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북관계가 심상치 않습니다. 좋지 못한 징조들이 우리 안에서 연이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랜 동안 날카롭게 대치했던 남북이 어렵게 마주한 자리가 ‘격’ 문제로 물거품이 되더니, 우리 정부 책임자들에 의해 남북 최고지도자들의 대화록이 공개됨으로써 남남갈등은 말할 것도 없고, 앞으로 북한과의 대화에 심각한 불신을 초래하게 됐습니다. ‘한반도신뢰프로세스’를 주창한 박근혜 정부가 스스로 신뢰를 깨버리는 일을 한 것이지요. 우리는 지금까지 대화의 조건으로 북한이 변해야 한다는 걸 당연시해왔습니다. 대화의 목적도 북한의 변화에 역점을 두었습니다. 물론 북한은 변해야 합니다. 하지만 정작 변해야 할 대상은 북한이 아니라 우리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미 사망한 전직 대통령까지 불러내서 정쟁의 도구로 삼는 후진적인 정치가 달라지지 않으면서 상대를 향해서만 변하기를 바라는 게 어디 씨알이나 먹히겠습니까. 그것도 사실을 터무니없이 왜곡?조작하면서 말입니다.

좀 돌아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창세기가 모두 50장인데, 그 가운데 야곱의 이야기가 절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위치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식을 알면 돈이 보인다.’는 말이 있는데, ‘야곱을 알면 세상 이치가 보인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듯싶습니다. 야곱은 ‘특별한 인간’이기보다 ‘보통 인간’입니다. 보통 인간인데 좀 억척스런 인간입니다. 사느냐 죽느냐 하는 서바이벌게임 현장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자라고 할까요?

종족 최고 권력인 장자권 탈취를 위해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인 에서를 속인 야곱입니다. 그런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하여 20여 년을 머슴살이를 합니다. 줄곧 외삼촌에게 속아 살면서도 아내를 맞이하고 자식을 낳고 가산을 모으게 됩니다. 객지에서 고생을 하면서도 한결같이 ‘귀향’을 꿈꾼 야곱입니다. 마침내 귀향의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지난날 에서와의 원수관계가 그의 귀향길을 가로막았습니다. 야곱으로서는 어떻게든 원수관계를 풀어야 했습니다. 벼라 별 궁리를 다 짜냈지만 해답을 얻지 못하고 야곱 홀로 얍복 강가에 남습니다. 예전처럼 어려울 때 도와줄 어머니도 없습니다. 위로가 될 처자식도 없습니다. 오직 홀로 자신이 지은 죄와 원수관계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설화자는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밤새도록 천사와 씨름했다고 합니다. 주석가들은 천사가 과연 누구인지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을 내 놓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천사를 제3의 존재라기보다, 야곱 자신의 내적인 존재 즉 분열과 갈등으로 일그러진 자신과 대면하는 존재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그는 환도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사투를 벌였습니다. 마침내 그는 천사를 이기는 자가 됩니다. 분열된 자아를 극복한 자가 된 것입니다. ‘간사한 자’, ‘움켜쥐는 자’라는 이름의 야곱은 ‘이스라엘’ 곧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고결한 뜻을 지닌 새로운 존재로 거듭납니다. 설화자는 이 장면을 한 폭의 수채화처럼 그리고 있습니다. 브니엘의 아침햇살을 받으며 걸어가는 야곱, 권력에 중독되어 부도덕했던 인간에게 내린 하나님의 은총의 햇살이 야곱의 얼굴을 환하게 비추고 있습니다(창 32:31). 비록 절뚝거리기는 했지만, 그의 얼굴은 세상에 대한 의심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화가 깃들어 있습니다. 에서가 달라진 게 아닙니다. 야곱이 달라진 것입니다. 야곱이라는 분열된 인간이 치유되자 에서가, 아니 세상이 달라 보인 것입니다. 그곳을 ‘브니엘’이라고 명명한 것은, 야곱이 원수 에서가 아닌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것이요, 하나님만을 사모했다는 것이요, 하나님만을 바랐다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감히 하나님과 겨룬 대가로 인해 환도뼈가 어그러지고, 한 쪽 발을 저는 자가 되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엡 3:14-15) 이렇게 이어지는 바울의 기도 역시 마치 얍복 강가에 홀로 남아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을 연상케 합니다. 바울은 분열된 세계의 치유를 위해, 자신이 먼저 변하기 위해 하나님께 무릎 꿇고 매달려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도 북의 형제자매들을 향해 브니엘의 아침햇살을 받으며 걸어가는 야곱처럼 변할 날은 언제일까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북한이 변하기를 바라기 전에 우리가 먼저 변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