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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삶의 뜨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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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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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한병철은 진정한 아름다움 (선/숭고)을 무엇으로 보는가? 진정한 아름다움은 ‘나를 타격하여 쓰러뜨리는 것’ ‘나를 뒤흔들고 파헤치고, 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너는 네 삶을 바꾸어야 한다’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한병철은 여기서 더 나아갑니다. 아름다운 대상을 자기 확인과 만족, 향유의 도구로 삼기를 그만두고, 자신에게 충격과 전율과 불안과 고통을 안겨주며 상처를 입히는 것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나는 타자의 타자성을 인식하고 타자를 향해 자신을 열어놓을 수 있게 된다고 말합니다. 결국 한병철이 말하는 ‘아름다움의 구원’은 소비사회에서, 나르시시즘에 빠진 내게서 잃어버린 ‘타자의 구원’인 셈입니다. 한병철의 글을 읽으면서 한국교회의 강단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교회 역사상 오늘날처럼 강단의 설교가 풍성한 때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 어느 시대보다 말씀이 세련되고 풍성하여 들을 게 많습니다. 설교자들의 말씀을 증언하는 능력도 연기자들 못지않습니다. 설교자들의 학력도 높습니다. 그만큼 박식하고 다재다능합니다. 그런 이들에 의해 이뤄지는 설교들은 나를 긍정하게 하고, 수용하게 하고, 감격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나를 향한 말씀들은 나를 너무나 사랑해서 나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에로틱하게 위무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것은 그 풍성하고 세련된 말씀들은 누구나 편안히 들을 수 있도록 모서리를 모두 매끄럽게 다듬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를 찌르고, 불편하게 하고, 부정하는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한병철의 표현대로 나를 타격하여 쓰러뜨리고, 뒤흔들고, 파헤치고, 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너는 네 삶을 바꾸어야 한다’고 경고하지 않는 것입니다. 설교를 듣는 이들이 말씀을 받아들이는 태도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설교를 통해 베풀어지는 ‘은혜’는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시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상처를 어루만지는 선물로 여깁니다. ‘은혜로운 말씀’이라면 당연히 듣는 사람을 즐겁고, 기쁘고, 감사하고, 나를 긍정하여 감격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는 전적으로 오산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현존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현존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나를 부정하고, 전율케 하고, 찌르고, 괴롭게 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알고 보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엘리야, 베드로, 바울 등 성경의 인물들이 하나같이 겪은 일입니다. 나를 긍정만하고, 세상을 긍정만 하는 신이라면 그게 바알일 것입니다. 예언자들이 ‘야훼의 날’을 ‘은혜의 날’임과 동시에 ‘심판의 날’로 여긴 것은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예컨데 스가랴는 다가올 야훼의 날에 대해 “그 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폐와 패망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습 1:13)이라고 했습니다. 그러함에도 스바냐의 심판의 말씀 바탕에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끈끈하게 녹아 있습니다.
베드로서신의 경우 종말의 날에 대해 “모든 것이” ‘녹아내리는’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벧후 3:9-13). 그 시대가 견고하게 붙잡고 있는 가치관, 풍조, 철학 체계, 무엇보다 탐욕으로 쌓은 모든 것이 무너지고, 해체되고, 녹아내림으로써 비로소 새롭게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낡고 굳은 것들이 녹아내리지 않고 새롭게 시작되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낡은 세상을 부정하고 다가올 새로운 세상을 긍정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강단에서 선포되는 그 풍성하고 세련된 말씀들이 듣기 좋도록 모서리를 모두 제거한 것이라면, 말씀을 소비하는 것이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선포가 아닌 감각적인 위로와 성공담론인 설교. 그것이 한국교회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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