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스피어피싱(spearfishing:작살을 이용한 물고기 사냥) 전문가, 서퍼, 바다수영선수, 파도사진작가 등 바다에서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찾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바다에서 그들은 깨달음을 얻고 삶의 의미를 발견합니다. 우리는 어머니의 자궁 속, 물에서 태어났습니다. 양수는 바닷물과 유사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갓 태어난 아기들도 바닷물에 던져놓으면 스스로 능숙하게 수영하는 것을 봅니다. 바닷물은 고향처럼 집처럼 편안한 생명의 원천입니다. 사람들이 바다에서 그렇게 즐거움과 감탄과 깨달음을 얻는 것도 우리 내면에 각인된 탄생 이전의 기억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중 스피어피싱을 하는 여성이 이런 말을 합니다. “부력이 바뀌는 수심에 들어가면 부력은 마이너스가 됩니다. 그렇게 되면 막 가라앉기 시작하죠. 심해잠수다이빙을 처음 했을 때는 두렵고 아직 갈 준비가 안 된 곳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바다에 몸을 맡길수록 어떤 느낌이 드느냐하면, 집으로 들어간다는 느낌이 들어요.”

바다 깊은 곳에서 죽음에의 두려움을 집으로 들어가는 편안함으로 경험하는 것은, 저도 똑같이 공감하고 또 그리워하는 경험입니다. 동해바다에서 스쿠버다이빙을 배우던 때의 일입니다. 바다 속 시야가 10m 정도 밖에 나오지 않던 흐린 날이었습니다. 입수하고 하강을 하는데, 문득 함께 하강하던 사람들이 모두 시야에서 사라지고 좌우상하 온통 물만 가득 둘러싸고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완전히 혼자인 두려움, 내가 가라앉는지 뜨는지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고 마치 텅 빈 우주 공간에 홀로 있는 듯한 두려움이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상반된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떤 무게감도 방향감각도 느낄 수 없는 편안함과 자유로움이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은, 바닷물에 완전히 나를 맡겨버림으로써 얻는 자유를 알게 해주었습니다. 두려움과 자유로움이 함께 공존하는 부력이 바뀌는 지점, 생사의 경계선에서 한걸음 더 죽음으로 넘어갈 때 우리는 비로소 참된 자유를 경험합니다.

살려고 몸부림 칠 때가 아니라 죽음에 나를 놓아줄 때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는 것은, 삶의 역설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생물학적인 순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향하고, 산다는 것은 곧 죽는다는 것과 동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한한 것이 유한한 것으로, 절대성이 상대성으로, 영원이 순간으로 들어온 것이기에, 삶은 그 자체가 죽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죽기 위해 태어났다고 말해도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죽음을 통해 삶의 소중함을 경험하고, 순간을 통해 영원을 배우고, 상대적인 세계를 통해 절대적인 세계를 그리워하고, 유한성을 통해 무한한 것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죽음은 끝이 아니라 변화요 회귀입니다. 우리가 거부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생물학적 죽음이 아니라 심리적인 것입니다. 에고가 만들어내는 삶의 욕망과 환상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만들고 죽음을 어둡고 부정적인 영역으로 가두었습니다. 에고가 만든 최고의 작품은 ‘삶의 영원성’을 실현하려는 헛된 욕망입니다. 죽음이 삶의 동반자요 친구로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에고가 만드는 영생의 신화와 욕망에 갇혀 두려움을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 삶의 노예가 될 것입니다.

고 故 김영운 목사 5주기를 앞두고 자꾸 목사님을 떠올리게 됩니다. 급작스런 이별에 아쉬움과 그리움이 여전히 남아있지만, 그분이 생전에 추구하셨던 자유를 생각하면 “지금 좋다!” 하시면서 우리를 바라보실 것 같습니다. 죽음은 우리를 가르지 못합니다. 우리를 가르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에고의 욕망입니다. 살아있는 우리들도 에고의 욕망 때문에 단절된다면, 생물학적으로는 살아있는지 모르지만, 실상은 서로에게 죽어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너는 나를 따라오너라. 죽은 사람의 장례는 죽은 사람들이 치르게 두어라.”(마8:22) 하셨습니다. 우리는 죽은 사람의 장례를 치르는 살아있지만 죽은 사람들이 아닙니까? 우리가 진정 살아있는 사람들이 된다면, 우리는 생사의 경계선을 넘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언제나 함께 있는 것입니다.

상담을 하다보면 대부분 내담자들의 문제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미 세상을 떠나신 부모를 가슴에 품고 여전히 고통 속에 살고 있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돌아가신 부모님이 아니라 내 가슴 속에 있는 부모님을 초대해 대화하고 화해하는 치료기법을 사용합니다. 부모님을 기억할 때 늘 웃는 모습으로 떠오를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에고를 넘어섰다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설날, 가족들이 에고의 욕망과 죽음을 넘어 참된 기쁨을 발견하고 돌아가신 분들과 기억 속에서 하나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