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성서연구


	10/2003	목차 (2003년 10월호, 제92호) :햇순:을 읽고.. 편지로 띄우는 말씀 / 공동체성서연구자료 / 성서난해구 해설 / 공동체만들기 오늘을 바라보며 / 말씀과 삶의 뜨락 / 현장의 소리 / 강정규 연재동화 영성생활에 도움되는 책 / 에니어그램영성 / 공동체소식 / 공동체 이야기

말씀과 삶의 뜨락

글쓴이
:
박 유 일

목사, 유암교회 / 제12기 영성수련

송 광 섭

신부 / 제15기 영성수련

살구나무와의 대화

박 유 일

살구나무 밑 살구가 많이 떨어져 있었다.
시장에 나오는 살구보다 작지만 맛과 향이 더 진했다.
지금 혀밑에 침이 돈다.
엊그저께 나무에 약을 쳤다고 어떤 아저씨가 말한다.
‘앗 3개나 먹었는데....’ 침을 뱉었다.
그리고 좀더 내려오는데 먹은 것이 저절로 토하여 올라와서 뱉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무, 넌 자라는 비밀이 뭐냐? 어떻게 자라지?”
“응, 그건 태양의 열기를 받아 물이 증발하여 올라가는 길을 따라 자라는 거지.
잎도 다 그렇게 틔우는 거야.”
“다리가 없어서 가고 싶은데 못 가서 불편하지?”
“그래서 대신 앉은자리에서 다 해결하려 하지.
그래서 참을성이 대단해. 그런데 너희도 나무와 별반 다르지 않아.
우린 자라기에 자리가 정 적당하지 않으면 뿌리나 가지를 다른 곳으로
뻗어 옮겨보려 하지. 그러나 거의 쉽지 않기에 그 자리에서 견디는
쪽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나가지”

길 양옆으로 심겨진 큰 나무들의 이파리들이 모두 나를 축복해 주는 듯
하나님을 찬양하는 듯 걷기는 계속되고 들이마시는 숨이 하복부에 꽉
들어차는 느낌이 뿌듯하다.
몸은 조금씩 활기를 띠고.

모락산에 올라서서

송 광 섭

겹겹이 쌓인 낙엽을 밟고
오솔길을 따라 산 정상으로 올라간다.

드디어 모락산 정상!
따사롭게 비추는 양광.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
푸르른 소나무.
낙엽을 입고 있는 떡갈나무.
앙상한 잡목들.
프란치스코 성인이 자연과 벗하고
들짐승, 새들과 친하게 지내셨다지.
옛일을 떠올리며 눈앞에 전개된 자연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거대한 바위들도 있다. 이름하여 '큰 범 바위'도 보인다.
억만년 말 없이 앉아있는 바위.
세상의 역사, 인간의 비밀들을 알고 있지만
묵묵히 앉아있는 바위.
내 생은 기껏해야 육십 년.
바위는 억겁의 세월 속에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껴안는다.
침묵하고 있는 바위앞에
나는 왜소해진다.

바위는 변덕도 없다. 춘하추동 한결같다.
눈보라 비바람을 참아내며 꿋꿋이 서 있다.
바위여, 어떻게 하면 그대처럼 꿋꿋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고통과 시련을 다 껴안을 수 있는가?
바위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라.

이를 만드신 하느님은 얼마나 크신 분인가! 능력자이신가!
그분은 사람을 당신 모습대로 만드셨다는데
내 안에 그분의 모습은 어디 갔는가!

그분이 심어주셨건만
나의 불찰로 내 안에 있는 숨은 보화들을
찾아내지 못하는 내가 아닌가?
내 탓으로, 내 어리석음으로
주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았는가!
그러면서도 오히려 주님을 원망하던 때는 얼마나 많았던가!

주님, 찾게 해 주십시오.
발견하게 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창조하신대로 보화를 찾아내고
귀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주님께
큰 영광과 찬양과 감사를 드리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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