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간에 벌어지는 험악한 긴장이 좀처럼 누그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파멸밖에 없다는 미국. 언제든지 (핵으로) 천만배 보복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북한. 주체의 자존심과 세계 최강의 자존심이 서로 상대를 굴복시키기 전에는 결코 물러서는 일은 없다며 긴장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습니다. 우리로서는 북한의 핵을 용인할 수도, 미국의 선제공격을 받아들일 수도 없는, 말 그대로 진퇴양난입니다. 미국의 일부 강경론자들은 미군가족들의 철수까지 거론하고 있는 이때, 겉으론 평온해 보여도, 증오심이 불타는 이 좁은 한반도의 하루하루가 아슬아슬한 날들의 연속입니다.

기원전 2,700여 년 전의 일입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열방 중에서 피난한 자들아 너희는 모여 오라 한가지로 나아오라…”(사 45:20). 바빌론제국이 페르시아제국에 의해 붕괴되자 파국을 맞이한 바빌론 백성들은 ‘도망자’ 신세가 됩니다. 바로 그렇게 도망자 신세가 된 이들을 이사야는 하나님 앞으로 불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차갑게 대하는 편협한 유대 민족주의자들을 향해 “나는 숨어서 캄캄한 곳에서 말하지 않았다”(사 45:19)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만을 ‘밀의 密儀적으로’ 구원하시는 분이 아님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한쪽은 억압자였고, 한쪽은 피억압자였으나, 지금은 모두 같은 처지입니다. 우리는 이 이사야에게서 놀라운 세계를 봅니다. 이방인에 대한 편협한 민족주의가 극복되고 원수관계가 소멸되는 세계입니다. 평화가 꽃피는 세계입니다.

인간의 죄악이 보편적이듯, 인간이 겪는 고통 역시 보편적입니다. 우리를 참혹함으로부터 구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한다면, 우리처럼 참혹함을 겪는 이들을 향해서도 마음이 열려야 합니다. 성경에서 끊임없이 이집트 노예시절의 뼈아픈 경험을 되뇌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이 시련을 겪다 보면 나만 그러는 것으로 여기기 쉽습니다. 그럴 때 다른 이들의 고통을 통해서 내가 겪는 고통을 상대화시키고, 보다 넓은 이웃의 고통과 민족들의 고통도 헤아려보아야 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구원의 이야기들은 이렇게 같은 고통의 경험이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바울도 이사야 못지않은 생각을 합니다. “이방인으로 그 긍휼하심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롬 15:9). 바울은 이방인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은총을 복음의 확산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바울에게 복음은 민족도 종교도 어떤 주의나 주장도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을 멀리 떠난 이들과 이방인에 대한 이해와 관심만이 있을 뿐입니다. 세계복음화를 열심히 외치는 이들이 있습니다. 믿지 않는 이들을 믿게 하는 것, 지금까지 믿던 종교로부터 개종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복음화라고 믿는 이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만일 우리 안의 이방인을 향해 따뜻한 손을 펼칠 수 있다면, 우리는 세계를 복음화 시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일이 말처럼 쉽지 않음을 알기에 사도 바울은 인내와 위로를 말합니다(롬 15:5-6).

어느 곳에서나 이방인은 마음을 쉽게 열지 않습니다. 이방인으로 살아가기에 더욱 완고할 수 있습니다. 비굴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반신적으로 사는 이들, 도덕적으로 부패한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짐승들도 사람에게 괴롭힘 당하면 사나워집니다. 주인에게 사랑받지 못한 짐승은 성정도 사납습니다. 사람도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배신당하고, 폭력에 시달린 사람 치고 반신적인 기질을 지니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들의 외형만 보고 배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인내와 위로를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 같은 고집 센 죄인을 위해서 지금도 인내하며 위로하신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약자의 처지인 이방인에 대한 태도는 한결 누그러질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이방인이 누구겠습니까? 우리의 적이요, 원수요, 우리 안의 약자요, 소외된 자요, 교회와 사회가 배척하는 이들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증오심을 불태우는 한반도와 유대-팔레스타인 그리고 세계에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겠습니까?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못하는 일을 하나님께서는 하십니다. 나는 받아들이지 못할지라도, 편협한 사회와 제도화된 교회가 수용하지 못하는 일일지라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믿고 행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일 것입니다. 2018년엔 진정 평화의 기운이 힘차게 일어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