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8일 [시사저널e]가 고용노동부 자료 ‘2019년 1-6월 산업재해 현황’을 분석한 결과를 보도했습니다. 올 상반기 일터에서 일하다 사고로 숨져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노동자는 총 1,115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전년 동기 1073명에 비해 3.9% 증가한 수치로, 하루에 사업장에서 약 6명이 산재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입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매일같이 산업현장에서 죽어나가다니. 여기에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한 죽음까지 더하면 얼마나 될까.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회원국 중에서 청소년 자살률과 노인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입니다. 여기에 산재 사망률까지 높은 나라가 됐습니다. 극심한 경쟁에서 낙오된 이들 그리고 삶의 의욕을 잃고 생을 포기한 이들이 많은 것도 참담한데, 어떻게든 살아보려 험한 일 가리지 않고 일하다 죽은 목숨들이 그렇게 많은 것입니다. 죽은 이들 대부분이 ‘위험의 외주화’를 통한 비정규직 노동자들 또는 이주노동자들임을 감안할 때 이건 사회적 타살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정부는 나름으로 산재 사망률을 줄이겠다고 하지만 구호에 그칠 뿐 실제 산업 현장에서는 달라진 게 없습니다. 오히려 더 증가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그 외에 날마다 산업현장에서 죽어나가는 이들은 묻혀버리고 원통함은 순전히 가족의 몫으로 남습니다. 정부, 기업, 국회, 사법부, 학계, 정규직, 언론 등 나라 경제를 운영하는 주체들은 여론이 들끓을 때만 잠시 관심을 가질 뿐 실제 죽음의 고리를 끊을 대책마련은 한없이 미온적입니다. 그러면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시스템 안에서 각자 자기 몫 챙기기에만 연연합니다. 그래도 노동친화적일 것으로 기대한 문재인정부에서도 여전히 달라진 것이 없으니 여간 실망스러운 게 아닙니다. 이거야말로 21세기 노예산업국가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 고약한 노예산업국가에서 잠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물질관 곧 경제관을 눈여겨봅니다. 추수감사제 때 낭독한 고유문 告由文이 그것입니다(신 26:5-10). 이 감사 제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질의 성화입니다. 그 해의 소득 가운데 맏물을 먼저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물질은 성화됩니다. 성화된 물질은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리고 성화된 물질은 소득이 없는 이들과 함께 나눠 먹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가난한 이들이 물질을 시혜한 사람들에게 예속되지 않게 합니다. 가난한 이들이 받은 물질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지 부자들에게서 받은 게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자신들은 고대 중동 지역을 떠돌면서 죽을 지경에 이른 유랑민 곧 “유리하는 아람 사람(아라미 오벧 아비)”의 후손임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저들은 추수감사라는 축제의 자리에서 자랑할 게 없는 조상의 후손임을 되뇌고, 고통스런 노예생활에서 해방시켜주신 하나님의 은총을 잊지 않으며, 지금 자기 안의 가난한 이들을 먼저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이들에게 부와 신분의 세습이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에 비하면 지금 한국 경제 주체들의 물질관은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물질의 ‘성화과정’이 없는 경제 이론이 한국 사회를 거칠게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한국경제는 무차별적인 빈부 격차를 발생시키고, 낙오자들, 삶을 비관하는 자들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지금 조국 사태로 갈라진 민심의 밑바닥에는 바로 물질의 성화 과정이 없는 특권층의 부와 신분의 대물림에 대한 ‘모순된 저항’(내가 그런 건 당연하지만, 네가 그런 건 못 봐준다는)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회적 관점에서 물질의 성화가 무엇이겠습니까? 노동의 가치가 존중되고, 분배가 적정하게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을 경우 양극화와 사회적 비관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돌이켜 보면 물질이 인간성을 상실케 하는 게 아닙니다. 자기 목숨만을 생각하는 영혼의 가난이 인간성 상실을 가져옵니다. 개개인에게만 영혼이 있는 게 아닙니다. 사회가 지닌 공동체의 영성도 있습니다. 나라가 부강하면 개개인이 행복한 게 아닙니다. 공동체의 영성이 충만해야 개개인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기업이 잘되면 국민이 행복해지는 게 아닙니다. 생산된 물질이 성화되어야 국민 개개인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물질의 성화 과정 없는 경제는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 뿐입니다. 나라의 경제 주체들이 물질관을 바꾸지 않으면 한국이라는 나라는 마치 노예의 힘으로 운행하는 갤리선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런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