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교회에 예수가 없다”는 표현이나 목회자들을 향해 ‘예수 믿지 않는 자들’이란 비난의 말을 자주 듣는다. 어떤 현상에 대한 표현일까? 지난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으며 한국 교회는 다양한 차원의 개혁 과제를 이야기했다. 교회가 사회 복음을 상실하고 예언자적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부분을 지적하는 이들이 많았다. 또한 교회가 예수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세속적 가치를 무분별하게 따르는 것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도 많았다. 대부분의 견해에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특히 한 현상에서 나는 신앙 없음의 어떤 특징을 발견하는데 바로 예수를 따르는 이들이 “세상이나 사람은 변하지 않아”라는 말을 할 때이다. 이를 발설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정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내적으론 사회와 교회개혁에 부정적인 경우가 많음을 본다. 나는 이것을 한국 교회의 가장 뿌리 깊은 모순이라 생각한다.

믿음이란 두 세계의 경계에 선 이들이 하나의 세계를 선택하고 그곳을 향해 마음과 몸을 움직이는 metanoia 태도라 정의내릴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란 현실에 만족못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속한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더 나은 현실을 상상하고 꿈꾸며, 탄원하는 이들이 곧 그리스도인이다. 늘 하느님 나라를 생각하며 사는 이들이 아닌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니 하느님 나라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다른 세상을 상상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도발적인지 모른다. 예수로부터 시작된 그 나라는 과거에 완성되고 이미 만들어져 있는 정태적 세계가 아니라, 현실에 만족 못하는 순수한 영혼들의 기도와 눈물, 탄원의 과정을 통해 새롭게 시작되고 열리며 형성되어 가는 세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개혁적 영성의 선구자이셨다. 복음서는 불의와, 불평등, 폭력과 차별로 가득 찬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 예수의 기도와 탄원, 격론과 해체, 하느님 나라를 향한 몸부림의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개혁은 적폐를 정화한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방치되고 관행화된 잘못들, 불의하나 저항하는 이가 없어 그대로 문화가 되어버린 것을 고치는 것이 개혁이다. 하느님 나라의 공무를 담당하는 기관들의 직무유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분노하셨는지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데이비드 브루베이커의 『건강한 조직만들기』란 책에는 한 공동체가 건강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문제와 개혁과제를 식별하는 그룹이 반드시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한 사회에서 개혁과제를 식별하는 그룹은 바로 교회이다. 부정할 수 없는 교회의 존재 이유이다. ‘위기중의 위기/the crisis of crises’란 표현이 있다. 이는 위기를 보지 못하는 위기, 즉 위기를 식별할 능력을 상실한 위기를 말한다. 한 사회의 종교가 우상 idolatrous blindness에 빠졌을 때 이 현상은 나타난다. 우상에 눈이 멀어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니 위기를 위기로 파악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종교가 세속권력에 머리 숙이고 세상적 가치관의 후견인으로 전락할 때, 이 둘은 함께 ‘위기중의 위기’라는 헤어날 수 없는 늪에 빠지게 된다. 위기를 위기로 보지 못하는 종교지도자들의 무능력과 “변하지 않아”라는 신앙인들의 무기력함, 이 둘은 교회가 가장 먼저 돌아봐야 하는 우리들의 뼈아픈 모습들이다.

예수를 믿는 믿음이란 것이 얼마나 무색한지 모른다. 하느님 나라를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거짓된 일인지 모른다. 우리는 왜 이렇게 개혁적이지 못한가? 우리의 신앙은 왜 이렇게 거짓 평화에 길들여져 있는가? 나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계기로 나름의 방식으로 그 이유를 찾게 되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세상과 차이나는 개혁의 도구와 힘을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데에 그 원인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세상은 ‘세속적 힘’으로 운영된다. 권력과 물질의 힘이다. 이것으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교회는 다르다. 교회는 권력과 물질의 힘으로 일하지 않는다. 예수는 돈으로, 힘으로, 무기로 당신의 일을 하지 않으셨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힘은 무엇인가? 이 힘은 “믿음의 변혁적 힘 /transformative power of faith”이다. 하느님으로부터 와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다. 이 힘은 모든 피조물을 뛰어넘는 탁월한 것이며, 요한복음에서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다”고 선포한 것과도 같다. 모든 힘 위의 힘, 바로 진리의 힘, 생명의 힘, 평화와 사랑의 힘이다. 믿음의 변혁적 힘으로 하느님 나라를 이루어감을 기억하자. 우리의 자리가 여기에 있다. 현실을 직시하며, 악을 식별하자. 그 무엇도 두려워말며, 예수께서 주시는 이 탁월한 믿음의 힘으로 기도와 선포, 사랑의 실천을 이루자. 이 힘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더욱 찾는 한 해가 되자. 그분의 진리로 더욱 성숙해지는 한국 사회와 2018년 새해가 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