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한때 결혼식 축가로 사랑받은 노래입니다. 무심코 이 노래 가사를 읊어보니 사랑 받아야 할 2인칭 ‘당신’은 있는데, ‘당신’을 사랑하는 1인칭 주어 ‘나’ 혹은 ‘우리’는 없는 것입니다. 억지스럽기는 하지만, 문장 구조로 보면 그렇다는 것이지요. 물론 시어가 지닌 함축성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미사여구에 가려진 인간 행위의 허구성을 돌아보게 한다는 측면에서 씁쓸한 생각이 든 것도 사실입니다. 이에 비해서 사도 바울의 문장에는 주어가 분명합니다.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여러분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 4:5). 그리스도인인 ‘나’ 혹은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 ‘여러분’의 종이 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나와 너의 관계가 분명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종이 된다면 비극이겠지요. 물론 세속사회에서는 그런 비극이 그치질 않습니다.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나’는 ‘너’를 지배하려고 합니다. 보다 많은 ‘너’를 지배하는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 출세한 사람입니다. 권력을 위해, 돈을 위해 ‘나’가 스스로 ‘너’의 종이 되기도 합니다. 같은 이유로 ‘너’ 때문에 평화가 없다고 비난합니다. ‘너’는 평화의 적이라고 추궁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나’가 그리스도를 위해 ‘너’의 종 되는 바로 그 곳에 평화가 있다고 설파합니다.

생명을 가꾸고 돌보는데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 있습니다. 희생과 헌신입니다. 아이를 낳아서 양육해보신 분들은 말 안 해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아이가 장애를 가졌거나, 빈궁한 가정의 어머니라면 더 큰 희생과 헌신이 요구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교회에서 늘 듣는 말이 있습니다. ‘섬김’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게 없는 말이지요. 하지만 말은 풍성한데 정말 섬김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어떤 섬김이 진짜 섬김인지, 성경에서 말하는 섬김을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진정한 섬김은 내가 무엇인가를 ‘하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나를 쓰시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내가 작아지는 데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큰일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나를 쓰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내가 ‘작아지는’ 게 가장 좋은 섬김인 것이지요. 나를 굽히지 않으면서 하는 섬김은 섬김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제자를 선택하는 장면. 제자를 구하는 발걸음은 당연히 인재가 많이 모이는 예루살렘으로 향해야 마땅합니다. 그곳은 덕망 있는 지도자, 유능한 지식인, 야망을 품은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을 뒤로하고 갈릴리 해변으로 향하십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업에 종사하는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십니다. 예수께서는 왜 예루살렘에서 제자를 구하지 않고, 세련되지 못한 촌부들을 제자로 부르셨을까요? 하나님 나라 일꾼으로서 그리고 당신의 제자로서 헌신을 필요로 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의 식자층은 섬기기 위해 모인 이들이 아닙니다. 섬김 받기 위해 모인 이들입니다. 그들은 인간 역사의 ‘진보’를 믿는 사람들이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믿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나를 따르라’는 한 마디 말을 믿고, 자신의 야망을 포기하고, 예수를 따를 위인들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그걸 간파하신 것이지요. 갈릴리 어부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변화를 갈망했고, 그 나라의 도래를 열망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지금 회개하라’는 요청에 부합하는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즘 한국교회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한다며 갖가지 행사가 풍성합니다. 그러나 그 많은 번화한 행사들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뜻 깊게 한다기보다 ‘소비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게다가 행사들을 주관하는 이들의 면면을 보면 아무래도 갈릴리 출신이 아닌 예루살렘 출신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자기 삶과 전혀 부합되지 않는 이들이 감히 개혁을 논하며 설레발치는 것이지요. ‘나’는 사랑하지 않으면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노래는 잘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정말 종교개혁의 참 뜻을 살리려 한다면, 화려한 행사보다 사려 깊은 자기 성찰과 참된 섬김을 다짐하는 게 옳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보다 높은 수준의 봉사와 섬김을 요구받습니다. 바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 ‘너’의 종이 되기를 요구받는 것입니다. 문제는 ‘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