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왕국 유다가 바빌론의 느브갓네살에 의해 돌이킬 수 없게 무너졌을 때입니다. 왕을 비롯하여 나라의 지도층 대부분이 바빌론 포로로 끌려가고, 그 땅에는 의지할 데 없는 백성들만 남게 됩니다. 이 남아있는 백성들 가운데 친 바빌론파는 바빌론 세상이 되었으니 문제될게 없었지만, 친 이집트파로서는 죽느냐 사느냐 하는 긴박한 처지가 됩니다. 이들이 군대장관 가레아를 중심으로 살 길을 모색하던 중 예레미야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한 말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응답이 좋든지 나쁘든지 간에 그 말씀에 순종하려 [합니다]”(렘 42:6). 지금까지 불순종하며 살았지만, 이제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라면 좋던 싫던 순종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겠다는 것이니 참으로 가상한 말입니다. 그러나 실은 그게 아닙니다. 예레미야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너스레를 떤 것입니다. 예레미야도 저들의 간계를 알아채고 즉답을 피합니다. 그리고 10일 후 다시 찾아온 저들을 향해 예레미야는 ‘만일 여기 남아서 살면 그 뿌리가 뽑히지 않고 살겠지만, 이집트로 망명하면 모두 죽게 될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합니다. 저들은 예레미야를 납치해서 이집트로 망명합니다. (예레미야는 그곳에서 최후를 맞이합니다.)

그 뒤 어떻게 됐을까요? 바빌론 포로로 끌려갔던 사람들은 세월이 흐른 뒤에 조국으로 돌아왔지만, 이집트로 망명한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하고 거기서 소멸됩니다. 그릇된 선택이 가져온 비극입니다. 역사의 소용돌이 가운데서 앞뒤 사정을 살펴 살 길을 찾는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 고집대로 살았을 때, - 그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워 - 돌아오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라는 게 성경의 관점입니다.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것은, 나 혹은 우리 안팎의 사탄은 늘 하나님을 빙자하고, 말씀을 빙자하고, 선을 빙자해서 자기 의도를 관철시키려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같은 모습을 복음서에서도 봅니다. 예수께서 눈멀고 벙어리 된 병자를 고쳐주셨을 때입니다. 이 장면을 목격한 백성의 무리는 경이로운 반응을 보인 반면, 전해들은 바리새인들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다]”(마 12:24)고 폄하합니다. 직접 보지 않고 전해들은 말로 그렇게 단정한다는 게 놀랍습니다. 사탄의 별명이 바알세불입니다. 사탄은 놀라운 지능과 변신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자기 합리화에 천부적입니다. 천사의 가면을 쓰기도 하고, 믿음을 가장하기도 하고, 사람을 시험하기도 하고, 갖가지 질병에 떨어뜨리기도 하고, 분쟁을 일으키면서 화합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말씀을 자기 합리화의 도구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런 사탄임에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자기성찰 능력이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가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음에도 오늘날만큼 진보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기성찰 능력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개인이든 공동체이든 자기성찰 능력이 얼마만큼 활성화 되어 있느냐에 따라 번영할 수도 있고 쇠락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자기성찰 능력이 사탄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단의 바리새인들에게서 사탄의 모습을 봅니다. 물론 오늘의 여?야 정계는 말할 것도 없고, 종교계, 교육계, 언론계, 노동계 등 사회 각 분야에서도 사탄의 모습을 봅니다. 적어도 공동체의 지도자들이라면 사실을 확인한 바탕에서 평가하거나 단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예수에 대해서 그럴 마음 자체가 없었습니다. 저들이 사탄의 앞잡이가 된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자기성찰을 모르는 리더십은 필연적으로 지옥의 문을 열게 된다는 게 역사의 교훈입니다. 인간의 모든 행위가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행위들이 같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성찰 능력이 있고 없음에 따라 결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사회 공동체에 크게 기여할 수도 있고, 나락으로 빠뜨릴 수도 있습니다. 자기성찰을 모르는 인간이 승리할 때마다 그들의 삶은 암울한 세계로 곤두박질칩니다. 어떻게 하면 사탄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고, 사탄의 앞잡이가 되지 않을까? 단순하지만 명백한 답이 있습니다. 자기성찰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옳다고 여기는 일일수록 정말 옳은 일인가 스스로 되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익 추구를 버려야 합니다. 공적인 일에 사익 추구는 사탄이 가장 서식하기 좋은 환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