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게 무엇을 의미할까? 요즘 들어 새삼스럽게 밀려드는 생각입니다. 짧은 기간 내에 세계 최대 교회를 일군 교회의 목사가 말년에 구차한 일로 아들과 함께 재판을 받고 중형을 선고받는 모습을 접하면서 더욱 그렇습니다. 그의 ‘삼박자 구원론’과 ‘승리의 복음’ 그리고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는 짧지만 강력한 메시지는, 한국교회는 물론 사회에까지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기복주의적인 메시지는 한국교회를 심각하게 오염시킨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그의 말년의 모습은 그가 그처럼 큰 교회를 만들기 위해 ‘가공한’ 그리스도의 뒤끝을 보여주는 것 같아 더욱 씁쓸합니다.

신약성경에서 흔치 않은 ‘그리스도인’(행 11:26; 벧전 4:16)이라는 말은 박해시대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만사형통의 ‘삼박자 구원’이란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는 말이지요. 박해시대에 그리스도인은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배제시키고 척결시켜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그리스도인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인으로 인식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영광으로 여겼습니다(벧전 4:16). 바울과 같은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는 걸 소원(빌 3:10)으로 여기기까지 했습니다. 고난은 예수께서 가신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벗어나 그리스도를 만날 다른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에는 우리가 유념해야 할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능욕하고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하리니…”(마 20:18-19).

예수께서는 지금 고난에 넘겨질 자신을 ‘그’라고 마치 다른 사람처럼 3인칭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다른 데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자신을 고난 가운데 넘겨진 사람, 그리하여 자기 자신을 주장할 수 없는 사람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를 ‘믿는다’ 혹은 ‘따른다’는 표현은 충분한 의미를 담아낸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통상 예수를 믿는다고 했을 때, 그 ‘믿는다’는 말이 예수에게 ‘넘겨진’ 사람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을 때만이 진정으로 믿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넘겨준 사람입니다. 더 이상 내가 나를 주장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나를 주장하게 된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나를 ‘그’로 불러야 할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고난은 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영광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처럼 고난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인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고난을 필요로 하기는 합니다. 예수는 고난 가운데서 승리한 분이어야 하고, 내 소망을 이뤄주는 능력자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내가 짊어져야 할 고난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승리하신 분이기에, 우리는 그런 예수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더욱 강화됩니다. 인간의 욕망 안에서 자신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 고난은 사라지고, 십자가의 능력만 삼키는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은, 적어도 한국과 같은 사회에서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박해받을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에게서 고난을 떼어낼 수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에게서도 고난을 떼어낼 수 없습니다. 내가 그리스도께서 지신 고난의 삶을 살아내지 못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인정하되, 그리스도 또한 본래의 그리스도이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를 욕망의 도구로 변질시키지는 말아야 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기술로 원석을 가공해서 보석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인간의 필요에 맞게 가공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동기가 선하다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빛나게 해서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려는 모든 공력은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그리스도는 고난 가운데서 스스로 빛을 드러내시는 분이지, 인간의 공력에 의해 빛을 발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한국교회가 제 자리로 돌아가려면 그리스도를 가공하는 헛수고를 버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