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2021

 

 

 

 

 

 

 

 

 

 

 

 

  편지로 띄우는 말씀

 

성령을 보시다

 

 

 

 

 

 

 

 

 

 





이 은 재


목사
무지개공동체교회 담임
kszukero@hanmail.net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요한의 회개운동에 예수께서 동참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요한과의 결정적 차이는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성령을 보고 하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빛과 어두움의 대립이라는 이분법적 세계관에서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인물이었습니다. 이분법적 세계관에서 구원이란 한 쪽을 버리고 다른 한 쪽을 택하는 것입니다. 제가 ‘한 쪽’이라고 말하는 것은 ‘빛 : 어둠’의 정의는 적대적 관계에서는 서로 상대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이런 세계관의 최고봉에 도달했던 세례자 요한은 답을 얻지 못해 목말랐습니다. 산꼭대기에 올라왔지만 하늘에는 오르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길을 찾았습니다. 산꼭대기가 아니라 하늘에 오르는 길입니다. 그 길은 빛과 어둠을 나누는 이분법적 길이 아니라 그 둘을 하나로 통합하는 제3의 길입니다. 이 길은 ‘정반합’의 원리와는 조금 다릅니다. 양극단의 중간에서 균형, 화해, 새로운 합(合)을 얻는 민주주의적 원리(?)와는 다른 길입니다. 그것은 빛과 어둠의 경계를 무너뜨린 길입니다. 이 둘을 하나로 합친 것이 아니라, 그 둘이 본래 하나라는 것, 본래 경계가 없는 것, 빛이 어둠이요 어둠이 빛이라는 것, 공과 색이 본래 하나라는 것(空卽是色, 色卽是空), 하늘과 땅이 하나요, 그러니 지금 여기가 곧 하늘이라는 것, 내가 하나님과 하나라는 것, 내가 전체요 전체가 나라는 것, 처음과 끝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하나라는 것, 이것이 예수가 보았던 제3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깨달음은 성령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성령이란 결정적인 하나님의 개입이며 새로운 제2 창조의 시작입니다. 인간의 눈이 아닌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먼저 세상을 향해 얼굴을 돌리지 말고 하나님을 향하십시오. 우리가 세상을 향해 얼굴을 돌리면, 우리 눈에는 문제가 먼저 들어옵니다. 인간의 고통이 보이고 절박함이 보이고 좌절과 절망이 보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고통으로부터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정의를 실현해 달라고, 우리를 해방시켜 달라고 간청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묻지 않고 인간의 고통이 하나님께 내놓는 당연한 요구와 권리로 생각합니다. 고난 받는 민중의 특권이라고 해야 할까요? 고난 중에 있기 때문에 당연히 하나님께서 돕고 구원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나의 구원을 위해 사용되는 도구로 왜곡되고 맙니다.

이제는 이 시각을 바꿔야합니다. 민중의 눈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아야합니다. 하나님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고, 민중을 보고, 역사를 보면 거기에는 다른 것이 보입니다. 배고픈 민중들의 진정한 고통은 빵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도 빵을 못 먹어 배고픈 분이셨지만 굶주림도 죽음도 그분의 진짜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굶주림의 고통을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영적인 굶주림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왜 수많은 민중해방운동이 실패했을까요? 그들의 눈이 인간의 욕망을 향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진리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리고 진정 민중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민중의 욕망과 또한 민중을 위한다는 자신의 의로움, 자신의 욕망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늘나라 운동이 되었으면 합니다. 먼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 하늘시민으로서 모두가 행복한 그런 삶 말입니다. 코로나19는 이런 각성을 바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 아닐까요? 예수께서 물에서 올라오실 때 보았던 그 성령을 얻으시길!

 

 

 

 

 

 

 

 

 




08349 서울 구로구 개봉로 11길 66. 2층   Tel 010)9585-3766, 010)7591-4233
  cbsi@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