럼 받아들인 이들입니다. 자기희생을 감수하는 고난을 참된 생명의 길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서 하신 말씀은 우리를 숙연하게 합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능욕하고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박게 하리니…”(마 20:18-19). 지금 예수께서는 고난에 넘겨질 자신을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그’라고 3인칭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 자신을 고난 가운데 넘겨진 사람, 이제는 내가 나를 주장할 수 없는 사람, 내게 닥친 고난을 나 스스로 통제할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그렇게 표현했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를 ‘믿는다’ 혹은 ‘따른다’는 표현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예수에게 ‘넘겨진 사람’이라는 표현이 더 맞습니다. 예수 믿는 것은 예수에게 자신을 넘겨준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제부터는 내가 나를 주장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나를 ‘그’로 불러야 할 사람, 오직 예수만이 나를 주장하게 된 사람입니다(2014.4.햇순, ‘가공한 그리스도’에서 인용).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의 ‘믿음’에 의하면, 예수는 인간의 욕망을 채워주는 능력자이고, 고난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홀로 십자가를 지신 분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고난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더욱 강화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대신 지고 승리하신 분이기에 우리는 그런 예수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십자가를 부인하지 않으면서, 십자가의 효능을 삼키는 것이지요. 인간의 욕망 안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은 사라지고, 십자가의 능력만 남는 것입니다. 탄핵반대 대열에 나타난 십자가 행렬은 여기에 한 가지 더 추가했습니다. 해방정국에서 잔혹한 테러를 일삼은 기독청년중심의 서북청년단이 그랬던 것처럼, 십자가는 어떤 불의도, 어떤 폭력도, 어떤 위선도 그리고 어떤 거짓도 애국으로 전복시킬 수 있다고 믿은 게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믿음’도 달라져야 하는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에게 넘겨져서 고난을 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야 할 사람입니다. 우리가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처럼 그리스도를 따르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욕망의 도구로 변질시키지는 말아야 합니다. 내가 온전히 그리스도의 고난의 삶을 살지는 못할지라도, 그분을 내 욕망의 도구로 가공하지 말아야 합니다. 최근 프란시스 교황이 ‘믿는 위선자보다 차라리 믿지 않는 무신론자가 낫다’고 말한 이유도 그럴 것입니다. 인간이 봄꽃을 가공해서 봄을 오게 할 수 없듯이, 고난의 그리스도를 가공해서 영광스러운 그리스도로 만들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에게 녹아든 사람이라야 그리스도를 빛낼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에 의해서 새롭게 형성되어야지, 내 욕망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재구성하려는 ‘믿음’은 멈춰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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